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원자력이란 말을 넣어서 원자력발전, 원자력문화재단 등으로 부르지요. 가만히 보니까 좋게 보이려는 건 원자력이라고 하고, 뭔가 나쁜 얘기를 하려면 핵이라는 말을 씁니다. 농담 같지만 정부와 언론, 모두 그런 것 같습니다. 예컨대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고 말하지 원자력을 개발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건데 느낌이 다르지요. 뭔가 나쁜 느낌을 주려 할 때 핵이라고 하는 듯합니다. 핵발전소가 아니라 원자력발전소인데 '나쁜' 핵폐기물이 나오면 안 되겠지요. 그렇다고 원자력폐기물이라 하면 원자력도 나쁘고 위험한 것으로 들리니 방사성폐기물이란 말이 적당하겠네요.
이런 것을 보면 현대 사회에서 기술의 문제가 많은 경우에 정치적 문제와도 깊이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많이 시끄러웠던 것 중에 하나가 유전공학에 관련된 문제죠. 이른바 줄기세포, 배아복제, 유전자조작 같은 겁니다.
이러한 유전공학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는 사실 현대 기술의 핵심 쟁점입니다. 몇 해 전에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분이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고 아주 유명해졌잖아요? 이러한 유전자 조작에 담겨진 기본 전제는 한 마디로 '모든 게 유전자 안에 있다(All in the genes)'라는 믿음입니다. 지난 강의에서 생명현상을 간단히 소개했는데, 생명에서 유전정보란 매우 중요한 문제지요. 어떤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정보를 다 안다면 그 생명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유전자조작의 기본 전제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유전자 정보를 완전히 알면 그 생명체를 완전히 이해한 것인가요?
지난 시간에 언급한 복잡계 현상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성원 하나하나를 안다고 해서 그들 사이의 협동현상에 의한 전체의 집단성질을 자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단성질이란 이른바 새롭게 떠오르는 거죠. 생명도 이같이 떠오르는 현상입니다. 더욱이 이미 지적한 혼돈이라는 현상 때문에 초기조건의 미묘한 차이가 결과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나비효과처럼 말이죠. 생명도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유전자여닫이(gene switching)를 통해서 유전자의 발현이 달라지는데, 그 여닫이는 미묘한 차이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결과를 완전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할 수 있지요.
따라서 우리가 유전자 정보만 알면 모든 걸 다 알 수 있다는 생각, 이른바 유전자 결정론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론물리학의 관점에서는 분명합니다. 그동안 생물학의 주류는 분자생물학으로서 이를 공부하다 보면 대체로 유전자 결정론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물리학, 특히 복잡계의 관점에서 보면 동의하기 어렵지요. 물론 유전자가 아무런 구실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상당히 강력한 제한 조건을 제공합니다. 강조하는 점은 환경과 유전자는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러한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론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상호작용을 무시하고 환경을 따로 떼어버려 유전자만 중요하다고 보는 견해는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이러한 분리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지요.
혹시 사람의 유전자가 몇 개인지 알아요? 유전학 연구에서 널리 쓰이는 씨 엘레강스(Caenorhabditis elegans; C. elegans)는 길이가 1 mm 밖에 안 되어서 우리 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선충입니다. 분류상으로 회충과 같이 선형동물에 속하는데 유전 정보를 완벽히 알고 있으므로 생명과학을 연구할 때 자주 이용합니다. 이것은 2만 개 가량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몇 개나 될까요? 씨 엘레강스는 눈에도 잘 안 보이는 '미물'입니다. 사람은 이른바 '고등동물', 더욱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요. 따라서 10만 개는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인간 유전체 계획(Human Genome Project)으로 사람의 유전자가 몇 개인지 알아냈습니다. 처음에 그 결과가 믿어지지 않아서 발표를 제대로 못했다고 합니다. 기대보다 훨씬 적어서 4만 개라고 발표했는데, 이도 지나치게 많이 잡은 것이고, 결국 2만 5천 개 이하, 대체로 2만 2천 개 가량으로 정정했지요. 그러니까 씨 엘레강스와 사실 비슷하네요. 사람이 눈에도 잘 안 보이는 작은 벌레와 유전 정보의 양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것이 유전자 안에 있다는 믿음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유전자에 있다고 하면 사람이나 씨 엘레강스나 결국 2만 개 남짓한 유전자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고, 따라서 둘에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얻어지네요. 기분 나빠요? 아무래도 씨 엘레강스보다는 사람이 더 복잡하고 형질이 다양할 텐데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요.
