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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도 주민들을 살려주세요"

강제윤의 '섬을 걷다' <10> 지금 태안 앞바다에선...

안흥항

"가의도 주민들을 살려 주세요!"
"청정 바다 대학살자 삼성/정부는 선 보상하라!"
"무한 책임 무한 보상 삼성 그룹 약속하라!"
"터전 잃은 영세 어민에게 하루 속히 보상하라!"
"청정 바다 대학살자 삼성, 정부는 왜 말이 없는가! 맨손 어권 보상하라!"


태안에 들어선 순간 나그네는 문득 사람이 눈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환청이 아니다. 거리는 한산한데 현수막들이 내지르는 아우성에 나그네는 귀가 다 먹먹하다. 2008년 3월 20일, 나그네는 태안읍에서 신진도행 버스를 탄다. 섬으로 가는 버스. 섬은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시골 버스의 승객들은 태반이 노인이다.

고르지 못한 노면 탓에 버스는 자주 덜컹거린다. 어찌된 영문일까. 버스에 안내양이 있다! 내가 1970년대로 가는 버스를 잘못 탄 것은 아닐까. 승객의 대부분이 노인인 시골 버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들을 위해 안내양을 둔 것이다. 안내양은 노인들을 부축하기도 하고 짐을 받거나 내려 주기도 한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윤보다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풍경이. 버스는 40여분 만에 태안군 근흥면 안흥항에 도착한다.

금가루가 귀하다지만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 본래부터 타고난 재앙 덩어리는 없다. 어떤 사물도 그 자체로는 선이나 악이 아니다. 같은 사물도 쓰임새를 잘 찾으면 축복이고 잘못 찾으면 재앙이 된다.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불이 사람을 태워 죽이는 불이 되기도 한다. 기름 또한 그렇지 않은가. 그것들도 탱크 안에 있다면 보물이 아니었겠는가. 바다로 흘러들었으니 재앙이 된 것이다. 기름은 얼마나 귀한 물건인가. 태안 앞바다에 재앙을 불러온 것은 기름이 아니다. 사람이다.
▲ 안흥항, 무인도 방제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주민들. ⓒ강제윤

안흥항 횟집들은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포구는 섬에 방제 작업을 다녀오는 어선들의 귀항으로 분주하다. 주민들은 격렬비열도 등의 먼 무인도까지 매일 방제 작업을 나간다. 방제 작업으로 받는 일당이 유일한 수입이다. 하지만 일당은 외상이다. 여느 해 같았으면 어로에 나갔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왔을 주민들이 오늘은 기름 묻은 얼굴에 입 꼭 다물고 실의에 빠져 귀항한다. 주민들은 방제 작업 명부에 사인을 하고 총총히 사라진다.

안흥항에서 다리를 건너면 신진도다. 나그네는 연육교를 걸어서 건넌다. 연육교 근처 해안에는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필드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걸음은 여유롭다. 안흥항, 어느 횟집 주인 여자는 "골프 치러 온 사람들도 요새는 생선회는 안 시키고 매운탕 같은 익힌 음식만을 먹는다." 했다. 물고기들은 대부분 먼 바다에서 잡아오는 것들이니 안심해도 좋다고 여주인은 강조하지만 관광객들의 마음은 아무래도 꺼림직 한 모양이다. 실상 바다 속을 자유롭게 오가는 물고기들이니 서해바다 물고기가 남해에서 잡힐 수도 있고 남해바다 물고기가 서해에서 잡힐 수도 있다. 두려워하고 안심하는 마음이 때로는 근거 없는 믿음에 불과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만 믿으려 한다.

신진도

운명, 사람에게 운명이란 것이 있을까. 태안으로 오는 내내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태안 사람들에게 닥친 불행은 그들의 운명 탓이었을까. 오랫동안 나그네는 운명 따위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운명을 믿는다. 사람에게, 모든 존재에게 운명은 분명히 있다. 일반적으로 운명은 타고난다고 믿어진다. 하지만 나그네는 운명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운명은 절대자가 아니라 사람이나 사람이 속한 사회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필연적인 운명은 없다. 운명은 선택에 의해 시시각각 바뀐다. 태안 바다의 재앙은 재난에 무방비인 이 사회가 선택한 운명이었다.
▲ "청정바다 대학살자 삼성"ⓒ강제윤

안흥 바다처럼 신진도 해안 또한 이제 기름의 위협에서 거의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다는 한껏 푸르다. 신진도 안흥 수협 어판장 수조는 물메기와 놀래미, 가자미, 우럭 등의 생선들로 가득하다. 제철 만난 쭈꾸미도 눈에 띈다. 먼 바다에 조업을 나간 일부 어선들이 잡아온 것이다. 외지에서 온 화물차로는 얼음 잰 가자미 상자들이 실려 나가고 활어를 옮겨 싣는 손길도 분주하다. 물고기들은 싱싱하고 건강해 보인다. 그래도 도시의 횟집에서는 태안에서 들어온 것을 손님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손님들도 무탈할 것이다.

