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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민족적 정체성,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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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민족적 정체성, 민족주의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64〉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②

개념의 혼란

우리가 민족, 민족주의와 같은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는 하나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구분해서 쓰지는 않는다. 일반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학자들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같은 현상을 설명하며 여러 단어들을 뒤섞어 혼용한다. 또 같은 단어를 매우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민족을 종족이나 인종과, 민족적 정체성을 민족성이나 민족의식과, 또 민족주의를 애국주의 등과 섞어 사용하는 것이 앞의 예이다. 이것은 민족이나 민족주의와 관련한 단어들이 매우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여러 개념을 제멋대로 뒤섞어 쓰면 어떤 사실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진다. 따라서 가능한 대로 단어를 잘 가려 쓸 필요가 있다.

또 최근에 와서는 같은 단어를 아주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민족을 전통적인 혈연공동체 대신 '상상의 공동체' 하는 식으로 정의하는 경우이다. 이는 특히 근대주의적 해석의 결과이다. 그래서 이런 새 개념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개념들과 큰 대립상을 보인다. 물론 이것은 민족이나 민족주의와 관련되는 대상이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정치, 사회적 현상이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정치적인 문제가 개재해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첨예한 정치, 사회적 문제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의를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어떤 주장을 정당화하고 다른 주장들은 배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정의를 취하건 정치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종족, 민족, 인종

이 세 단어들은 민족을 말할 때 뒤섞어 사용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영국인들을 자기네 민족을 english race라고 race(인종)라는 단어를 넣어 부르기도 했다. 또 19세기에 미국에서는 이민 온 각각의 종족집단을 인종으로 불렀다. german race, italian race 하는 식이다. 지금도 인류(human race)라는 단어에는 race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그러나 오늘날 인종은 일반적으로 피부색이나 신체의 모습, 용모의 차이에 따라 인간을 여러 종류로 분류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으로 나누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민족과 관련되는 논의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족과 민족은 많이 혼용된다. 비슷한 인간의 공동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 구분선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체적인 구분은 가능하다. 종족과 민족은 혈연공동체이고 역사적 기억과 문화, 영토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종족은 보다 큰 사회의 하위문화를 구성하고 또 큰 사회 내부의 일정 지역에서 거주한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다른 종족과 뒤섞여 사는 경우도 있고 영토와 관련 없이 떠도는 종족들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어느 정도의 정치적 자율성을 유지하거나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유럽의 많은 다종족사회에서 보듯 만약 이들의 문화적 통일성과 정치적 대표권이 인정받는 경우에는 큰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아 그런 요구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역의 경우에는 정치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민족은 종족보다 더 포괄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역사적 기억도 글로 쓰인 표준화된 민족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민족의 문화와 구분되며 민족 구성원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공공문화를 가지고 있고, 구획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대체로 단일한 경제권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이 어느 민족에나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현대 세계에서도 종족은 민족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다종족으로 구성된 민족이 세계 모든 민족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 같이 단일 종족으로 구성된 민족은 드문 현상이다.

그래서 여러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스위스와 벨기에 같은 경우 그 국민들은 자기가 속해 있는 종족의 개별적인 정체성과, 모든 종족을 함께 포괄하는 민족적 정체성을 함께 갖고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종족적 정체성이 민족적 정체성보다 더 큰 경우도 있으며 이럴 때에는 분란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부족이라는 말은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에 많이 볼 수 있는 소규모 종족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나 식민주의 시대의 경멸적인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족은 국가와는 구분된다. 민족은 그 구성원들의 살아있는 공동체로서 문화적인 성격이 강한데 비해 국가는 자신의 자율적인 정부를 가지는 법적 실체로서 일정 영토 안에서 합법적으로 강제력을 독점한다.

민족이 국가를 가질 때 그것을 민족-국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국가를 가지지 못한 민족들도 있다. 반면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와 같이 식민지 해방으로 인해 여러 종족이 국가를 형성하고 나서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되었을 때는 국가-민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족적 정체성

민족적 정체성이란 어떤 사람이 스스로 어느 민족에 속한다고 의식하거나 믿는 태도를 말한다. 과거에는 이 의미로 '민족적 성격'이나 '민족의식'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요사이에는 '민족 정체성'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그것은 아마 현대의 개인주의 경향으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족적 정체성을 만드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이다. 혈연, 언어, 영토, 종교, 역사, 관습 등의 것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은 금방 만들어져서 금방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상당히 느린 장기적인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민족적 정체성이 고정되고 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다른 어떤 역사 현상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는 변화하고 해체되고 다시 만들어진다.

요사이에는 개인의 다중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사람들이 가족, 성, 지역, 직업집단, 정당, 종파, 종족, 민족, 인류의 많은 정체성을 갖고 있고 상황 변화에 따라 하나의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쉽게 넘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근대주의적 해석에서는 민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므로 민족적 정체성도 미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족적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기껏해야 부차적인 요소이지 중심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 지구화 시대에 들어왔으므로 그것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다중 정체성의 강조가 서양의 잘 살고 힘이 강하며 민주주의가 이미 자리 잡아서 국내외적인 차별을 적게 받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에 의해 억압을 받고 착취를 받는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외세에 대항하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민족을 하나로 묶는 보다 큰 정체성이 다른 어떤 정체성보다도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요사이 애국주의와 섞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9.11 사건 이후 미국인들이 애국주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때 그들은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분리시켜 애국주의는 자유주의적인 것이므로 좋은 것이고 민족주의는 배타적이고 호전적인 것이므로 나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국인 가운데에도 미국인들의 그런 용법을 받아들이는 사 람들이 있다.
▲ 9·11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애국주의'가 부쩍 강화되었다. 그러나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18세기 이전에 애국주의라는 단어가 사용되던 용례를 보면 민족주의와 별로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요사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점령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행태로서 자유나 인권, 민주주의의 옹호로 포장을 하고는 있으나 공격적 민족주의의 매우 나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미국인들의 애국주의 사랑은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시쳇말의 의미를 매우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우리는 보통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것을 민족의 복리와 안녕을 추구하는 이념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이보다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대체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민족적 감정이나 의식을 가리킨다. 이는 자기가 어느 민족에게 특별히 느끼는 공감이나 어느 민족 집단에 속한다는 귀속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즉 정체성의 문제이다. 이런 감정이나 의식 없이는 민족주의의 다른 행위들이 가능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민족 정체성의 의식은 민족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민족에 대한 언어화와 상징화로서 이는 민족을 언어로, 또는 이미지로 나타내는 작업이다. 어느 민족이 어떤 민족인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겪어 왔는지, 어떤 운명을 갖고 있고 그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예술적 작업들을 말한다. 시인이나 소설가, 역사가, 미술가들이 이렇게 만들어내는 공통의 상상력이 민족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는 민족을 위한 원리나 이데올로기이다. 이것이 민족주의라는 개념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형태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란 실제적으로나 잠재적으로 민족을 구성하거나 구성하려 하는 일정 지역 주민들이 그 자율성, 통합,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이념적 운동을 말한다. 그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구체적 개념이나 전략, 전술까지도 포함한다.

네 번째는 민족주의 운동이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이것은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넓은 범위의 운동을 포괄한다. 민족문화를 강조하는 문화운동, 이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나거나 자민족의 통합을 위한 정치적·사회적 운동이나 무장투쟁, 또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한 국산품 애용운동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민족주의 운동이야말로 민족주의를 완성시키는 실천적 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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