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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김정일 병원 차트라도 봤나?

거침 없는 정보 공개, 아슬아슬하기만 할 뿐 득은 없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행보가 거침없다. 청와대와 정보 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은 생생한 얘기를 들려주며 '김정일 이후'의 후계구도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같은 태도는 '지금은 어떠한 답변도 할 수 없다'를 되풀이하며 지극히 신중한 미 행정부의 공식 반응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해 미국도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어서 이러는 것인가?

이례적으로 '시원한' 정보 공개

국가정보원이 1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보고한 것을 전한 국회의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병원 차트를 본 것처럼 자신있는 모습이다.

"8월 14일 이후 순환기 계통(뇌혈관 계통)에 이상이 생겨 (쓰러져) 수술을 받는 등 집중 치료를 받아 현재는 많이 호전됐다. 병명은 뇌졸중, 뇌일혈, 뇌출혈 중 하나다. 수술 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등 언어에는 장애가 없으며, 움직일 수도 있다. 의식도 있다. 일부 언어장애와 신체 일부 부위의 마비증상도 남아 있지만 반신불수 상태는 아니다. 중국, 프랑스 등 외국 의료진에 의해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회복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상태이며, 국가 통제력을 잃지도 않았다. 북한 사회의 내부 동요는 전혀 없다."

청와대도 분명했다. 10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안보관계 장관회의 후 이동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최근 '뇌혈관 질환에 인한 스트로크(발작)'를 일으켰으나 회복 중이며, 현재로서는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혼란 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를 갖추라"고 말했다. 원론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북한에 무언가 비상한 일이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발언이었다.
▲ 1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김성호 국정원장 ⓒ프레시안

하지만 미국은 전날과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북한이 그들 지도자의 건강 문제에 대한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새로 추가해 말할 게 없다"고 말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도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관련된 보도를 봤다면서 "이런 내용을 모두 무시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도 않고, 기본적으로 정보에 논평할 수도 없다"며 "그런 보도와 관계없이 우리 관심의 초점은 6자회담 성과"라고 잘라 말했다.

북핵 담당 특사로 내정된 성 김 전 국무부 한국과장도 의회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에 관한 보도를 확인해 줄 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다만 "6자회담 당사국들과 평양의 지도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긴밀히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북한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하고 있다"고 덧붙일 뿐이었다.

김정일 주변 인사를 정보원으로 쓴다?

한미 양국의 대조적인 태도를 겉으로만 본다면 이명박 정부는 미국도 모르는 김정일의 건강 정보를 소상히 알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김 위원장 주변 인사를 정보원으로 활용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온 결과라고 11일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말까지 최고위 수준의 북한 정보를 다뤘던 한 인사는 그런 평가에 고개를 내저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 공개하는 내용은 미국에서 얻은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양질의 북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루트는 한-미, 한-중, 때로는 남-북 정보기관 간 교류다.

북한 언론 매체나 방북 인사의 '전언'에 대한 분석을 주로 하는 통일부의 정보는 수준이 낮고, 외교라인을 통해 모으는 외교부의 정보는 공식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소위 신호정보(SIGINT)를 수집하는 국방부는 역정보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큰 신뢰를 주기 어렵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국정원 내부 물갈이가 진행되면서 중국 등지에서 이뤄지던 남북 정보기관 간 교류는 현재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 터지면서 환경은 더 나빠졌다. 그렇잖아도 인색한 중국의 정보 당국은 최근 북한 관련 정보를 넘기는데 더욱 조심스러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남은 건 결국 한미간 정보 교류다. 뇌졸중이라는 병명이 최초로 나온 곳이 미국이었다는 점은 이명박 정부가 어디에서 오는 정보에 의지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김정일이 의사들의 치료를 받고 있지만 죽음이 임박한 건 아니다"는 등의 말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AP> <폭스뉴스>에 먼저 흘렸었다. 그것은 이후 국정원 정보 평가의 근간이 되는 얘기들이었다.

북한 정보 관리의 ABC도 모르는 정부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한국이 확실치도 않은 김정일 건강 문제를 기정사실화하는 반면 미국은 말을 아끼는 것은 북한 정보에 대한 접근 태도와 공개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정보량의 차이는 아니다"라며 "정보는 물론 미국에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에 관해 한국은 공식 회의와 브리핑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히는 반면, 미국은 공식 라인에서는 철저히 함구하는 대신 언론에 흘리는 방식을 쓴다"라며 "이명박 정부는 정보를 다루는 ABC를 무시하고 먼저 치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보 공개 방식은 그것이 조금이라도 사실이 아닐 경우 정부 정보의 신뢰성을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또한 정보가 정확하면 정확한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 정보력을 상대방에게 노출시키는 문제도 있다. 나아가 국가간 정보 교류에도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고, 남북관계나 한미 외교관계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관련 정보를 이처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대통령이 '북한 돌발 상황'까지 언급하자 정부가 이번 기회를 활용해 뭔가 다른 걸 챙기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이 진척되어 내달 개최될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 보고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는 그런 의혹을 부채질한다. 개념계획 5029는 지난 2005년 미국이 작전계획으로 바꾸려 했으나 북한을 자극하고 한국의 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노무현 정부의 반대 때문에 중단됐었다.

이 외에도 김정일 건강이상설은 원정화 사건과 더불어 대북 정보 수집력 강화를 위한 조직과 장비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명분을 키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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