방파제에는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낚시꾼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낚시 배들의 출조도 잦아졌다. 낚시 배는 먼 바다로 가는 까닭에 거리낌이 없다. 때때로 어부들만큼이나 바다 속을 잘 아는 것이 낚시꾼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서해바다 물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이 바다에 희망적인 소식이다.

가의도, "아이고 죽기시오."

신진도항에서 막배를 탄다. 가의도 행 여객선 백화산호는 아침, 저녁 두 차례, 첫배와 막배만 운항한다. 가의도는 안흥항에서 5킬로 쯤 서쪽 바다에 위치해 있다. 백화산호는 30분 만에 가의도에 도착한다. 2007년 12월 7일, 삼성중공업의 예인 선단이 정박해 있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호를 들이받아 기름유출 사고를 낸 이후, 국립공원 태안 바다는 죽음의 바다로 변했었다.
▲ "가의도 주민들을 살려 주세요."ⓒ강제윤

바다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정부의 대응도 사고유발자 삼성의 노력 때문도 아니었다. 오로지 맨손으로 기름 바다에 뛰어든 태안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덕이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태안의 바다는 다시 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원봉사자의 발길이 드문 섬들은 여전히 재앙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가의도 해변, 자갈을 삶아내는 통.ⓒ강제윤

가의도 역시 상황은 절망적이다. 기름사고가 나기 전까지 주민들은 미역과 톳, 홍합 등을 채취하고, 바다 목장에서 전복과 해삼 등을 길러 상당한 소득을 올렸다. 하지만 사고 뒤 여느 태안 주민들처럼 가의도 주민들도 생계의 터전을 완전히 잃었다. 기름은 모든 바다 생물들을 절멸 시켜버렸다. 이제 섬사람들은 더 이상 바다에서 먹을 것을 얻을 수도 소득을 올릴 수 없게 됐다. 그래도 주민들은 섬을 떠나서는 살 곳이 없어 낮에는 방제작업을 나가고 저녁에는 지친 몸 이끌고 밭일을 한다. 바다에서 얻는 것이 없어졌으니 땅이 더욱 귀하게 됐다. 방제 작업을 끝내고 온 칠순의 노인은 방제복도 벗지 못한 채 마늘밭의 김을 맨다.

"할머니 오늘은 어디서 방제 작업 하셨어요?"
"장계라고 멀어요. 저기 산 하나를 넘어가야 돼. 멀어서 다리는 아프고. 먹을 것은 없고. 뭐 해먹을 게 있어야지. 다 기름투성이니."

"쉬지도 못하고 밭을 매시네요."
"아이구 죽기시오. 아주. 밭에 달래가 너무 많아 갖고. 이걸 캐내 버려야지."

"요즘도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찾아오나요?"
"더러 오는디 요즘엔 잘 안오딘 걸요."

"방제 작업이 쉽게 끝나기 어렵겠지요?"
"아주 천리요 만리요. 멫년 해도 못하겠시오."

"군청에서도 나오고 그러나요?"
"오늘도 왔다는디 우덜은 일 하니께 어디 자세히 알갔소."

"전에는 바다에서 무엇이 많이 나왔었나요?"
"홍합이랑 미역도 하고, 다시마, 톳도 해서 먹었는디 이제 뭐가 있시야지요. 우럭 놀래미 같은 괴기도 많이 났었는디. 기름 투성이라서 당최 먹고 살 것이 있시야지. 암 것도 못해 먹겠어요. 굶어 죽겠어요. 큰 일 났어요, 큰일. 이제 머 해먹고 산데요. 큰 문젠디요."

"정부에서 생계비는 좀 나왔나요?"
"생계비라고 돈 백 만원도 안 나왔시요."

