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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학 총장의 '쇼'와 김연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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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두 대학 총장의 '쇼'와 김연아 (2)

[기고] 고려대의 무궤도 질주를 걱정한다

지난 5일 관훈포럼에서 고려대와 연세대 총장이 시차를 두고 벌인 '학교 자랑 연고전'은 '지성의 요람'을 이끈다는 학원 최고경영자(CEO)들의 반지성적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앞의 글에 쓴 바 있다.

그런데 정작 언론이 중점을 두어 보도한 두 대학의 '경영대학 우위론' 주장보다 그 이벤트의 핵심이 되는 것은 '약학대학 설립 추진'이었다. 두 총장은 거의 한 입처럼 언론인들 앞에서 이 계획을 공개했다. 가뜩이나 비대하고, 다른 사립대학들보다 강한 교세를 자랑하는 두 대학이 약대까지 신설하겠다고 하니 여론이 비판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특히 인터넷에는 "연고대가 백년 넘게 약학대를 안 만들다가 갑자기 나서는 이유가 뭐냐"는 뜻의 비난이 많이 나왔다. 그런 여론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는 두 총장이 자기 대학 우위론을 내세우면서도 약대 신설을 위한 협업에 나섰다는 점에서 그날의 토론은 잘 기획된 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래 교육 평준화정책을 깨는 데 앞장서고 있는 고려대 이기수 총장은 그날 포럼에서 "점수 경쟁에서 탈피해 (학생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반영하는 입시제도 마련을 위해 대학들이 대타협을 하자"고 제안하면서, "일정 금액 이상 기부한 분들의 자녀가 수학 능력만 검증되면 입학하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연세대 김한중 총장은 "사교육을 이긴 학교들의 공통점은 교장·교사의 열정"이라면서 "열정이 유지되려면 결국 (학교가) 가르칠 학생들을 직접 뽑아 열심히 가르쳐서 명문으로 남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함으로써 고교 평준화를 재검토하는 방향을 직설적으로 제시했다.

1998년부터 정부가 교육행정의 핵심으로 삼아온 삼불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은 2007년에 서울대가 강력히 폐지하자고 주장하자 그해 겨울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교육전문가든 학부모든 학생이든 언론인이든 이 정책에 관해 찬반론을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을 없애면 우리나라 교육 전반이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는가이다. 부모들이 코흘리개 적부터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자녀들을 닦달하는 까닭은 그래야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 '잘 살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공부를 특출하게 잘 해서 극소수의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은 초극소수밖에 안 된다. 한 해 60만명 안팎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중 83%가 대학에 들어간다는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합격하는 사람은 1만 명 남짓이다. 그것도 재수, 삼수를 한 응시자까지 포함한 수자이다. 이른바'SKY'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백에 하나'꼴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흔아홉은 그 '하늘'아래 어딘가에 있는 다른 대학들에 가야 하는데, 그 '하늘'이 꼭 그렇게 높이 있어야 할 근거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괴상한 '천문학'은 그 하늘에도 삼각체제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꼭대기에 자리잡고 연세대와 고려대가 삼각형 밑변의 두 지점에 있다는 뜻이다. 우주의 섭리에도 맞지 않는 이런 궤변이 통설을 넘어 정설의 단계에 이른 것이 요즘의 현실 아닌가. 한 젊은이가 2008년 10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의 한 대목은 그 정설의 실체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고려대생의 충고] 명문대가 아니라 서울대 꼭 가세요

저 처음 대학 들어왔을 때 입학생들 중에 20% 정도가 1학기 끝나면 기숙학원으로 사라졌습니다. 대부분 반수해서 설법(서울법대) 가려고 하거나 아예 재수해서 설법 가려고 하는 애들이죠. 이젠 그런 현상이 자연스러워서 교수님들도 내버려두는 분위깁니다. (저희 고대는 학교에 대한 전통이나 자부심이 강해서 그런 거 지적하는 편인데 이젠 교수님들도 포기한 분위깁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머리가 나쁜데 노력형으로 겨우겨우 공부해서 고대에 왔으니 만족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언젠가 이런 저도 후회하게 될 날이 올까요?
(·····)
아울러 서울대 내에서도 비법대, 서울법대로 나눌 정도니 뭐 말 다했다고 보구요. (···) 이런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지는 사회를 기대하는 건 아직까지는 무리겠지요.


