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은 중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 45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었다. 당시 소련과 이념 갈등을 빚고 있었던 중국은 유럽의 대국 프랑스와 수교를 함으로써 외교의 지평을 넓혔고, 프랑스 지도자 드골도 중국을 "매우 유일하고 매우 깊은 문명을 가진 국가"라는 점을 강조해 중국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냉랭하다. 작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시위대와의 충돌이 있었으며, 파리시 의회가 티베트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파리명예 시민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인들은 프랑스 유통기업인 까르푸 상품 불매운동으로 항의하기도 하였다. 양국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당시 중국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EU이사회와의 정상회담을 취소하였고, 사르코지가 폴란드에서 달라이 라마를 면담하자 양국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중국은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원자오바오 총리의 유럽 순방에서 프랑스를 제외시키기에 이르렀다.
과거 중국과 프랑스의 외교관계는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프랑스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하여 나름대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있어도 프랑스는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 사르코지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지나치게 친미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더욱이 중국 외교정책의 아킬레스건인 티베트문제, 인권문제 등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양국은 약탈 문화재 경매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 2월 25일, 프랑스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중국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위안밍위안(圓明園)의 청동 쥐와 토끼 두상에 대한 경매를 강행했다. 위안밍위안은 1709년부터 1860년까지 황제가 기거하면서 정무를 처리하던 곳이었다. 이후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해 이곳 문화재 대부분을 강탈하고 결국 불을 질러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비극을 경험한 중국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문화재가 국제시장에서 고가로 팔리는 점에 치욕적인 느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크리스티측이 청동 쥐와 토끼 두상에 대한 경매를 공고하자 중국 측은 올해 1월, 81명의 다국적 변호사로 구성된 법률단을 통해 경매 취소를 촉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중국 측은 약탈해간 문물은 중국에 반환되어야 하며 절대로 경매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2월 23일 프랑스 법원이 이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크리스티에게 원래대로 경매를 진행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결국 2월 25일 이 두 점의 유물은 각각 1400만유로(약 270억원)에 전화로 낙찰되었다.
중국 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경매를 강행한 크리스티측에게 제재를 가할 것임을 통보하였고 프랑스측은 중국 측의 '보복행위'에 유감을 밝혔다. 그런데 프랑스 문화부장관이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경매의 성공은 문화시장 활성화의 청신호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하였고 외교적 갈등이 증폭되었다. 이렇게 되자 경매 낙찰자인 아모이(厦門)에 거주하는 차이밍차오(蔡銘超)가 공개적으로 대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경매파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낙찰자 차이밍차오는 중국 네티즌들에 의해 '애국자'가 되었다.
사실 그동안 중국은 민족문화의 부흥과 민족정신 함양이라는 차원에서 해외 경매시장에서 고액을 투자해 많은 문화재를 회수하였으며 중국의 민간단체나 일반인들도 경매 낙찰을 통해 중국 정부에 문화재를 기증하기도 했다. 모든 문화재를 경매로 회수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문제는 약탈 문화재를 비롯한 각종 문물의 경매가 절묘한 인식적 조작을 거쳐 의도적 시장 가격을 형성하는 제국주의 방식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경매품인 청동 쥐 두상의 실제 가격은 5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하는 전문가도 있다. 작품성이나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이슈화'가 되고 나면 '상품'의 가격이 오르고 원래의 소유자가 어떠한 형태로든 재구매하도록 구조 틀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시달리면서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 당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문물학회 통계에 따르면 1840년 아편전쟁부터 전쟁, 밀무역 등의 원인으로 다량의 중국의 진귀한 문화재 약 1,700여만점이 해외로 유출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박물관인 타이페이의 꾸궁(故宮) 박물관의 문물총수가 64만점이고, 베이징의 꾸궁(故宮)이 100만점인 데 비해 엄청난 수치이다. 특히 유네스코는 세계 각국의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구체적인 통계를 잡을 수 없을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 자랑하는 돈황의 유물은 70%가 해외로 빠져나가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 아시아민족연구소와 개인 소장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문화재를 계속적으로 '경매'의 방식으로 회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소송할 수도 없는 일이다. 중국 측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탈취해간 문화재를 반환해주도록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함께 제국주의의 문화재 강탈과 중국 스스로 자국의 문화재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굴과 밀수의 형태로 해외에 판매하는 행위도 함께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에도 중국의 문화재와 문물은 여전히 밀거래 등을 통해 해외로 불법 반출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海關總署)에 의하면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문화재 밀수 및 밀거래가 10만 건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들 거래는 주로 홍콩을 통해 이루어지며 홍콩을 런던, 뉴욕에 이은 세계 3대 문물예술 시장으로 성장시켰을 정도다.
외교적 갈등으로 심화된 이번 사태는 단순한 약탈문화재 '경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양국 간의 외교정책의 마찰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경매'는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를 통해 중국인들은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문화 침탈에 대한 각성과 자신들의 무지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번 사건을 두고 프랑스인들도 여론조사에서 제국주의시대 약탈한 문화재는 반환해야 한다는 점을 표명해 비교적 공정한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편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많은 문화재를 약탈해간 프랑스가 사건의 당사자이고 보니 감회가 색다르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문화와 역사, 아픔을 포용하는 존중과 반성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