"보상은 안 해준다던가요?"
"그런 소린 없던 걸요. 알아 봐야하는 디 알아도 안 보고 그냥 일만 하는디 잘 모르것시오."
▲ 가의도, 방제복도 못 벗고 마늘밭 매는 할머니.ⓒ강제윤

가의도에는 45가구 70여명의 주민들이 산다.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지난 겨울, 가의도 주민들에게는 가구당 350만원씩의 생계비가 지급 됐다. 할머니 등 서너 사람은 생활 보호대상자라 겨우 70만원씩 받았다. 생보자라고 생계비가 덜 지급된 까닭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사람 목숨 값이 생보자와 생보자 아닌 사람 간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생보자는 도움을 더 많이 주어야 할 더 어려운 사람이 아닌가. 이 사회에는 바닥까지 차별적이다.

"겨우내 보일러를 틀지도 못하고"

섬에는 민박 간판을 내건 집들이 여럿 있지만 나그네는 민박을 구할 수가 없다. 하룻밤 재워줄 수 없겠느냐는 물음에 민박집 주인들은 모두 난색을 표한다. 손님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알아보고 오지 그러셨어유. 저 건너 집 한번 가보서유."

민박집 주인도 난감하고 나그네도 난감하다. 소득이 없어 주민들은 자신들의 방도 기름 보일러를 때지 못한다. 그러니 어찌 다른 방을 덥힐 기름인들 있겠는가. 그나마 아궁이가 있는 집들은 나무를 때서 난방을 하지만 그도 아니면 전기장판으로 추운 밤을 견딘다. 겨우내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냉방이라도 좋으니 잠만 재워 달라고 사정도 해봤지만 여의치가 않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대책 없이 찾아온 나그네의 불찰이다.

생계 걱정과 방제 작업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주민들. 주민들은 외지인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또 섬을 다녀간 외지인들의 책임 탓이기도 하다. 마을 이장님과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외지인에 대한 깊은 불신이 느껴졌다. 더러 사려 깊지 못한 자원 봉사자들이 돌아가 인터넷 등에 섬의 인심이 나쁘다고 불평을 한 모양이다. 그 일로 주민들의 상처가 깊다.

끝내 민박집을 구하지 못했어도 나그네는 후회하지 않는다. 뭍에서 편안한 잠을 자고 들어 왔다가 낮에만 돌아보고 나갔더라면 어찌 섬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실상을 깊이 알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아직 날이 찬데 어떻게 하지? 침낭이 없으니 노숙을 하기도 마땅치 않다. 한참을 고민하면서 솔 섬 마을 고개를 넘는다. 문득 언덕 위 발전소 건물이 눈에 딱 들어온다. 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내연화력 발전소. 사무실이 있으면 숙직실도 있겠지. 관리인을 만나 사정을 하니 관리인은 사무실 바닥에 난방이 들어온다며 선뜻 재워주겠다 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 가의도 앞바다 솔섬.ⓒ강제윤

관리인은 가의도가 고향이다. 인천에서 직장에 다니다 IMF 때 귀향 했다. 지금은 가의도 발전소 여섯 명의 직원 중 한명이다. 발전소는 세 명씩 2교대로 근무한다. 관리인은 가족들이 사는 태안에서 배를 타고 출퇴근 한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다. 몇 년 전, 가의도의 초등학교 분교가 폐교 되었다. 없애기는 쉬워도 한 번 사라진 학교를 다시 세우기는 어렵다. 가족들과 섬에 들어와 살고 싶어도 아이들 교육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아이들이 없을 때는 휴교를 했다가 아이가 생기면 다시 학교를 여는 것은 왜 안 될까. 경제적 논리만을 앞세워 교육당국이 섬에서 학교를 아주 없애는 것은 섬을 죽이는 행위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싶어도 살길을 아주 끊어 놓았으니 이제 이 섬에 사는 노인들이 모두 이승을 떠나고 나면 마침내 섬은 무인도가 되고 말 것이다. 관리인은 숙직을 위해 발전기 옆으로 갔고 나그네는 사무실 바닥에 눕는다.

나이 92세 노인까지 기름 방제에 나서고

가의도에는 세 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가장 작은 솔 섬 마을은 몇 가구 살지 않는다. 큰 마을과 작은 마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려 산다. 과거에는 큰 마을에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작은 마을에 사람이 더 많다. 작은 마을이 큰 마을이 되고 큰 마을이 작은 마을이 됐지만 이름은 여전히 그대로다.
▲ 가의도 해안의 바위는 여전히 기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강제윤

아침이 와도 섬은 적막하다. 예년 같으면 새벽부터 어장을 보러 가고 갯것들을 거두느라 분주했을 터다. 하지만 바다 일을 할 수 없으니 주민들의 생활 패턴도 도시 노동자들처럼 바뀌었다.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 한다. 방제 작업장이 직장이고 방제업체가 고용주다. 가의도의 기름 방제는 9시부터 시작 된다. 작업 시간이 되자 하얀 방제복을 입은 노인들이 하나 둘씩 집 밖으로 나온다.