우리가 대체로 알고 있는 일이지만 참으로 이성으로도 논리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내신은 비슷한데도 수능 성적이 단 몇 점 차이가 나서 서울대 법대에 가지 못한 학생들이 '반수'와 재수를 해서라도 거기로 가려고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는가? 그것도 SKY의 '법대 낙원'에 오를 엄두도 못 내는 한국의 대학입시 준비생 99%가 부러워 할 고려대 법대에 들어간 젊은이들이 말이다. 법대의 전통이 뛰어난 그 대학은 사법시험 합격자도 아주 많이 내는데···그런데도 서울법대를 '동경'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더라도 서울법대가 지배하는 주류에 들어야 더 빨리 출세하고 선배들의 덕을 크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법학 분야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 의료 같은 데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점수보다는 창의력과 개성이 더 중요한 방송이나 영화 연기에서도 서울대 출신의 김 아무개라는 여성이 능력과 상관 없이 광고 모델로 두서너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그런데도 서울대는 SKY의 꼭지점에서 실체보다 과분한 사회적 대우를 받으면서도 점수가 더 높은 학생들을 뽑겠다고 고등학교 본고사 부활을 외치고 있다. 더 높이 올라갈 하늘이 있다는 말인가?

앞에 인용한 블로그의 고려대 법대 학생을 부러워하는 다수의 학생들과 그 부모들은 이기수 총장의 말대로 기여입학제가 실시된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거기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고려대학교 출신이라고 밝힌 채은하 기자는 관훈포럼을 소재로 쓴 기사에 이렇게 적었다.

고려대학교의 상업주의는 이날 이 총장의 '기여입학제 필요' 발언에서도 또다시 증명됐다. 이 총장은 이날 "건물을 세우거나 학교 발전에 공헌한 집안의 자녀가 수학능력이 입증될 경우 입학시키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기여입학제 도입을 주장했다. '촌동네 안암동'의 고려대학교 캠퍼스를 '관광 코스'에 넣게 한 주역인 LG-포스코 경영관에는 이미 '이명박 라운지', '이학수 강의실'이 있다. 기여입학제가 겨냥하는 '공헌 집안 자녀'가 어떤 그룹을 염두에 둔 것인지 뻔히 보인다. (<프레시안>, 5월 6일)

기여입학제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면 한국 제일의 재벌그룹을 선두로 수십개 대기업의 경영진이나 세도와 재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수능 점수와 내신이 뒤지는 자녀들을 고려대에 보내려고 앞을 다투어 기부를 할 것이다. 그런데'수학 능력만 검증된다면'이라는 이 총장의 전제는 옳지 않다. 제대로 공부할 실력이 있는 고등학생이 왜 거액의 돈이 드는 기여입학을 하겠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서 이 총장 같은 대학 경영자들은 여러 가지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학에 대한 정부 보조가 너무 적어서 학교 발전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든지, 기부금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요즈음 고려대가 '무궤도 질주'하듯이 교육 파괴를 저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하게 기여입학제도를 운영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연세대 김 총장의 평준화 폐지 또는 완화론은 고려대 이 총장과는 다른 면에서 중등교육을 지금보다 훨씬 더 참혹한 전쟁터로 변질시키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교육을 이긴 학교들의 공통점은 교장·교사의 열정'이라니··· 도대체 한국사회에서 사교육을 이긴 고등학교가 몇 개나 있단 말인가? 그가 말하는 그런 학교는 SKY에 학생을 많이 보낸 데를 말하는 것 같다.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들 중에서 사교육을 받지 않고 그런 '성과'를 낸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혹시 지방에 있는 몇몇 대안학교들에서 그런 학생들이 소수 나왔다면 몰라도. 그리고 " (교장·교사의) 열정이 유지되려면 (학교가) 가르칠 학생들을 직접 뽑아 열심히 가르쳐서 명문으로 남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또 무엇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라는 연세대 총장의 '명문론'은 좀 심하게 말하면 너무나 천박하다. '우리 대학은 수능이나 내신이 뒤지더라도 사회 봉사를 많이 했고, 창의력과 협동정신이 뛰어난 학생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오늘의 세계는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맹신하는 공간이다. 대학이라고 해서 이런 대세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엄연히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대학의 으뜸가는 책무는 합리적으로 슬기롭게 경영을 해서 교육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에 적극 기여하는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이다.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서 이웃을 누르는 일에만 힘을 쏟고 '나는 선택된 엘리트이니 남들 위에 군림할 권리가 있다'고 으시대는 지식인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대학은 천민자본주의의 추악한 얼굴일 뿐이다.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에도 윤리가 있어야 하는데, 오직 '우리 대학을 최고로 만들어야겠다'는 일념뿐인 총장의 머리에는 이윤만을 좇는 대기업 경영자 같은 강박관념밖에 없을 것이다. 관훈포럼에서 고려대 이 총장이 강하게 주장한 '김연아와 고대정신'이 단적으로 그런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얼마 전 고려대 1학년생인 김연아가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자 '민족의 인재를 키워온 고려대학교,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라는 대표 문안을 넣은 광고를 일간지들에 크게 실은 데 대해 여론의 비판이 격렬하게 일어나자 이 총장은 관훈포럼에서 이런 요지의 주장을 했다. "김연아가 경기하는 모습이 고교생 때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려대의 정신을 팍팍 주입한 결과였다. 고교 3학년 때 교사가 시켜서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가. 이를 봐서 고려대가 김연아를 낳았다고 한 것이다."