여기서 더 복잡하고 형질이 많다는 것이 우월하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흔히 쓰는 고등동물이나 하등동물이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사람이 예컨대 벌레나 세균보다 하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물 종류 중에서 이 지구의 주인이 무엇일까요? 곤충? 다른 의견 있어요? 세균? 지구의 주인이 무슨 뜻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체 수로 하면 어떤 것이 가장 많을까요?
생물을 분류할 때 계(kingdom)-문(phylum)-강(class)-목(order)-과(family)-속(genus)-종(species)이라고 배운 기억이 나는지요? 예컨대 호랑이는 동물계, 등뼈[척추]동물문, 젖먹이[포유]강, 고기먹음[식육]목, 고양이과, 고양이속, 그리고 호랑이종으로 분류됩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분류인 계에는 식물, 동물, 미생물의 세 가지가 있다고 배웠나요? 그것은 사실 19세기에 만들어져서 20세기 중반까지 쓰이던 분류 체계입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해 전에도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 그렇게 돼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50년 이전 내용을 답습하고 있었지요.
현재는 유전자가 닮은 정도에 따라 대체로 여섯 가지의 계로 나눕니다. 동물(animalia), 식물(plantae), 곰팡이(fungi), 원생생물(protista), 세균(박테리아; (eu)bacteria), 그리고 시원세균(archae bacteria)인데 앞의 네 가지는 핵을 지닌 세포로 구성된 진핵생물(eukarya)이고 세균과 시원세균은 핵이 분화되지 않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계통발생으로 보면 동물과 식물, 곰팡이 등 진핵생물은 매우 가깝지만 세균과 시원세균은 상당히 다릅니다. 따라서 계보다 더 큰 분류로 세균, 시원세균, 그리고 진핵생물의 세 가지 영역domain을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 중에서 개체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진핵생물이 아닌 세균과 시원세균입니다. 여기저기 세균이 많은데 사실 우리 몸속에도 세균이 엄청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수천억 이상일 겁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세포는 몸의 구성 세포들이 아니고 바로 세균이지요. 그런데 개체 수 말고 질량으로 하면 어떨까요? 세균은 아무리 많아 봤자 별로 무겁지 않겠지요. 지구에서 전체 질량이 가장 많은 생물계는 무엇일까요? 식물? 그럴 것 같네요. 1980년대까지는 대체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나무는 한 그루라도 다른 동물 몇 마리보다 크고 무겁지요. 그래서 식물이라고 믿어 왔는데 최근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극한 상황의 환경에서도 세균, 특히 시원세균이 많이 서식함이 알려지면서 의견이 좀 바뀌었습니다.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질량으로 봐도 세균이나 시원세균이 가장 많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놀랍죠? 세균이 실로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얘기고, 그러니 지구의 주인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만큼 우수하니까 극한 상황에서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세균이 가장 고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세균이라면 전염병을 연상하는데 실제로 병원성을 지닌 세균은 전체에서 극히 일부의 종류뿐입니다. 나머지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실 유해와 유익이란 사람의 기준일 뿐이고 전체 생태계의 입장에서 보면 반대일 수도 있지요. 어쩌면 생태계에서 가장 해로운 생물 종이 바로 인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사람이 다른 생물보다 유전자는 크게 더 많지 않은데 실제로는 여러 가지 형질이 많이 발현됩니다. 이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유전자는 여러 결정 요소 중에 하나로서 하나의 유전자가 단독으로 특정한 기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요소 사이의 협동현상이 중요함을 나타냅니다. 흔히 유전자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환경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음도 알려졌지요. 결론적으로 유전자만 알면 모든 걸 안다는 생각은 타당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인간 유전체 계획은 아주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그 결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기대보다 적을 겁니다. 예를 들어 유전체 계획을 통해 사람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하면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선전했지요? 불치병인 유전병을 치료한다, 왜 그럴 수 있겠어요?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이지요? 이는 유전자가 잘못돼서 유전병에 걸린 거니까 그 유전자를 바꿔치기 해서 정상으로 만들면 될 거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어느 것이 정상인의 유전자인지 알아야 하잖아요. 정상인의 유전자가 있어야 비교해서 이건 잘못됐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어떤 것이 정상의 유전자인가요? 유전자가 모든 사람마다 완벽하게 같지는 않습니다. 