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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실용ㆍ비전문ㆍ불성실의 이명박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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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실용ㆍ비전문ㆍ불성실의 이명박 외교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83> 이명박정부 100일 ④

취임 100일의 이명박 정권이 시련을 맞고 있다. 인사문제부터 거의 모든 정책분야에서 문제를 노정하고 있으며, 문제들은 서로 실타래처럼 꼬여서 역(逆)시너지까지 초래하고 있다. 사실 5년 임기 중 100일은 겨우 방향설정 정도만 가능한 시기다. 특히 외교 분야의 경우 성과는커녕 관계설정조차 명확해지기 힘든 기간이다. 물론 후보시절부터 큰 방향이나 대원칙 등을 천명하고 선거에서 평가를 받지만, 정권획득 후 달라지는 위상과 환경에 따라 수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짧은 시간에 이미 많은 일들이 진행형이다. 초기에 맞닥뜨린 대표적 외교문제는 역시 대미외교와 대북관계인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과 남북대화 단절로 삐걱거리고 있다. 이 외에도 대일외교와 대중외교 어느 하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 실용주의는 발견하기 어렵고, 전문성과 성실성도 보이지 않는다.
  
  대미외교
  
  이명박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한미관계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었다. 과거 두 정권에서 한미관계가 최악이었다는 인식으로 출범한 정권이었기에 한미관계 회복이 절대명제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비책을 나름대로 준비했던 모양이다. 하나는 미국쇠고기수입 전면개방이고, 다른 하나는 대북강경론으로의 복귀였는데, 그러나 이 선택들은 패착임이 드러나고 있다.
  
  첫 미국방문과 동시에 이루어진 쇠고기수입재개 협상은 처음부터 협상이라 할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쇠고기수입재개 건을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일방적 선물-또는 뇌물-로 여겼던 것 같다. 최근 미 축산협회장의 말을 미루어 봐도, 현재 국민저항의 핵심원인인 30개월 월령과 뼈를 비롯한 부산물 수입문제 등을 당시 협상과정에서 우리 측이 강력하게 요구했었더라면 미국이 수용가능 했을 수도 있던 상황으로 보인다. 뼛조각이 소량만 묻어와도 전량 환수시켰던 상황과 비교하면 조건을 달았어도 협상타결의 여지가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우리가 이 협상에서 준 것만 있고, 얻어낸 것은 거의 전무했다.
  
  전임 정부와 완전히 차별화되는 어떤 결단(?)을 미국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조건을 단 채 풀어줄 경우 선심용으로서의 "때깔"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인가 반대급부로 얻어낼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으며, 이는 과거 독재정권시절의 대미저자세 외교를 연상시킨다. 그야말로 실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이번 정책은 매우 불성실한 외교였다. 협상문의 오역파동에서부터 드러났듯이 전문지식이나 철저한 검토가 부족했던 것은 물론이고 국민정서에도 무관심했다. 국민들의 반대목소리를 이용해 보다 유리한 협상을 이끌 수 있었던, 현대외교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양면게임의 원리에 대한 고려도 물론 없었다. 결국에는 안 사먹으면 그만이라는, 마치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마리 앙뜨와네뜨 식의 접근을 함으로써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다.
  
  한미동맹을 격상시켜 가치, 신뢰, 평화에 기반을 둔 전략동맹으로 변화한다는 부분도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지만, 동맹이란 공통의 적에 대한 군사동맹이 가장 확고한 법인데, 추상적인 가치들을 동맹의 핵심으로 삼는다는 것이 과연 격상일까? 게다가 한반도의 범위를 넘어선 전략동맹이 한반도에서의 위협억지를 존재이유로 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캠프데이비드에 초청된 최초의 한국대통령이라는 겉모습 외에 어떤 실용성이 있었던지 묻고 싶다. 오히려 이후로 PSI와 MD참여, 그리고 방위비 분담, 해외파병 등의 미국의 압력과 요구가 더욱 거세질 수 있는 계기까지 마련해주었다.
  
  대북정책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출범 직후부터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의 가장 핵심이었던 햇볕정책을 폐기 또는 대폭 수정하고자 했다. 비핵3000으로 대표되는 새 정부의 정책은 큰 틀에서 햇볕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보다 엄격한 원칙을 강조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근본노선의 차이가 존재한다. 전임 정부의 경우 병행추진 또는 비등가성 상호주의였다면, 현 정부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조건부 지원책이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북한이 '조건을 지키면' 보상이 더 크다는 약속정도일 것이다.
  
