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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억류 또 꼬여…"융통성 있게 투 트랙으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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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억류 또 꼬여…"융통성 있게 투 트랙으로 풀어야"

北 "개성공단 법규·계약 무효"…南 "결코 못 받아"

북한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 문제와 개성공단 문제가 또 한 번 꼬였다. 남북이 2차 개성접촉 날짜와 의제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던 와중에 북측이 자신들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지·공개함으로써 회담 성사가 불투명해졌다. 개성공단의 운명은 벼랑 끝에 몰렸다.

北, 결국 언론에 공개

북한은 15일 "개성공업지구에서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측에 특혜적으로 적용했던 토지임대값과 토지사용료, 노임, 각종 세금 등 관련 법규들과 계약들의 무효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통해 남측에 보낸 통지문에서 이같이 선언하고 "남측 기업들과 관계자들은 우리가 통지한 이상의 사항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집행할 의사가 없다면 개성공업지구에서 나가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통지문은 이날 낮 12시 45분 경 직접 전달됐고 오후 3시 35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됐다.

통지문은 "6.15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라며 "앞으로의 사태가 어떻게 더 험악하게 번져지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측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책임을 남측에 넘겼다.

남측이 유 씨 문제를 회담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북측 통지문은 "부당한 문제"라거나 "의제 밖의 문제"라고 거부했다.

통지문은 유 씨에 대해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 우리를 반대하는 불순한 적대행위를 일삼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자"라고 규정해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통지문은 남측이 이 문제를 "실무접촉의 전제조건"으로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무접촉을 또 하나의 북남대결장으로 만들어 공업지구 사업 자체를 파탄시키려는 남측 당국의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도발 행위"라고 주장했다.

南 "억류 문제 우선 논의는 지극히 당연"

정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이는 개성공단의 안정을 위협하는 조치로서 정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또 "북한의 일방적 조치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개성공단에서 나가도 좋다고 한 것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 무책임한 처사"라고 말했다.

그는 법 규정 및 계약 개정에 대해 "남북한 당국은 물론 개별사업자와 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상호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시행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북한측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남측이 유 씨 문제를 제기해 회담을 지연시켰다는 북측 주장에 대해 "남북간 합의서에 따라 처리되어야 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가 이날 오전 '오는 18일 실무회담 개최'를 다시 제안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북한은 이제라도 부당한 자세를 버리고 관련된 법 규정들 및 계약들의 무효선언을 즉각 철회해야 하며 우리측이 제의한 당국간 실무회담에 조속히 동의해 나오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결렬" 아니라 "결렬 위기 직면"…여지는 남겨둬

북측은 지난달 21일 1차 접촉에서 임금·토지사용료 등 개성공단과 관련해 남측에 부여했던 모든 제도적 특혜조치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기존 합의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 후 남북은 지난 4일부터 12일 동안 2차 접촉을 둘러싸고 치열한 기싸움을 해왔다.

남측은 유 씨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하고, 임금·토지사용료 등의 인상을 협의하려면 개성공단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 등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서로 의제가 달랐다.

반면 북측에서 개성공단을 관장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유 씨 문제는 자신들의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1차 접촉 때 제기한 문제만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날짜에 대해서도 북측은 4일 '6일에 만나자'고 제의했으나, 남측이 8일 '15일에 만나자'고 역제의하자, 북측은 9일 '12일에 만나자'고 수정제의하는 등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러나 남측은 '15일 회담'을 고수했고 끝내 불발되자 내주에 개최하자고 통지문을 보냈다.

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며 "의제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실무접촉에서 충분히 제기가 됐기 때문에 앞으로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북 통지문에는 유 씨 문제를 부각시키지는 않았음을 내비친 것이다.

남측은 지난 12일부터 관계자를 개성공단에 보내 북측과 2차 접촉을 위한 실무협의를 시도해왔다. 그러자 북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겠다며 실무협의에 제대로 응하지 않다가 15일 마침내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내주 회담 성사는 극히 불투명해졌다. 다만 북측이 통지문에서 결렬을 선언하지 않고 "결렬의 위기에 직면"했다며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정부가 회담 전략을 수정·보완해 북측을 설득한다면 만남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융통성 있게 툭툭 치고 들어가야 한다"

개성공단과 남북협상에 정통한 전직 고위 당국자들은 유 씨 문제와 공단 운영에 관한 협상을 분리해서 접근하고, 북측이 원하는 공단 관련 협의를 일단 시작한 뒤에 석방 협상을 제안하는 '투 트랙 2단계' 접근법이 실현 가능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3일 <프레시안> '정세토크'에서 "두 문제를 묶어서 옥신각신하지 말고 유 씨 사안만 따로 떼서 논의하는 별도의 물밑접촉을 제안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라며 "묶어서 하려고 하면 두 문제 다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두 문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북측의 주장은 맞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북측이 분리한다고 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말 풀기 위해서는 투 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의 장 자체가 마련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 문제를 섞어서 협상하게 되면 임금·토지사용료 조정 협상에서도 남측이 불리해진다"며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고, 유 씨 석방도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직 고위 당국자는 "투 트랙으로 당장 가기 어려우니까 일단 북측이 요구하는 임금·토지사용료 협상을 우선 시작해 놓고 억류 문제를 푸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단계별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는 "너무 경직되게 접근하면 억류가 더 오래간다"며 "석방이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되니까 융통성 있게 툭툭 치고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과거 회담할 때도 서로 어려운 거 설득하고 이견 좁혀 나가고 그랬다. 묘수가 뭐 있나? 포기하지만 않고 설득해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의 현직 당국자들도 그것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의중 때문이라고 한 소식통은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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