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세밑 통영 달아의 일몰 ⓒ이상희 |
▲ 통영 논아랫개 마을에서 맞이한 장엄한 일출 ⓒ이상희 |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는 통영
요즈음 통영은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평상시에도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을 잡기 어려울 정도고 활어시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니 연말연시인데 오죽하랴. 아마도 전국의 항구도시 중 가장 호황을 누리는 곳이 통영이 아닐까 싶다. 연말연시면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일출과 일몰을 보고 싶어 한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해를 마감하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겐 없겠는가마는 그런 행운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천 리 길을 달려와야 볼 수 있는 황홀한 일몰과 일출 모두를 사는 곳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는 통영 사람들은 행운아들이 아니겠는가. 통영에서 일몰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은 미륵도 서쪽 해변 척포'와 달아 마을들이고 일출을 가장 보기 좋은 곳은 미륵산 정상이나 논아랫개 같은 미륵도 동쪽 마을들이다.
오늘 나그네는 일몰을 보기 위해 중앙시장 앞에서 달아 행 시내버스를 탄다. 버스는 통영대교를 건너 세포고개를 지나 삼덕항으로 향한다. 통영반도와 연륙교로 연결된 미륵도에는 통영의 다른 섬들로 떠나는 작은 항, 포구들이 여러 곳 있다. 통영항과 함께 욕지도와 연화도 행 여객선이 떠나는 또 한 곳은 미륵도의 삼덕항이다. 통영항보다 거리가 가까우니 시간도 덜 걸린다. 곤리도행 배도 삼덕항에서 뜬다. 달아항에서는 여객선 섬나드리호가 연대도와 학림도, 저도, 송도, 만지도 등을 순회한다.
돌장승의 코와 눈이 사라진 까닭은?
삼덕항 앞바다는 당포해전의 무대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연전연승의 신화를 만들어 간다. 조선수군이 옥포해전에 이어 두 번째로 승리를 얻었던 전투가 당포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임진왜란의 상징인 거북선이 최초로 등장했다. 선조 25년(1592년) 6월 2일 8시경 사량도 부근 해상에서 휴식 중이던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왜선이 지금의 삼덕항 부근 당포 선창에 정박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출동해 10시경 당포 앞바다에 도착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이순신 함대는 왜선 21척을 불태우는 전승을 거둔다. 작은 전투였지만 임진왜란 전세 역전의 시발점이 된 중요한 전투였다.
▲ 원항마을의 여자 벅수. ⓒ강제윤 |
삼덕항 도로변에는 당포해전 전승비가 서 있다. 전승비 옆에는 삼덕리 마을 주민들이 제를 지내는 벅수도 서 있다. 돌장승인 벅수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해마다 이 벅수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모신다. 삼덕항 부근 원항마을에도 아주 흥미로운 벅수 두기가 서 있다. 원항마을 입구 벅수 2개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있는 문화재이기도 하다.
옛날 원항 마을에서 아들 낳기를 희망하는 여자들은 이 벅수의 코를 갉아 먹었다 한다. 벅수가 아니더라도 득남을 기원하며 돌부처의 코를 갉아먹는 풍습은 과거 이 나라 도처에 성행하던 민간 신앙이다. 굳이 코를 떼어먹는 것은 유감주술의 영향이다. 비슷한 것끼리는 감응한다고 믿는 것이 유감주술이다. 코는 남성의 상징이니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코를 떼어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유산을 원하는 여자들은 벅수의 눈을 파서 가루 내어 먹었다. 잔인하지만 이 또한 유감주술이다. 눈을 파낸다는 행위가 죽임을 상징하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또 재혼을 원하는 과부가 마을을 떠날 때는 벅수 앞에 신발을 벗어놓고 갔다. 신발의 방향은 마을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신발의 방향을 돌려놓는 속임수를 쓴 것은 죽은 남편의 혼을 속여 뒤쫓아 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귀신도 모르는 일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겠는가!
▲ 달아 해변에서 마주한 황홀한 일몰. ⓒ이상희 |
통영 최고의 일몰 포인트, 달아 전망대
시내버스가 삼덕항을 지나 연명마을을 통과한다. 연명마을 폐교에는 연명 예술촌이 들어서 있다. 통영의 화가들이 입주해서 창작 활동을 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시내버스 바닥에는 할머니들이 중앙시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이고 나갔던 빈 고무대야가 놓여있다. 할머니들은 철마다 야채, 곡식, 과실 등 농산물이나 굴, 고동, 생선 등을 대야에 이고 나가 팔고 온다. 굳이 오일장 날이 아니라도 그때그때 물건이 생기면 버스를 타고 나간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면서 바라보는 통영바다와 섬들의 풍경은 이국적이다. 다른 세상에 온 것을 일깨워주는 은빛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보석 같은 섬들이 눈부시다.
