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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도 사랑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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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도 사랑나무 아래서

강제윤의 '섬을 걷다' <12> 대천 외연도

대천 항, 생의 마지막 유람

유람 떠났던 배가 대천 항으로 돌아온다. 생의 봄날을 다 소진해버린 노년의 유람객들, 오는 봄을 마중 나왔다. 어떤 이는 오늘 유람이 생의 마지막 유람이기도 할 것이다. 생이 지속될 수 없는 것처럼 유람 또한 계속되지 않는다. 이제 선착장에 발 디디면 노인들은 다시 무거워진 발 이끌고 온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음은 평생을 떠다니면서도 몸은 떠돌 수 없었던 서러운 생애들. 어느새 바다 위를 흐르던 경쾌한 유행가 가락은 간데없고 구슬픈 단가가 흐른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을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 하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한들 쓸데가 있느냐.....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생전 일배주만 못하니 세월아, 가지마라."

대천 항 어시장은 쏟아져 들어오는 수산물과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활력이 넘친다. 수협 어판장에는 경매가 끝난 아귀들이 산처럼 쌓였다. 횟집 수족관마다 철만난 물고기들이 철없는 물고기들과 나란히 잡혀와 가쁜 숨을 헐떡인다. 영문도 모른 채 잡혀왔다가 영문 모르고 사라지는 것들이 물고기뿐이랴. 어판장 고무대야에는 광어, 우럭, 놀래미, 농어, 문어, 도미들이 안간힘으로 퍼덕이며 탈출을 시도해 보지만 부질없다. 죽음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자 누가 있겠는가. 물고기들의 운명을 쥐고 생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저 장사꾼들도 생사의 판관 앞에서는 한낱 물고기에 지나지 않는 것을.
▲ 충남 보령시 대천항 어시장.ⓒ강제윤

어판장 한 편에는 산채로 팔리지 못하고 그물에서 말라가는 생애들이 널려 있다. 대체 퍼덕퍼덕 헤엄치던 생의 바다를 앞에 두고 널어 말려지는 물고기들의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 사람 또한 어느 순간 삶을 누리던 생애의 벌판에 버려져 저처럼 말라가게 될 것이다. 허기가 몰려온다. 회 한 접시 하고 가라는 상인들의 호객은 끝이 없고 생사의 바다를 헤엄치는 나그네의 의문도 끝이 없다.

배를 타기 전에 끼니를 채울 생각이지만 온통 횟집뿐인 포구에서 혼자 몸의 나그네는 밥 한 그릇 사먹기도 쉽지 않다. 관광객들의 시대, 이 시대는 더 이상 나그네가 환영받는 시대가 아니다. 시장 통을 몇 바퀴 돌아도 반기는 식당이 없다. 반겨주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아는 채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번번이 입구에서 퇴짜 맞는다.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에게 걸망 맨 나그네는 손님이 아니다.

어시장에서 허드렛일로 연명하는 일용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음식점은 관광지에서 천대받는 자들의 유일한 급식소다. 일꾼들은 짜장면과 소주를 시키고 나그네는 짬뽕 한 그릇을 시킨다. 얼큰한 짬뽕 국물을 기대 했으나 쇼팅 기름에 버물어진 국물은 느끼하다. 어쨌거나 짬뽕 한 그릇에 나그네의 뱃속은 든든해진다. 온갖 산해진미에 대한 갈망도 짬뽕 한 그릇이면 족하다. 이제 어시장의 값비싼 해산물도 배부른 나그네에게는 무심한 물건일 뿐. 삶의 허기란 것도 고작 이런 것일까. 짬뽕 한 그릇으로도 꽉 채워지고도 남는.

파도 속에서는 파도가 되고

오후 세시, 외연도행 여객선은 정시에 출항한다. 대천 항을 떠난 배는 호도, 녹도를 들러 다섯 시는 돼야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파랑에 배가 심하게 흔들린다. 나그네의 뱃속도 울렁인다. 섬에서 오래 살았지만 느린 배만 타고 다녔던 나그네에게 쾌속선은 여전히 낯설다. '버스는 앞자리, 배는 뒷자리'란 격언이 있다. 배 멀미를 피하는 데는 기관의 무게로 안정적인 뒷자리가 유리하다. 자리를 옮기니 조금 낫다. 그도 잠시, 먼 바다로 나가자 울렁임은 다시 커진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바다에서 사람이 파도를 이길 도리란 애초에 없다. 흔들리는 배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은 부질없다. 어쩔 것인가. 한동안 허둥대던 나그네는 중심을 잡으려는 몸부림을 그만둔다. 그저 파도에 몸 맡겨보자. 파도가 출렁이는 대로 몸도 따라 출렁이며 가자. 파도 속에서는 파도가 되고, 바람 속에서는 바람이 되어 가자. 파도는 거세지고 배는 더 심하게 요동을 처도 나그네의 몸은 점차 평온을 되찾아 간다.

