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가자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김태언 활동가는 지난 1월부터 가자지구를 찾아 현지의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있다. 터널이 없으면 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가자지구의 생존 법칙부터 외지인이든 현지인이든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가자에는 다양한 삶들이 펼쳐져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2007년부터 팔레스타인 평화 활동을 벌여온 김태언 활동가가 전하는 현지 소식을 연재한다. <편집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가자의 오늘 ① 지상 최대의 감옥 '가자'의 터널을 가다 ② 폭격, 가족의 죽음…14살 아이 마음엔 복수심 뿐 |
2009년과 2012년, 두 차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권 정치조직 하마스에 대해 알게 됐다. 빈민구율, 미망인 고아 관리, 병원 설립 등 많은 인도주의적인 활동에도, 하마스는 무장 투쟁이라는 그들의 독립운동 방식 때문에 이스라엘과 미국에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포장됐다. 하지만 난민촌의 빈민과 사회 약자를 대상으로 한 그들의 활동은 민중의 지지를 얻었고 급기야 2006년 선거에서 75%에 달하는 지지를 얻어 집권 다수당이 됐다. 그러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파타와 내전 상황까지 치닫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곧 이스라엘과 미국이 하마스를 극단주의 운동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더욱 공고히 하며 가자지구 봉쇄를 정당화 시켰다. 가자에서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는 하마스는 그저 다른 성향의, 팔레스타인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정당 중 하나였다. 하마스에 대한 서방의 편견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부총리 지야드 알 자자를 만났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거의 잔해만 남아있는 경찰서 건물 옆, 수수한 3층짜리 건물 1층으로 안내받아 간 그곳은 예상과 달리 삼엄한 경비도, 대단해 보이는 것도 없었다. 온화한 얼굴로 품위 있어 보이는 지야드 알 자자는 하마스의 가자 통치에서 예산 및 정책집행에 있어 실질적인 리더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따라주는 진한 터키식 커피를 마시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부총리 지야드 알 자자 ⓒ김태언 |
휴전협정, 하마스의 승리
김태언 : 가자의 집권당 하마스에 대해 소개 해달라.
지야드 : 하마스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팔레스타인의 1967년 전쟁 이전의 국경을 토대로 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그룹이다. 우리는 모든 국가, 인종, 종교를 존중하고 팔레스타인 사람의 자유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 등 모든 개인, 단체들의 권리를 존중한다. 우리는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좋은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길 원한다.
김태언 : 하마스가 지난번 전쟁을 '승리'라고 자축 하는 것을 보았다. 정치적 승리를 제쳐놓고 사상자 피해로 봤을 때 과연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는가?
지야드 :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우리 조상의 영토를 강제로 빼앗았다. 이어서 1956년과 1976년 아랍세계를 상대로 인종청소를 자행했고, 60년 넘게 여러 가지 잔혹한 방법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핍박했다.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점령의 결과로 살해, 고문당했고 이동의 자유 또한 빼앗겼다.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셀 수 없이 많은 전쟁범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2009년과 2012년 이스라엘에 맞서 싸웠고, 이스라엘이 먼저 휴전 협정을 맺도록 이집트와 미국을 통해 요청했다. 평화와 우리 국민의 권리를 위해 우리는 휴전협상에 임했고, 그 이후 이스라엘의 협정 위반행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군사력이 이스라엘에 비해 100만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군사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휴전협정을 얻어낸 우리 팔레스타인인의 정신력은 이스라엘보다 200만 배 강하다. 승리한 자가 먼저 휴전을 요청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김태언 : 최근 전쟁 직후 체결된 휴전협정이 잘 지켜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지야드 : 우리는 이스라엘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협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경지대에서는 매일같이 이스라엘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가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직접행동은 자제하고 있다. 대신 이에 대해 중재국과 국제사회에 계속 보고를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주변국들, 이스라엘·이란은
김태언 : 이스라엘의 총선결과 보수성향이 강한 네타냐후의 재집권이 확실시됐다. 이에 따른 전망과 대이스라엘 정책이 있는지?
지야드 : 우리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건설을 위해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의 종식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이를 위해 서안의 식민촌(정착촌) 철수와 모든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보장을 줄곧 요구해 왔다. 우리의 독립이 대단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아이들도 한국이나 다른 국가의 아이들처럼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되길 원할 뿐이다.
우리는 정책 등과 관련해서 이스라엘과 직접 소통은 하지 않고, 따라서 특별히 대 이스라엘 정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김태언 : 지난번 전쟁에서 하마스는 이란에 고마움을 표했다. 하마스 정부와 이란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지야드 : 우리는 이란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모든 국제사회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점령국-피점령국 간의 힘의 불균형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있다. 가자의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하고, 팔레스타인의 정의를 되찾기 위해 외부의 어떤 형태의 지원도 환영할 것이다. 이란의 지원도 그 중 일부였고, 만약 한국이 우리에게 크루즈 미사일을 준다면, 매우 기쁘게 받을 것이다.
김태언 : 지난 전쟁 이후 하마스 군사조직 알 카삼 여단이 이란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지야드 :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가자에 대한 어떤 식의 지원이든 환영한다. 가자지구 내부에는 수많은 정치, 군사조직이 존재하고 우리는 이 모두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
김태언 : 이스라엘이 가한 공격으로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민간 희생자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하마스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민간인이 희생됐고, 많은 로켓이 이스라엘의 민간지역으로 갔다.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은?