서로 다른 염기 서열이 흰자질 합성에서 같은 기능을 할 수 있으며, 사람의 경우 유전자 당 스무 개가량의 뉴클레오티드(nucleotide)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어느 것이 정상인지 말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어차피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무슨 근거로 이 사람은 정상이고 이 사람은 비정상이라고 분류할 수 있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유전자가 어떻게 핵심적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생명에서 유전자의 역할이 뭔가요? 기본적으로 흰자질을 만드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지 정보를 갖고 있지요. 유전자를 보통 청사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흰자질을 어떻게 만들지―흰자질은 아미노산을 알맞게 결합시켜 나가는 건데―아미노산을 어떤 순서로 붙일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설계하는 것이 유전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미노산을 어떤 순서로 결합시키는지에 따라 다른 흰자질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의 유전자가 2만 2천 개 정도라고 했는데 사람의 흰자질이 몇 가지쯤 될까요? 흰자질은 종류가 많습니다. 우리 몸은 대부분이 흰자질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피부, 머리카락, 손톱도 흰자질이고, 세포막은 아니지만 세포 안에도 여러 종류의 흰자질이 많습니다. 세포막에서 물질을 통과시키는 통로도 흰자질로 되어있지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힘살(근육)이나 여러분이 먹는 고기도 대부분 흰자질입니다. 물론 흰자질만 먹는 것이 아니라 많은 양의 지방도 같이 먹지만 말이죠. 우리 몸에서 생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효소나 호르몬, 항체도 모두 흰자질입니다. 실로 모든 것이 흰자질이라고 할 만하죠. 이렇게 흰자질은 무척 다양한 종류가 있고 다양한 기능을 하는데, 우리 몸에 몇 가지 종류가 있을까요?
갑자기 생물시간이 된 것 같네요. 그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10만 개 정도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요. 유전자는 2만 3천 개인데 유전자가 만드는 흰자질은 어떻게 10만 개나 있을까요? 그래서 원래는 유전자가 적어도 10만 개는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흰자질을 결정해야 하니까요. 만일 모든 것이 유전자 안에 있다면, 유전자 하나가 흰자질 하나만 만들 터이니 유전자 수가 흰자질 수만큼은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유전자는 교차(cross-over) 현상에 의해서 다른 것과 섞이고 이에 따라 다른 흰자질을 만들기도 합니다. 유전자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고 그것을 통해서 전체 집단성질을 만들어 낸다는 거지요.
아무튼 '정상인의 유전자'를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알려면 엄청나게 많은 정상인 집단의 유전자를 모두 조사해서 그 안에서 이른바 '정상'이라 할 수 있는 변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병의 환자 집단을 많이 조사해서, 변이들이 어떻게 돼 있는지 조사해야 하지요. 그러한 시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글쎄요,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자료의 변이가 클 수 있는데 평균이란 개념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유전병의 발병을 유전자의 잘못으로만 돌리기에는 불확실한 면이 상당히 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실제로는 환경의 영향도 중요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유전자가 얼마나 다를까요? 사람끼리 유전자가 어느 정도 같을까요? 정확한 값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사람끼리 99%는 같겠지요. 처음에 지적했지만 여러분과 여러분 부모님은 99.9% 이상 같아요. 그런데 100%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쌍둥이의 경우입니다. 동물이나 인간의 복제도 마찬가지로 유전정보를 100% 같도록 만들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을 복제한다고 해서 이른바 분신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쌍둥이가 서로 분신은 아니지요. 분명히 다른 사람입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은 다를 수 있고 성격 따위도 좀 다를 수 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는 유전자가 같아도 개체가 완벽하게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쌍둥이를 태어나자마자 따로 격리시키고 각각 다른 환경에서 키운 경우를 들어보았지요? 그래도 쌍둥이는 어느 정도 비슷한 습성과 취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과를 가지고 환경보다 유전자의 영향이 결정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유전자가 완전히 같은데도 다른 점이 오히려 더 많다는 사실, 비슷한 정도가 유전적으로 관련이 없는 두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정도에 비해 얼마나 의미 있게 큰지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쌍둥이는 개체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아홉 달의 기간을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같은 환경에서 보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하면 정반대로 해석, 곧 오히려 유전자의 역할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해석이 타당할까요?
