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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를 섬기는 양들의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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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를 섬기는 양들의 아우성

김민웅의 세상읽기 <261> 꽁트

이솝의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한 늑대가 시냇물 상류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하류 쪽에서
  한 마리의 새끼 양도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 늑대는 그 양에게 슬슬 다가가서
  "이 나쁜 놈!
  너는 어째서 내가 먹으려고 하는 물을 흐려 놓느냐."
  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늑대가 다가오는 줄 미처 몰랐던 새끼 양이,
  "전 이쪽 하류에 있었는데 그게 말이 되나요?"하고
  겁에 질린 눈으로 대답했습니다.
  
  순간 당황한 늑대가,
  "좋아,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런데 네가 내게 마구 욕한 것이 바로 1년 전 일이었지?"하고
  다른 시비를 걸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전 1년 전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새끼 양이 그렇게 대답하면 사태가 괜찮아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늑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었습니다.
  "응 그래? 네가 아니었다면, 그건 네 아버지다.
  더 이상 이런 저런 변명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겁니다.
  
  이미 목표가 정해진 상태에서
  시비를 제기하는 것은
  그 시비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음험한 목표를 숨기거나
  정당화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 시비에 상대가 몰리면
  그걸로 상대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어떤 대답을 내놓아도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늑대는 물이 흐르는 시내도 다 자기 것이고
  상류든 하류든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에 더하여
  누구든 약한 자가 자기 눈에 띄면
  다만 공격 대상이 될 뿐입니다.
  시비는 공격의 이유를 만들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우화를 이렇게 다소 바꾸어 보지요.
  
  늑대가 양에게 슬슬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늑대는 자신을 교묘하게 위장할 줄 압니다.
  늑대가 아닌 척 합니다.
  몸이 좀 큰 양 행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새끼양은 미처 경계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경계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 이쁜 어린 양아.
  내가 너를 늑대로부터 지켜줄게.
  저기, 저 쪽에 있는 저 놈 보이지?
  저거 아주 위험한 늑대야.
  조심해야지.
  이런 데서 물을 마실 때에는
  혼자서 이렇게 나와 있다가 큰 일이 날 수도 있단다.
  나만 꽉 믿어."
  
  그런데 늑대가 늑대라고 가리킨 것은
  사실은,
  들에서 풀을 뜯고 있던 이 양과는 달리
  저 산에서 들로 겨우 힘들게 내려온
  비루마르고 허기진 나머지 눈이 움푹 들어간
  한 마리, 몰골이 안 되어 보이는 산양이었을 뿐입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얼핏 보기에
  다소 거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분명 양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 산양은
  본래 이 양과 같은 무리에 속했던 양이었건만
  그 산양이 정말 늑대인줄로 알고,
  여전히 이 진짜 늑대에게 자신의 안전을 위탁하려는 양들이
  그 들판에는 아직도 많았다고 하네요.
  
  아니, 그래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양들을
  모두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공격하는,
  "늑대를 섬기는 양들"이 여기 저기 우루루 몰려다니는
  아무리 보아도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늑대는 속으로 가만히 미소만 짓고 있었습니다.
  "아이구, 귀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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