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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없는 이라크에 오니 참 좋네"

'역사적 이라크 방문' 이란 대통령, 미국 대놓고 조롱

역사적인 이라크 방문에 나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미국의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바그다드에서 미국을 마음껏 농락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일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독재자(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가 없는 이라크에 방문하니 진심으로 기쁘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을 세움으로써 강성 반미국가이자 역내 강국인 이란에게 이라크를 '헌납'한 상황을 조롱한 것이다. 이라크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이란이란 말을 실감케 한 장면이었다.
▲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 함께 이라크 군 의장대 사열을 받는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오른쪽) ⓒ로이터=뉴시스

그린존 미 대사관 근처서 펼쳐진 악담 퍼레이드

아마디네자드의 강경 발언은 테헤란을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이라크 방문 하루 전인 지난 1일 미국을 '바그다드의 점령자'라고 지칭하며 "군대를 16만명이나 보낸 나라가 오히려 이란을 보고 이라크 내정에 간섭한다고 하는 건 우습다"라고 비꼬았다.

이란이 같은 시아파 정권인 이라크 정부를 쥐락펴락하고 있고 이라크 내 저항세력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아마디네자드는 2일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와의 회견에서도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무런 근거 없이 다른 나라를 비난하고 중동에서 미국의 문제를 증폭하기만 한다"며 "이라크 국민이 미국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이어 시아파 지도자 압델 아지즈 알 하킴과의 기자회견에서도 이란이 이라크의 저항단체를 지원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미국은 이 문제에 관점을 바꿔야 한다"며 "6년 전 중동에는 테러가 없었는데 이방인(미국)이 발을 들이자마자 테러리스트가 함께 왔다"고 공박했다.

아마디네자드는 또 미국을 '적'이라고 부르며 "이라크의 안보는 이란의 안보이기도 한데 이 지역의 안정을 원하지 않는 적들은 그걸 원치 않는다"라며 "따라서 적들은 계속 이라크 내정을 간섭하고 군대의 주둔을 정당화한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적국의 원수 호위해 주는 미국의 '굴욕'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을 향한 그의 강성 발언이 미군이 병력을 집중시켜 철통같은 방위를 하고 있는 그린존(특별경계지역)에서, 그것도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이 2km 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감시와 테러예방이라는 목적이었지만 미군 헬기도 쉼 없이 아마디네자드를 따라다녀 그를 '호위'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바그다드의 미국 당국자들은 요청이 없다면 아마디네자드를 보호하는 일에 미군이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군대를 16만명이나 보내 놓고도 '밤도둑'처럼 왔다 가는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방문일정과 동선을 예고하고 의장대 사열까지 받는 아마디네자드의 모습은 미국에 모욕적일 수밖에 없었다.
▲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왼쪽)이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아마디네자드의 이라크 방문은 10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이란 대통령이 처음으로 바그다드에 온 것이라는 의미 외에도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를 찾은 중동지역의 첫 국가원수라는 상징성도 컸다.

과거 미국은 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를 견제하고 세계 3위의 이라크 석유자원을 장악하기 위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과 수니파 정권을 지원했다. 그러나 후세인이 미국의 통제권에서 점차 벗어나자 2003년 결국 자신의 손으로 붕괴시켰다.

하지만 수니파 정권 붕괴 후 미국에 의해 세워진 시아파 정권은 후세인 시절 이란에서 망명생활을 한 인사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정치적·종교적으로 이란의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시아파를 견제하기 위해 구 집권층인 수니파들을 다시 정부로 들여보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이라크의 안정을 위해 이란의 힘을 빌어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아마디네자드의 방문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도 내정을 간섭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이라크의 안정을 위해 이란의 손을 빌리려는 의도도 있는 것이다.

이로써 아마디네자드는 이라크와의 경제적·문화적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는 동시에 이라크 문제에 대한 '해결사' 이미지를 굳히겠다는 방문 목적을 대부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디네자드는 또 이번 방문을 통해 이란 핵개발과 관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3차 재제 논의에 힘을 빼는 동시에 오는 14일 있을 이란 총선에서의 지지율 제고를 노리고 있다.

"MEK 문제 풀자" 이란-이라크 합의가 미국에 곤혹스러운 까닭

정상회담에서 아마디네자드와 탈라바니 대통령이 거론한 '인민의 무자헤딘'(MEK, 무자헤딘 에 칼크) 문제도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었다.(☞관련 기사 : 美 네오콘, 이번엔 이란 망명자 단체와 손잡나)

MEK는 1979년 이란 혁명에 반대했던 반정부 무장세력으로 이란 정부에 의해 25년간 1급 수배조직으로 지정되어 있다. MEK는 1980년대 중반 이란을 탈출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편을 들어 조국과 싸웠다. 그러나 후세인이 제거되고 새로 들어선 이라크 시아파 정권은 후세인에 부역한 MEK를 적대시하고 있고, 그들을 이란으로 보내 자국에서 단죄를 받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때 테러조직으로 낙인찍은 MEK 전투요원 3만 5000명 이상을 2004년 봄부터 현재까지 이라크 북부 지역에 사실상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의 각종 협상에서 MEK를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란과 이라크의 대통령들은 공통의 적인 MEK 문제를 풀자고 합의했다. 탈라바니 대통령은 아마디네자드에게 "테러리스트는 이라크 헌법에 위배된다"며 "이 조직을 추방하는데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 당국은 성명서에서 이라크에 무장하거나 조직화된 MEK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발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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