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가자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김태언 활동가는 지난 1월부터 가자지구를 찾아 현지의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있다. 터널이 없으면 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가자지구의 생존 법칙부터 외지인이든 현지인이든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가자에는 다양한 삶들이 펼쳐져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2007년부터 팔레스타인 평화 활동을 벌여온 김태언 활동가가 전하는 현지 소식을 연재한다. <편집자>
▲ 가자지구 곳곳에는 폭격에 맞은 건물들의 잔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김태언 |
친절한 사람들의 웃음, 따스한 햇살, 아름다운 지중해를 보고 있으면 '이곳이 TV에서 접하는 그 가자지구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자는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가자는 1948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이후로 줄곧 이스라엘의 대규모 학살과 군사공격의 주 무대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2차 인티파다, 파타-하마스 분쟁, 2차례 이스라엘 대규모 공습 등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2008~9년과 2012년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당했으며 그 상흔은 아직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자의 전력난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랏 난민촌 동쪽에는 가자의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중부 지방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가 있다. 하지만 이 발전소는 첫 번째 전쟁으로 인해 절반 정도가 파괴되었고, 이스라엘의 가자봉쇄 때문에 발전소 보수에 필요한 물자가 조달되지 못해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로 가동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가자 전역의 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끊겼고, 이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바꿔 놓았다. 하루에 약 15시간 정도 불안하게 공급되는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이 고안해 낸 것은 가정용 발전기였다. 전기가 끊길 때 각 가정, 가게에서는 휘발유로 작동되는 트럭용 모터 크기의 큰 발전기를 돌렸고 이는 가자 전역에 대기오염과 소음공해를 심화시켰다. 해가 진 후 가자에 불빛이 보이는 곳엔 트럭 엔진과 같은 거슬리는 소음이 있었다.
가자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쉬파 병원과 24시간 운영되는 종합병원에는 전기가 끊길 때를 대비해 발전기가 수십 대씩 있었다. 그나마 제일 성능 좋은 발전기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4~5시간 정도로, 발전기가 꺼지면 병원은 말 그대로 비상이 걸린다. 심장 수술을 하고 있던 도중 발전기가 꺼져 의사 간호사들이 비상 매뉴얼로 간신히 환자를 살린 이야기, 중환자실의 발전기가 꺼져서 전 간호사, 의사들이 달려들어 작동을 멈춘 생명 유지장치 대신 응급처치를 한 이야기 등은 가자에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나마도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대부분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하루하루를 UNRWA(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기구) 쿠폰에 의지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안 좋으니, 값비싼 발전기를 살 여유는 더더욱이 없다. 주로 이들은 간신히 값싼 중국용 발전기를 마련하거나 촛불에 의지하게 되는데, 싸구려 발전기가 폭발해 사람이 죽고, 간밤에 켜 놓은 촛불이 옮겨 붙어 집이 모두 타 일가족 전원이 불타 죽는 일은 불행히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마실 수 없는 물, 가자의 수돗물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것은 전력시설만이 아니었다. 가자 전역의 상수도 시설, 하수 처리 시설 같은 일상에 필수적인 공공시설도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가자지구 전역의 가정에서 수도꼭지를 열면 짠물이 쏟아져 나온다. 높은 농도의 염분도 모자라 수돗물은 극도로 오염되어 있었다. 결국 가자에서 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심각한 병에 걸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가자의 수돗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가자와 수원지를 공유하는 이스라엘 쪽에서 너무 많은 물을 뽑아내어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있는 가자의 지하수층에 바닷물이 침투했다. 또 파괴된 하수 처리 시설 등으로 재처리할 수 있는 86%의 오수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파괴된 하수 처리 시설 때문에 거리는 온통 물이 넘쳐 시궁창 바다가 되어 버렸다.
▲ 하수 시설이 파괴되어 시장에 물이 넘치고 있다 ⓒ김태언 |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어 버린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이스라엘의 폭격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집과 건물을 파괴했지만,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파괴해 버렸다.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족, 친구를 잃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폭력은 이들에게 일상이었고, 한과 분노는 그들 마음 깊숙이 뿌리내렸다.
2008년 12월, 가자 북동쪽 자발리야 캠프의 유엔 학교 앞에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떨어져 민간인 22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 여러 집에 미사일 공습을 퍼부어 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는데, 그들 대부분은 전쟁의 공포에 떨며 집에 있던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딸, 그리고 아들들이었다.
하삼 가족의 둘째 아들 아흐마드의 형과 아버지는 집에 있던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미사일에 맞아 부자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다른 가족들이 돌보았지만, 아버지와 형을 잃은 아흐마드의 상처는 지금까지 깊게 남아있었다. 올해 14살인 그는 더이상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매일 죽은 아버지와 형 사진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꿈과 희망이 없다는 아흐마드는 오로지 이스라엘에 복수만 할 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보통 팔레스타인에서는 한 건물에 대가족이 다 함께 모여 산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있을 때는 일가친척들이 한집에 모여 공포스러운 나날을 함께 버텼다. 이는 정서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집이 폭격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족 구성원 여러 명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괴시켰고,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2009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족 구성원 8명을 한꺼번에 잃은 힐랄 일가의 사미르는 남편과 아들이 폭격으로 사지가 절단돼 죽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이후 국제 NGO가 제공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치유됐다고 느꼈을 때 즈음 2012년 다시 대규모 전쟁이 발발했고, 악몽은 깊숙한 내면에서 기어 나와 다시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 가자지구에는 폭격에 맞은 폐건물이 곳곳에 즐비하다 ⓒ김태언 |
이스라엘 국경과 불과 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에 살고 있는 아부살람 가족의 첫째 아들 칼리드는 2009년 첫 번째 전쟁 때 연료를 구하러 칸 유니스로 가던 중 폭격을 받아 오른쪽 눈을 잃고 왼쪽 팔을 다쳤다. 부상의 후유증과 정신적 충격 때문에 그는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었고, 집안사정은 어려워 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2년 두 번째 전쟁이 끝난 직후, 양측이 합의한 휴전협정에 따라 국경지대에 소유한 밭을 살피러 간 둘째 아들은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오른쪽 발을 잃었다.
가자에서 국경지대에 산다는 것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곳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밭은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의 불도저에 의해 파괴되었고, 땅은 포탄에서 나온 화학성분으로 오염됐으며, 사람들은 밤낮으로 들려오는 국경지대의 총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이들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매일 밭으로 나간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가자의 오늘 ① 지상 최대의 감옥 '가자'의 터널을 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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