주민들은 섬의 청년층인 60대 노인부터 최고령의 92살 노인까지 모두 해변으로 간다. 한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걷는다. 마을 가까운 선창가에서는 거동 불편한 노인들이 방제작업을 한다. 선창가에서는 또 방제업체 직원들이 네모난 가마솥으로 기름에 찌든 자갈을 삶아 낸다. 가마솥에 뜬 기름은 수거하여 통에 모으고 삶아낸 자갈은 해안으로 돌려보낸다. 주민들은 방제 업체에 고용되어 일을 하지만 노임은 외상이다.
▲ 지팡이 짚고 방제작업 나가는 할머니.ⓒ강제윤

대부분의 주민들은 큰 마을 고개를 넘어 더 먼 해변으로 간다. 헌 옷 등으로 암벽과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아 낸다. 겨우내 방제 작업에 매달렸지만 해안은 여전히 시커멓다. 접근이 어려운 절벽들은 방제에 나설 엄두도 못 낸다. 이대로 여름이 온다면 바위에 붙은 기름이 녹아내려 바다는 다시 한 번 기름 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삼성은 사회적 손실까지 배상해야 옳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는 고질적인 악습이 하나 생겼다. 사고는 정부나 기업이 치고 뒷수습은 늘 국민들에게 떠넘긴다. IMF 때도 그랬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가져온 재앙을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 같은 애국심에 전가했다. 재벌 그룹들의 수백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국민세금으로 대신 갚아줬다. 최근에는 국가의 관리 소홀로 남대문이 불타자 대통령이 국민성금으로 복원 하자는 엉뚱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번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역시 사고유발자인 삼성은 책임을 회피하고 죄 없는 태안 주민과 국민들만 방제를 위해 모진 고생을 했다. 이 땅에서는 큰 재앙을 불러온 자는 결코 책임을 지지도 처벌 받지도 않는다. 주민들은 삼성에게 배상을 요구하지만 검찰은 삼성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이상한 나라다.

물론 배상이 된다 해도 결코 주민 배상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태안의 해안은 국립공원이다. 기름은 사람들의 터전만이 아니라 국립공원의 뭇 생명들도 함께 죽였다. 삼성은 주민 배상은 물론 국립공원 태안의 생태계까지 완전복구 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삼성은 이 나라가 입은 사회적 손실과 삼성 대신 고초를 겪은 자원봉사들에게도 배상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체 사고를 낸 삼성의 사주는 태안 땅에 한번 다녀가기라도 한 것일까. 늦었지만 삼성의 사주는 이제라도 태안으로 찾아와 백배 사죄하고 직접 해안의 기름을 제거하며 참회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삼성의 사주는 아직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는 노인들과 함께 매일 이 고개 길을 넘나들며 기름 방제 작업을 해 본 다음에야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 방제업체 직원들이 장비를 동원해 방제작업 중이다. ⓒ강제윤

사랑의 바다 생명의 바다

해안가 바위에 엉켜 있는 기름은 언뜻 검은 해초처럼도 보인다. 실상 기름이 아니었다면 바위에는 돌김과 파래, 미역과 톳 같은 해초들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해안에는 해초만이 아니라 홍합이나 게, 고동 같은 바다 생물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이 바다에 와서야 나그네는 풀리지 않던 의문 하나를 풀 수 있을 듯하다. 이 섬에 오기 전까지 나그네는 어째서 저 태안 바다의 기름에는 불이 붙지 않는 것일까. 태안 사람들의 가슴 속은 스스로 내지른 화염으로 이미 새까맣게 타 버렸는데 어째서 그 불길은 저 바다의 기름 덩어리들을 태워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다.
▲ 기름에 절은 가의도 해변. ⓒ강제윤

나그네는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섬과 바닷가 사람들은 오랫동안 바다에서 이익만을 취하고 살았다. 바다의 목숨이 위중해진 다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바다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됐다. 바다는 수탈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공생의 바다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태안 사람들에게는 기름띠 덮인 재앙의 바다일지라도 더 이상 원망의 바다일 수 없다. 어떤 분노로도 불태워 버려서는 안 될 생명의 바다, 사랑의 바다인 것이다.
▲ 기름에 절은 검은 자갈밭.ⓒ강제윤

▲ ⓒ프레시안

(매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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