외연도, 산신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람은 걷기 위해 자주 섬으로 가야 한다. 이 나라에서 자동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길은 섬뿐이다. 외연도처럼 카페리호가 다니지 않는 먼 섬일수록 걷기의 천국이다. 외지인들이 섬으로 차를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섬에게도, 섬을 찾은 사람들 자신에게도. 나그네에게 섬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 느릿느릿 걷고 또 걸어도 작은 섬에서는 시간이 모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남아돌아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남는 시간을 그저 걷는다. 오로지 걷고 또 걷는다. 섬에서는 차에 대한 기억을 철저하게 잊는다. 한 번도 땅에서 발 떼어본 적 없는 것처럼 걷는다. 호흡조차도 발로 한다. 어느 순간 섬은, 대지는 온 몸을 열고 나그네를 받아들일 것이다.
▲ 섬으로 가는 것은 섬이 되는 일이다. ⓒ강제윤

외연도는 대천 항에서 서쪽으로 53km. 충남 보령시 70여개의 섬들 중 가장 먼 섬이다. 외연도를 비롯해 청섬(대청도), 작은 청섬(소청도), 수수떡섬(수도), 밧갱이(횡견도), 느래(황도) 등 10여개의 유무인도로 구성된 외연열도의 중심이다. 나그네는 선창가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숲으로 간다. 섬에 와서 해변이 아니라 숲으로 가는 것은 섬의 당산 나무들 때문이다. 초등학교 뒤에 외연도의 당산 숲이 있다. 3000여 평의 당산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식나무, 찰피나무, 고로쇠나무, 돈나무 등 수 백년 된 늘 푸른 나무와 잎 지는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숲의 수호자는 산신이 아니다. 장군이다. 섬사람들의 뱃길을 지키기에는 당산 산신령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외로운 섬 먼 바다 길은 험하기도 했겠지. 마을 사람들은 그 옛날 이 섬으로 망명했다고 전해지는 중국의 한 장군을 신으로 추대해 당산 숲에 모셨다. 사당의 주인은 진시황 사후 제나라를 세워 왕 노릇을 하다가 한고조 유방에게 패망한 전횡 장군이다.

제나라가 멸망한 뒤 전횡은 500여명의 부하들과 함께 황해의 섬으로 도망쳤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 유방은 사자를 보내 전횡을 소환 했다. 한나라의 수도 낙양으로 향하던 도중, 전횡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전횡의 부하들도 모두 따라 자결 했다. 전횡이 숨어 살던 섬이 오호도(嗚呼島)라고 전한다. 고려 말 문장가 이숭인은 오호도에 대한 시를 남겨 전횡을 기리기도 했다. 그 오호도가 지금의 어느 섬인지 확실한 증거는 없다.
▲ 외연도 당산 숲의 전횡 장군 사당.ⓒ강제윤

외연도의 전설은 그 섬이 외연도라 한다. 외연도에서 남으로 15km 떨어진 군산의 어청도 사람들은 어청도를 오호도라 한다. 중국 청도 부근 즉묵시 앞바다에는 전횡도가 있다. 그곳 사람들은 그 섬을 전횡의 섬이라 한다. 전설은 전횡 일행이 망명한 것으로 전하지만 망명이 아니라 점령일 것이다. 패주한 군사들이라 하나 500의 큰 군사 집단이 작은 섬 하나쯤 차지하는 일은 손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2000년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오늘의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다. 그 섬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면 그렇다. 전설이란 본래 진위를 따질 것이 못 된다.

외연도 사람들은 전횡 사당에 제사 지내기 전에 먼저 산신에게 제를 지낸다. 장군 신에게 밀려난 산신에게 미안함이 남았던 것일까. 섬사람들은 장군 신을 주신으로 모시지만 나그네는 권력 다툼에서 패망한 장군보다는 한때 이 숲의 주인이었던 인자한 산신에게 마음이 더 끌린다. 산신에게는 산과 바다의 나물 등 간단한 제물을 올린다. 고기는 올리지 않는다. 산신은 절대 고기는 받지 않는다.