사람이 아닌 동물을 복제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고 성공적이었죠. 그림 1에 보인 복제 양 '돌리(Dolly)'가 유명했습니다. 물론 다른 동물 복제는 그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오래 전에 성공했고, 처음으로 젖먹이동물(포유류)을 복제한 것이 돌리입니다. 그런데 복제 성공률이 얼마나 될까요? 복제를 어떻게 하는지 알죠? 포유류의 배아는 감수분열한 두 배우자의 생식세포가 만나서 수정하여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하면 어머니, 아버지 양측의 유전정보가 섞이게 되지요. 어느 한 개체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배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난자에서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핵을 없애버리고 대신에 그 개체의 체세포 핵 하나를 집어넣고 분화시키는 겁니다. 원리는 간단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수억 년 동안의 진화를 통해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된 것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게 쉬울 리가 없겠지요. 잘 이루어진 자연선택을 거슬러야 하니까요. 그래서 성공률은 보통 3%를 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복제된 동물은 여러 문제점을 보일 수 있습니다. 돌리가 결국 어떻게 됐는지 알지요? 정상적인 수명의 반도 못 살고 늙어서 죽었습니다. 매우 빨리 노화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안락사'시킨 것으로 기억합니다. 텔로미어(telomere - 염색체 끝에 있는 염기들로 세포 분열이 일어날 때마다 조금씩 없어지지요) 문제라고 추정합니다. 체세포 복제를 하면 텔로미어가 이미 닳아져 있으므로 유전자에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보아도 복제하는 것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왜 인간을 비롯해 많은 생물들이 단성생식 대신에 양성생식을 하겠어요? 아메바 같이 단성생식을 하는 생물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복잡한 생물들은 대부분 양성생식을 할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왜 여자와 남자가 있냐는 거죠. 사실 불편하잖아요. 여자와 남자를 합해서 하나로 있으면 편할 텐데, 결혼할 필요도 없고 애가 필요하면 자기 혼자서 만들면 되잖아요. 양성생식에서는 애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복잡합니까? 사회적으로도 복잡하지만 생물학적으로도 복잡하지요.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하잖아요. 아메바 같은 것은 얼마나 간단해요, 원할 때 둘로 딱 나누면 되는데. 그런데 왜 양성생식이 주가 됐을까요?
학생: 단성생식으로는 발전이 없어서요.
일리가 있네요. 유전자의 다양한 풀(pool)을 만드는 것이 종의 생존에 유리합니다. 진화에서 유전자의 변이를 다양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므로 유전자를 섞어서 양성생식을 하게 된 겁니다. 이에 반해 체세포 복제는 단성생식을 한다는 건데 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우수하지 못한 것을 만들게 되고, 위험할 수 있는 거죠.
사람의 경우에는 아직 배아복제를 성공한 보고가 없습니다.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서 떠들썩했는데 거짓으로 판명이 났지요. 마치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듯했던 희대의 사기극이었고 우리 사회의 천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희극이자 비극이었습니다. 배아복제의 성공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적어도 수백 개의 난자를 시도해 보아야 성공 사례를 얻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사람의 난자를 수백 개는커녕 몇 개 얻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인간 배아복제는 현실적으로 시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기극의 경우에는 확인된 것만 1200개의 난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200개의 난자를 죽인 거지요. 여기서 난자 채취에 결부된 어려움과 윤리적 문제도 심각합니다.
난자를 채취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정자는 참 쉽죠. 한 번 사정하면 수억 마리나 나오지요, 아무런 문제없이. 그러나 난자는 아주 귀합니다. 한 달에 한 번밖에 배출하지 못하죠. 평생에 만들어 배출할 수 있는 난자 개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배란촉진제를 맞고 기다란 관을 찔러 넣어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위험합니다. 궁극적으로 폐경기가 앞당겨지므로 관련된 후유증을 겪게 되고, 심지어 직접적으로 치명적인 후유증이 보고된 적도 있지요. 과연 난자를 채취당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무려 천 개가 넘는 난자를 채취했다는 건 정말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앞 강의에서 ≪쥬라기 공원≫을 언급했는데 그 저자가 최근에 줄기세포 문제를 다룬 ≪다음(Next)≫이라는 소설을 출판했습니다. 그 소설에 줄기세포 사기극의 주역으로 황 박사라는 이름이 등장하지요.