  비핵 3000은 부시행정부가 취임 후 6년간 실패한 것을 답보하고 있다. 당근을 키우는 것, 그것도 한국에서 제공하는 당근은 현 구도에서 대북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지난 15년 동안 입증되었다. 실용정부라면 북핵문제가 본질적으로 북미양자문제라는 것부터 파악했었어야 했다. 한국이 당사자임에도 이런 구조인 것은 아쉽지만 현실이다. 남북의 긴장완화가 한국이 가진 지렛대를 높여준다고 판단한 전임정권보다 더 아마추어적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을 폐기하면서 내세운 이유가 실용의 관점에서 더 이상의 일방적인 퍼주기는 안하겠다는 것이라면, 그동안 어쨌든 퍼준 것까지 부정하는 것이 과연 실용인가?
  
  미국의 대북정책변화를 읽어내는 데도 실패했다. 이명박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던 즈음에 미국과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가졌고, 농축우라늄과 시리아커넥션 문제가 조정되어 협상이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알려졌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이명박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단호한 정책을 주문하자 부시대통령이 오히려 말을 아꼈던 것은 그래서이다. 5월 초 북한은 미국에게 핵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자료를 넘겼으며, 미국은 북한핵개발에 관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완벽한 자료라고 화답했다. 테러지원국명단 삭제와 더불어 북한은 그동안 남측의 지원에 상당 부분 의존해오던 식량문제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숨통을 텄다. 이렇듯 통미봉남을 북한이 획책했다기보다, 남한 스스로 아드-맨-아웃(odd-man-out)의 구조를 만들고 자신을 소외시킨 셈이 되었다. 1994년처럼 합의에서는 배제되고 보상에만 참여한 전례가 재현될 조짐이 있다.
  
  영변핵시설 폐기 검증에 관여했던 성 김 미국무부 한국과장은 부시행정부 임기 안에 미국이나 북한 어느 쪽도 협상결과를 바꾸어놓지 못할 정도로 진전시키는 것이 현 미국정부의 방침이라고 했다. 북한 역시 존 매케인에게 정권이 넘어가 네오콘들이 컴백할 가능성에 대비해서 부시대통령 임기 내에 일을 매듭지으려고 한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이명박 정부만 미 네오콘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지워버린 10년
  
  현 정권이 유행처럼 즐겨 쓰는 '잃어버린 10년' 보다는 '지워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더 알맞을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이 진정한 실용정부였다면 이전 정권들에 대해 이렇듯 전면부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 정권이 말하는 실용은 전임정권을 이념정권으로 규정하고, 자신은 대척점에 서겠다는 또 다른 이념이 되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친미외교나 반(反)햇볕정책은 어디를 보아도 이념적 대안이지 실용은 아니다. 그래서 100일이 지난 현재 손에 쥐고 있는 실용의 대차대조표는 초라하다. 앞에서 지적한 대미 및 대북관계는 물론이고, 대일관계 및 대중관계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일본의 뒤통수치기나 중국의 외교결례를 말하기 전에 보다 신중한 접근을 못한 현 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원인이 아니라 비실용, 비전문, 불성실 외교의 결과이다. 특히 친미로의 급선회를 만천하에 알림으로써 중국의 반감을 자초한 면은 매우 아쉬운 행보였다. 표면적으로라도 균형외교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전략적 모호성이 요구된다.
  
  시리아 북쪽과 터키 남쪽에 걸쳐 있는 타우르스(Taurus) 산맥은 유명한 독수리 집단서식지다. 그런데 여기를 갈매기들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고, 독수리는 그 소리를 듣고 쫓아가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독수리의 공격이 있는 것을 아는 갈매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비행 전에 돌덩이를 집어물고 산을 넘어간다고 한다. 한국은 동북아 열강의 틈에서 이런 노련한 갈매기가 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작부터 너무 쉽게 그리고 경솔하게 노출하고 있다. 입에 문 돌은 떨어뜨리고, 온 산이 울리도록 소문내며 날아가는 한국을 주변국들이 마구 쪼아대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노련하고 지혜로운 갈매기처럼 전략적 모호성을 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실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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