이 땅의 산신들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신이었다. 산신들은 호랑이가 호환을 입힌다 해서 벼락을 내려 응징하지 않았다. 사나운 호랑이마저 온순하게 길들여 타고 다녔다. 이 산하의 산신들은 생명을 해치고 그 피로 연명하는 유일신교의 신처럼 잔인한 신이 아니었다.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신이었다. 그런데 그 많던 산신들, 해신들, 평화의 신들은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나그네는 숨어버린 외연도 산신을 만나기 위해 외연도의 밤길을 잠행한다.

물고기는 어부들이 잡고 이익은 상인들이 얻고

섬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사내들이 어선을 타고 나가 밤새 잡아온 물고기와 해산물들이 갑판에 산처럼 쌓였다. 사내들은 광어, 우럭, 꽃게 따위 활어들을 골라 수족관에 살리고, 여인들은 아귀와 꼴뚜기, 낙지, 문어, 밴댕이, 장대, 각시볼락, 넙치새끼 따위를 추려낸다. 멸치와 아귀는 박스로 담겨 쌓인다. 150여 가구가 사는 이 섬에만 70여척의 크고 작은 어선이 있다. 섬에서 잡힌 물고기와 해산물들은 전부 대천항의 수협 위판장을 통해 뭍으로 팔려 나간다. 안강망 어선들은 밤 열두시 경부터 고정식 안강망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들을 거두기 시작한다. 적어도 새벽 다섯 시까지는 섬으로 돌아와야 한다. 수송선이 기다리고 있다가 수산물들을 취합해 대천으로 싣고 간다.
▲ 어부들이 밤새 그물을 거둬오면 섬의 아낙네들은 물고기들을 고르고 추려낸다.ⓒ강제윤

같은 활어도 낚시로 잡은 것이 더 비싸고 그물로 잡은 것은 값이 싸다. 신선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활어 시세가 많이 떨어졌다. 우럭이 킬로 당 7~8천원, 농어는 킬로에 4천원도 못 받는다. 광어는 7천5백 원. 낚시로 잡은 것은 그것보다 일 이 천 원 더 받는다. 아귀는 30킬로 한 상자에 비싸야 2만원, 쌀 때는 1만 3천원을 간신히 받는다. 수협 위판 가격이다. 어민들은 이렇게 싼값에 활어와 선어들을 내다 팔지만 뭍의 최종 소비자들은 값 비싼 자연산 활어를 먹을 엄두도 못 낸다.

어민들 손에서는 킬로 당 몇 천원에 불과한 생선들도 도시의 횟집에서는 자연산이란 이름하에 10만원을 훌쩍 넘겨받는다. 열 배 이상 값이 부푸는 것이다. 어민들이 잡아온 물고기와 해산물들의 이익은 어민들에게 돌아오지 못한다. 고스란히 중간 유통 업자들, 횟집 주인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그럴수록 어민들은 더 많이 잡기 위해 어린 것들까지 싹쓸이 한다. 불법 어업이 어민들의 욕심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잘못된 유통 구조 개선에는 노력하지 않고 손쉬운 단속에만 열을 올린다. 어민들에게 모든 죄를 떠넘기고 어민들을 범죄자로 만든다.

중국인 선원, 황지엔 쩡의 거룩한 밥상

안강망 어선 '오대령호'에서도 거둬온 수산물을 추리느라 분주하다. 이 배는 선장이 선주다. 선장 포함해서 선원이 다섯. 그중 둘이 중국인이다. 한족 출신이라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이 서로간의 어려움이다. 선원들과 마을 여인들이 수산물 분류 작업을 하는 동안 요리사 출신의 선장이 아귀 찌개를 끓이고 밴댕이를 굽고 갑오징어 김치 볶음을 만들어 아침 밥상을 준비 한다. 스물아홉 살의 중국인 선원 황 지엔 쩡은 생선 손질을 한 뒤 쌀을 씻어 밥을 짓는다. 손이 물에 불어 하얗다. 중국인 선원은 월 80만원, 한국인은 월 150~200 만원을 받는다.