지야드 : 우리의 공격으로 희생된 민간인에 대해선 유감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하고는 문제가 없다. 우리가 싸우는 적은 가자에 봉쇄를 가하고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막는 시오니스트 정부일 뿐이다. 우리가 발사하는 로켓은 우리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직접 자체 제작한 로켓의 성능은 매우 열악해, 이스라엘과 달리 정밀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가능한 한 우리는 이스라엘 군사지역을 타겟 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우리 로켓의 대부분은 군사지역에 떨어졌다.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에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로켓포가 텔아비브를 향해 발사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김태언 : 최근 팔레스타인 서안 통치 정당은 파타와 화해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가자 사람들이 이에 대해 회의적인 것 같던데, 어떤 상황인가?
지야드 :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통 받게 하는 '점령정책'이라는 비열한 적에 맞서 싸우고 있다. 알다시피 진행 중인 협상을 통해 파타와 하마스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합의를 했다. 특히 우리는 파타의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직을 인정했고, 우리의 많은 권리를 포기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이지 하마스의 권력 유지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정의를 되찾아 주고 안정한 삶을 누리게 해줄 수단일 뿐이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터널이 곧 생명줄이 되어버린 가자
김태언 : 가자 전역을 다니며 보니, 높은 실업률이 큰 사회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책임을 이스라엘의 봉쇄로만 돌릴 수 있는가?
지야드 : 가자의 안 좋은 경제상황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먼저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가자의 모든 인프라를 하나도 빠짐없이 파괴했고 이후 수많은 공격으로 민간, 정부 영역의 시설들이 사라졌다. 또한 2009년과 2012년 두 번의 전쟁으로 가자의 내수경제에 중요한 공장들 대부분이 공격을 받아 재기 불능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잠재력이 있다. 팔레스타인은 아랍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고,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다. 사우디나, 쿠웨이트에 가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든 전문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과 전문성이라는 힘을 갖췄고 언제든지 팔레스타인을 강국으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점령이라는 가장 큰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하늘, 땅, 바다 삼면이 가로막혀 있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당장 크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많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지난 6년간 꾸준히 여러 가지 국내 프로젝트를 통해 실업률을 낮추고, 내수시장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수입 농산물에 세금을 부과해 국내 농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할 뿐만 아니라 외국 펀드 등을 통해 많은 건설 프로젝트를 운영 중에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60%의 실업률은 현재 30%까지 떨어졌다.(*같은 시기 유엔의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발표에 따르면 가자 내 전체인구의 약 70%가 실업자.)
김태언 : 말이 나와서 말인데, 가자의 대부분 상점에 있는 물건이 거의 모두 이집트 물건인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이집트와 맞댄 라파 국경은 오로지 허가받은 인원의 통행만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모든 물건은 터널로 들어온 것인가?
지야드 : 그렇다. 우리는 2007년 이후, 이스라엘의 비인간적인 봉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터널을 강요받고 있다. 터널은 가자에 있어서 생명줄과도 같다. 우리는 필요한 의약품, 식량, 연료 등 삶에 필수적인 물품들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터널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터널이 불법무기, 마약, 테러리스트 등 범죄에 이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터널을 관리한다. 모든 물건, 인원의 통행은 정부가 감시하고, 품목에 따라서 들여오는 물건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주로 담배, 자동차, 전자기기 등의 물건에 세금을 부과해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고, 수입 농수산물에도 세금을 부과해 내수시장 경쟁력을 확보한다.
김태언 : 만약 이스라엘이 가자에 대한 봉쇄를 풀면 터널을 완화할 것인가?
지야드 : 당연하다. 터널은 여러 위험성 등 우리에게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봉쇄가 풀린다면 터널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
▲ 이집트와 라파 사이의 물자를 이동시키는 터널 ⓒ김태언 |
김태언 : 이스라엘은 하마스 설립자 아흐메드 야신, 그의 후계자 란티시, 그리고 최근엔 군 지도자 아흐마드 자바리 등 여러 명의 하마스 최고지도부 인사를 암살했다. 그것은 당신도 항상 이스라엘의 암살에 위협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인데,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지야드 : 두렵지 않다. 나는 팔레스타인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고귀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목숨을 잃는 것은 전혀 두려운 일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을 기억해줬으면
김태언 : 가자에 와서 길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현대, 기아차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비쌌다. 왜 그런가?
지야드 : 이스라엘은 제한적으로 가자에 자동차의 통행을 허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스라엘 정부에서 자동차 가격의 75%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자에 도착했을 때 자동차의 가격은 매우 비싸질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한국까지 긴 터널을 만들면 좀 더 싼 가격에 수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웃음).
김태언 :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한국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언지를 얘기해 달라.
지야드 : 한국 사람들이 가자에 방문해서 여기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져가면 좋겠다. 가공할 필요 없이 순수하게, 가자의 삶 그 자체로 보고 가져가 그들이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 했으면 좋겠다.
김태언 :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지야드 : 한국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이 야기한 끔찍한 결과를 보고 더 알았으면 좋겠다. 가자의 아이들도 한국의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줘라. 한국도 일본의 식민통치를 겪었듯이, 우리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을 기억해달라. 또 팔레스타인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부총리 지야드 알 자자 ⓒ김태언 |
원래 30분으로 예정된 인터뷰는 이야기가 길어짐에 따라 어느덧 1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나의 인터뷰 다음에 만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정부 부총리 지야드 알 자자는 차분하게 묻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그의 굳은 의지와, 고통 받는 국민들에 대한 진심어린 우려가 왜 하마스가 그토록 높은 지지를 얻어 당선됐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일제침략 하에 한국이 받은 고통과, 이스라엘 점령 속에서 팔레스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고 묘한 동질감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우리와는 달리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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