지금 세계는 지역통합의 시대이다. 동아시아 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국가들은 FTA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동아시아 국가의 주요 시장이 역외 국가에 있었고, 이러한 통합 없이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3년 유럽연합(EU)의 출범과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세계무역질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졌고, 통합체가 없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통합의 필요성이 커졌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1년 중국의 WTO가입은 동아시아 지역 통합의 촉매제가 되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금년 6월말 현재 전세계에 걸쳐 발효된 자유무역협정(RTA: Regional Trade Agreement)은 232 건, 이중 아시아 지역에서 이루어진 것이 전체의 32%를 차지하는 74건 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발효된 협정 중 53건이 2000년 이후에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경제통합은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쌍무적 FTA가 대부분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아세안과 10+1의 형태로 FTA를 체결하였다. 이외에 한국은 싱가폴과 FTA협정을 체결하였고, 한·일간에는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 협의가 진행 중이며, 한·중 산관학 공동연구가 진행 중이다. 일본은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브루나이 등과 개별적인 FTA를 체결하였다. 중국도 홍콩, 마카오와 FTA의 일종인 긴밀한 경제협력 협정(CEPA)을 체결하였다.
초보적인 단계이지만 다자간 자유무역 실현을 위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중·일 3국간에는 FTA 체결 필요성에 공감하고 '한중일FTA'에 대한 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더 넓게는 ASEAN과 한중일 3국을 하나로 묶는 동아시아FTA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이후 FTA 친화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인 목적 이외에 외교·안보적 이유 등 다양한 목적에서 FTA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국무원발전연구중심(DRC)의 팡진 박사는 중국의 FTA 추진 방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중국은 국가별로는 인접지역 국가를 우선 대상으로 하며, 동기에 있어서는 에너지 및 자원의 확보, 지국 중심의 지역주의 형성과 같은 전략적 동기가 우선하고, 이외에 해외시장 진출, 국내 지역개발 촉진, 산업경쟁력 제고 등과 같은 경제적 동기를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 국가와의 FTA에 적극적이다. 중국은 한중일 FTA와 동아시아 FTA 추진을 위한 공동연구에도 매우 적극적인 입장이다. 이외에 중국은 쌍무적인 FTA에도 적극적이다. 2005년 아세안과 상품 분야의 FTA를 추진한 데 이어 2009년에는 서비스분야 FTA에 합의하였다. 한중 FTA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중FTA는 중국과 상호 보완적인 협력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자국 중심의 지역주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긴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은 FTA를 통해 소중화권의 형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3년 홍콩, 마카오와의 CEPA 체결에 이어, 대만과는 무역거래를 자유화하고 경제교류를 대폭 확대하는 일종의 FTA인 ECFA(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체결을 추진 중이다. 중국과 대만의 ECFA가 체결될 경우 중국 대륙, 대만, 홍콩, 마카오를 연결하는 하나의 중화권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될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협력에 있어서도 그 중심에 중국이 자리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3%로 EU(30.8%)나 NAFTA(29.5%)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9%로 NAFTA(15.5%)의 두 배에 달하는 세계 교역의 중심이다. 특히 동아시아의 위상 증대에 있어 일본의 비중은 하락한 반면, 중국이 큰 역할을 하였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8년 1.7%에서 지난해에는 6.4%롤 높아졌고,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6%에서 8.0%로 높아졌다.
동아시아 지역 국가 간 교역과 투자에 있어서도 중국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8년 동아시아 지역 역내 국가간 무역액은 2조 3천억 달러로 동아시아 지역 국가 교역 총액의 27.7%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역내 교역액은 1조 467억 달러로 전체 역내 교역의 45.5%에 달한다. 일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무역은 29.5%, 한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무역은 18.5%를 차지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 내 투자협력 역시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말 까지 중국에 유입된 8,830여 억 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 중 62% 이상이 역내 국가로부터 이루어진 투자이다. 이러한 투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분업체제를 구축하는 기초가 되었고, 동아시아 교역이 중국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토대가 되었다.
동아시아 지역 내 산업 분업에서도 중국이 핵심에 서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 부상했다. 중국이 세계 공장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대만이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고 중국에서 가공한 후 역외 지역으로 수출하는 분업구조가 형성되었다. 2008년 중국이 수입하는 부품과 소재의 47%를 한국, 일본, 대만 3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으며, 아세안을 포함할 경우 60%에 달한다. 이중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부품과 소재가 15%에 해당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더 이상 미국과 유럽의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체제 유지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동아시아 국가와 중국 간 상호 긴밀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동아시아 통합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의 주도권 경쟁이 지속되어 왔지만, 중국이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의 주도권을 잡게 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그동안 우리는 동아시아 통합의 중간 매개자 역할을 자처해 왔다.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동아시아 경제통합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중국과의 자유로운 무역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면에서 현재 한중간에 논의되고 있는 FTA를 보다 전향적 입장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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