선장은 제주 김녕 출신이다. 해녀였던 누이가 물질 왔다가 외연도 남자와 결혼한 까닭에 선장도 누이를 따라와 열다섯 살 때부터 배를 탔다. 밥 짓는 화부 일부터 시작해 35년간 배를 탔으니 어느새 나이 오십 줄이다. 친형은 잠수 하다 죽었고, 매형도 배를 타다 죽었다. 누이는 섬을 떠났으나 선장은 외연도 여자랑 결혼해 외연도에 남았다. 선장도 한때 고군산열도 근해에서 키조개 잡이 다이버를 하다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으로 살았다. 의식을 회복하자 병원을 나와 민간요법과 운동으로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후유증이 남아 여전히 하체에 힘이 없고 말이 어눌하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됐을 때는 절망에 빠져 농약을 먹었으나 경비정에 실려가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분류 작업을 하던 여인들이 아침을 먹고 나서야 선원들은 다 식은 밥을 먹는다.

"다 식었어. 뎁혀야지. 밥은 차도 국은 뎁혀야지."
"숟가락 다섯 개만 씻어와."

한국인 선원이 중국 선원 황지엔 쩡에게 심부름을 시키지만 황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한국인 선원은 화를 내며 욕을 한다. 그 때 옆 어선의 선장이 건너오며 말린다.

"그러지마. 내가 일본 배 탈찍에 서럼 많이 받아봐서 알어. 말 못알아 듣는 서럼이 얼마나 큰디 그랴."

중국인 선원 황지엔 쩡은 벌써 세 그릇째 밥을 먹는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왼손으로 밥그릇을 받치고 찬 밥덩이를 입에 넣는다. 생애여! 눈물겹고 거룩한 밥상이여!
▲ 고단하고 허기진 삶, 눈물 겹지 않은 밥이 어디 있으랴.ⓒ강제윤

나무들의 공동체, 사랑나무 숲

오대령호 갑판에서 아침을 탁발한 나그네는 다시 당산 숲으로 간다. 숲에는 만나야 할 나무가 있다. 아침의 숲은 입구부터 정령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한 그루의 당산 나무와 수백 그루의 당산 나무숲은 그 신령함이 다르다. '영험'도 그러할 것이다. 이 숲으로 나그네를 이끈 것은 가장 늙은 나무의 정령이 아니다. 두 그루, 아니 하나가 된 두 나무, 동백나무 연리지의 정령이다.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하나로 이어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이 연리(連理)다. 가지를 통해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가 되고 몸체가 붙어서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 된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땅속의 뿌리가 엉켜서 하나가 된 나무들은 연리지나 연리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끌리는 것이 사람이다.
▲ 외연도 당산 숲 동백 나무 연리지.ⓒ강제윤

연리가 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둘이 하나가 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두 나무의 몸이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성장하면 맞닿은 부분이 압박을 견디다 못해 껍질이 벗겨지면서 생살이 부딪혀 하나로 이어진다. 그 쓰리고 아픈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먼저 부피성장이 일어나는 부름켜가 이어지고 유세포(柔細胞)가 하나로 섞인다. 그 뒤를 따라 일반 세포들이 이어지면서 연리의 과정이 끝난다. 연리는 같은 종의 나무끼리만 가능하다. 연리 된 나무들은 서로 양분과 수분을 공유하며 광합성도 함께 한다. 전혀 새로운 한그루 나무가 탄생 하는 것이다.

연리지, 서로의 촉수를 뻗어 한 몸이 된 사랑나무. 이 숲의 동백나무 연리지는 어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나무가 된 것일까. 이토록 신령한 숲에서라면 무엇인들 환생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저 동백나무들뿐이랴. 이 당산나무숲 또한 연리의 숲이다. 이종(異種)의 연리들. 각기 다른 종의 나무들이지만 수 백 년 세월 동안 같은 땅의 양분과 햇빛을 고루 나누고 어깨 걸어 큰 바람을 함께 막아내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신령하고 단단한 숲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팔을 뻗어 하나가 된 나무들, 뿌리를 붙들어 서로 하나가 된 나무들. 수백 수천 그루 이종의 나무들이 마침내 하나의 종이 되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버린 된 당산 숲. 나무들의 공동체. 외연도 사랑나무 숲은 큰 바람에도 오래 오래 무사하리라.
▲ ⓒ프레시안

누리집 http://www.pogildo.pe.kr

(필자 사정으로 연재가 하루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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