연명마을 바로 다음 정류장이 달아 전망대 입구다. 고개를 넘으면 달아마을과 달아포구가 있다. 달아마을 중턱의 수산과학관 마당에서 보는 일몰도 아름답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달아 전망대를 찾는다. 나그네도 달아전망대 입구에서 내린다. 달아전망대 왼쪽은 한산대첩의 현장인 한산도 바다, 오른쪽은 당포해전의 전승지 당포바다다. 이 전망대에서는 멀리 욕지도와 두미도까지도 한눈에 조망된다. 맑은 날이면 삼천포와 남해까지도 보이니 미륵산 정상 못지않은 전망이다. 이곳이 통영 8경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그런 탁 트인 전망과 아름다운 일몰 때문일 것이다. 달아 전망대에 있는 구조물은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작은 정자 하나와 나무 갑판이 전부지만 이 전망대는 어느 이름 난 전망대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인공 구조물을 적게 만들수록 사람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혜택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달아 전망대는 몸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 달아전망대에 서면 통영의 섬들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이상희 |
어떤 지역에 가면 그 자체로도 전망이 아름다운데 굳이 전망대라는 이름의 거대한 타워나 건물을 세워 풍광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구조물들은 전망대가 아니라 전망 '방해'대다! 땅에서 몇 미터 더 올라간다고 전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인공의 구조물을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공의 전망대는 애써 자연을 찾아온 사람들을 자연과 격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망대 건물 안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도 없고 바다내음과 풀과 나무의 향을 맡을 수도 없다.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도 들을 수 없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풍경을 시각으로만 제한시킨다. 그것들은 인간의 우둔함을 보여주는 어리석음의 전망대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인공을 최소화한 달아 전망대는 풍경과 자연을 한껏 끌어안을 수 있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전망대다.
▲ 통영 바다의 노을은 간혹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이상희 |
인공 구조물은 전망대가 아니라 전망 '방해'대!
안내판에는 달아란 이름이 이곳의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를 닮은 데서 유래됐다고 적혀있다. 또 일설에는 임진왜란 당시 아기(牙旗)를 꽂은 전선이 당포에 도달했다는 데서 달아란 지명이 유래했다고도 설명한다. 코끼리 어금니를 담았다는 유래도 그다지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지만, 임진왜란 관련 지명유래 또한 견강부회(牽强附會)처럼 느껴진다. 지명유래란 것이 원래 그렇다. 작명의 기록이 뚜렷이 남아있지 않은 한 시대를 달리하면서 몇 번씩 바뀌고 또 엉뚱하게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지명유래란 전설의 고향이기 십상이다. 통영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김일룡 선생은 달아란 지명을 "옛 가야계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다라(多羅)계의 지명에서 유래한 토박이 지명 '가라, 다라' 등을 음차표기한 한자지명으로 사료 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전망대는 평일인데도 오고 가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오늘은 하늘이 흐려 일몰이 신통치 않다.
"이걸 볼라고 여그까지 왔어."
"짠, 하고 해가 나왔으면 좋겠다."
장엄한 일몰의 기대를 저버린 하늘에 대한 원망의 소리다. 그 마음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자연의 일을 사람이 어쩌랴. 실망이 크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달리 가져보면 어떨까. 황홀한 일몰을 보지는 못했으나 여기까지 오는 노고를 들였으니 저 망망한 바다와 섬들, 바닷바람 소리도 듣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파도소리처럼 철썩인다. 바라는 것을 다 얻지 못했다하여 애달플 것은 또 무엇이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설렘과 기대감으로 얼마나 행복했었는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삶은 실상 과정의 연속이다. 여행도 과정이다.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 그 자체가 아닌가!
□ 강제윤 시인 시인, 에세이스트, 여행자, <프레시안> 인문학습원 <섬학교>와 <통영학교> 교장. 도서출판 호미 기획위원.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 등단. 문화일보 선정 평화인물 100인. 2006년부터 사람 사는 한국의 모든 섬을 걷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그동안 250여개의 섬을 걸었다. 지금도 섬들을 걸으며 섬의 문화와 풍속, 사람 사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 3월부터는 통영 동피랑 마을에 거주하며 통영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일도 병행해 왔다. <통영학교>는 2012년 12월 22일 개교 예정이다. <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어머니전(문광부 우수문학도서)><섬을 걷다><그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자발적 가난의 행복(문광부우수문학도서)><보길도에서 온 편지><올레 사랑을 만나다>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 이상희 사진가 사진가이자 향토 음식 연구가다. 통영에 살면서 20여 년간 통영과 통영의 섬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오고 있다. 2012년 5월 통영 거북선호텔 아트홀 개관 초대전 '별 하나 떨어져 섬이 되다'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오랫동안 통영의 섬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온 이상희의 아름다운 사진들은 개발의 바람으로 원형이 사라져 가는 섬들에 대한 마지막 기록으로서 가치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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