고려대에서 어떤 교수나 학생이 김연아에게 '고대 정신을 팍팍 주입했다'고 주장했다는 보도는 안 보이니 이 총장이 그 공로자라는 뜻이겠다. 입학식에도 못 갈 정도로 바쁘고 나라 밖에서 훈련하느라 여념이 없는 열아홉 살 처녀와 전화 몇 통 하고서, 또는 모처럼 학교에 나온 '세계적 스타'의 등을 두드려 준 것을 두고 고대 정신을 '팍팍 주입'(불어 넣은 것이 아니라)했다고 우기니 그 학교 학생들이 재학생 커뮤니티 사이트인 고파스에 '한숨만 나온다''민망하다'는 글을 올린 것 아닌가.

'미시간대가 마이클 펠프스라는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

마이클 펠프스는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미국의 수영선수이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 부문에서 금메달 8개를 땀으로써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같은 나라의 마크 스피츠가 거둔 7개라는 기록을 깨뜨렸다. 그뿐 아니라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받은 메달까지 합해서 금메달 14 개, 동메달 2 개라는 초인적 성적을 올렸다. 김연아를 낮추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은 대한민국 '피겨여왕'의 기록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음이 분명하다. 펠프스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있는 미시간대학교에 다녔는데, 그가 그런 대기록을 세웠을 때 그 대학이 '미시간대가 마이클 펠프스라는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라는 전면광고를 일간지에 실었다는 보도는 본 적이 없다. 그는 베이징올림픽 직전인 2008년 5월에 "나는 그 어떤 남을 위해서도 수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고향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나를 키워준 수영클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대학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5년 가까이 그 대학에 다녔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김연아를 볼 적마다 감탄한다. '가녀린 처녀가 어떻게 저렇게 유연하면서도 역동적인 몸놀림을 할 수 있을까?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나 다름 없던 한국에서 저런 불세출의 선수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을까?'나는 기적에 가까운 그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력과 부모의 보살핌과 애정, 그리고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안무 선생의 공적이라고 믿는다. 국민들은 김연아를 사랑하고 응원하면서 즐거워 하면 된다. 고려대 이 총장도 겸손하게 그 중 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아니 오히려 '연아가 학교 수업에도 거의 나오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 고대정신에 걸맞은 가르침을 주면 좋을까'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김연아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감을 주는 광고 모델 1위'로 우뚝 섰다. 장동건도 김태희도 그의 뒤로 처졌다. 그가 나오는 상품광고의 매출액이 단기간에 출연료의 몇 배 또는 열 배 이상으로 뛰어오른다니 김연아 잡기에 나서지 않을 대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무려 2백개 기업이 광고 출연 제안을 했다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김연아는 광고 한 편 당 5억원 이상의 계약금을 받는다고 하므로 올 한 해에 세금전 소득이 1백억원이 넘을 것이다. 그래서 고려대 이 총장이 '연아야, 너는 이제 갑부이니 부모님과 상의해서 문근영 언니처럼 어려운 동포들에게 성금을 많이 보내면 어떻겠니'라고 권유하면 고려대의 뜻있는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너무나 기뻐할 것이다. (계속)

(두 대학 총장의 '쇼'와 김연아 (3)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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