더 문제가 되는 건 복제한 배아에서 추출하는 줄기세포(stem cell)에 관한 잘못된 믿음입니다. 생명을 언제부터 생명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논란이 많은 문제지만 배아는 조건만 맞으면 그대로 자라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줄기세포를 추출하면 결국 배아는 파괴 되고, 이는 생명을 죽인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탯줄 혈액에서 추출하는 이른바 성체줄기세포의 경우에는 이러한 배아와 관련된 문제는 피할 수 있으나 다음에 논의하는 문제는 마찬가지로 해당됩니다. 그림 2에 보인 줄기세포란 분화가 일어나기 전이라 여러 가지 장기로 분화될 가능성이 있는 세포입니다. 뇌세포도 될 수 있고 근육세포가 될 수도 있는데, 결국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지요. 예를 들어서 신경세포를 얻으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 확률보다는 다른 세포가 될 확률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어떤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지 우리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특정한 유전자 조합이 발현돼 특정한 세포로 분화하는지는 모르는데, 다만 환경의 영향이 중요하다는 건 확실합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만들어진 줄기세포가 암세포로 분화할 확률이 높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예가 많은데,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제어하기 어렵지요. 이론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앞에서 말한 이유, 곧 복잡계 현상 때문에 조절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설사 원하는 세포로 분화했다 하더라도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에 있는 DNA에 의한 거부반응이나 유전자 오염의 가능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요.
결론적으로 줄기세포를 활용해서 난치병을 치료하겠다는 시도는 현재로선 요원한 꿈입니다. 단편적인 성과는 얻을 수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예측할 수 있고 현실성이 있는 성과는 앞으로 20년, 30년, 100년 걸릴지도 모르고, 글쎄요,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론물리학의 관점으로 보면 본질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복제된 줄기세포로 치료하겠다는 난치병들이 주로 어떤 것들이지요? 몇 종류 되지 않는 선천적인 유전병들 말고는 당뇨병이나 심혈관계 질환,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뇌신경계 질환 등인데 대체로 통틀어서 성인병이라 부르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성인병이 왜 생기죠?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잘못된 환경과 생활 습관입니다. 그렇다면 원인은 놓아두고 고장이 난 부분만 고치면 될까요? 무엇이 근본적이고 주된 것인지 오도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수명을 연장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노화돼서 못쓰게 된 걸 바꿔치기 하자는 얘깁니다. 현대 사회에서 수명이 많이 연장됐다고 말하는데,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현재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학생: 80살이요.
옛날보다 훨씬 오래 살게 되었지요. 그런데 평균수명이 왜 이렇게 연장된 줄 알아요? 사실은 유아사망률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반은 죽었다고 하지요. 유아사망률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평균수명이 엄청 늘어난 겁니다. 유아사망률은 그 나라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유아사망률은 이른바 '후진국'이라는 쿠바와 비슷한 수준이지요. 아무튼 유아사망률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또 한 가지는 항생물질의 개발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지요. 주로 이 두 가지입니다.
이미 노화된 사람, 예를 들어 60세가 넘은 사람들이, 최근 50년 동안 수명이 얼마나 늘어난 줄 알아요? 우리나라 통계는 없어서 모르겠고, 미국 통계로 기억하는데 불과 넉 달입니다. 50년 동안 거의 늘어나지 않았지요. 아마도 우리나라는 영양 상태가 향상되었기 때문에 더 늘었을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영양결핍이 많았으니까요. 거꾸로 요샌 영양과잉 때문에 문제가 되지요. 아무튼 그동안 진정한 의미의 수명 연장은 별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노화는 사실상 막지 못했다는 얘기지요. 아마 앞으로도 어려울 겁니다.
혹시 자동차를 운전하는 학생이 있으면 생각해 보세요. 여러 해 운전하다 보면 점화플러그(plug)를 갈아야 하고, 발전기(generator)가 고장 나서 바꾸고, 조금 있으면 방열기(radiator)가 새서 갈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전체를 다 갈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결국 폐차할 수밖에 없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서 장기가 노화돼서 고장 나면 이것 갈고 저것 갈고 해서 정상적인 삶을 얼마나 늘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유전자 변형 유기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 곧 유전자 조작 식품을 보아도 - 다음 강의에서 간단히 언급하려 하지만 - 결국 과학과 기술이 가치중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문제들은 정치나 경제, 혹은 사회 이념에 의해서 좌우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생각됩니다.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