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에 '네이더 변수' 또 등장

대선 출마 선언…민주당 "환상일 뿐" 공화당은 반색

소비자 운동가로 유명한 랄프 네이더(73)가 24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미국 대선에 '네이더 변수'가 또 다시 등장했다.

네이더는 지난 2000년 대선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에서 앨 고어 당시 민주당 후보의 표를 잠식해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는데 '1등 공신' 노릇을 했다고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인물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 대선 후보들과 지지자들은 네이더 출마의 의미를 평가 절하하는 동시에 지지표 이탈에 부심하고 있다.

▲ 네이더가 방송에 출연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플로리다의 악몽 떠올리는 민주당

네이더는 이날 <NBC> 방송 '언론과의 만남'에 출연해 "대통령선거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네이더는 이에 앞서 현재의 대선 주자들만으로는 불공평과 빈곤, 기업의 부정 등을 해결할 수 없다면서 지난달 대선 출마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출마 선언을 준비해왔다.

1992년 이후 네 차례 대선 후보로 나섰던 네이더는 1996년과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2004년 대선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네이더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민주·공화 후보 간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표를 또 다시 잠식한다면 승패를 가를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2000년 대선에서 네이더는 플로리다에서 9만7488표를 얻는데 그쳤다. 그러나 부시 후보가 고어 후보를 537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기자 민주당 지지자들은 네이더만 없었으면 승패가 뒤집힐 수 있었다며 그를 '선거 훼방꾼'이라고 비난했다. 부시는 플로리다에서의 승리로 국민 전체 투표에서 고어에게 54만여표나 뒤지고도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힐러리 한 목소리로 비난

비상이 걸린 민주당은 네이더의 출마를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 1위를 달리고 있는 버락 오바마는 "네이더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정책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채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비판했다.

힐러리도 네이더의 출마에 대해 "스쳐가는 환상(a passing fancy)일 뿐"이라고 깎아내린 뒤 그가 고어의 대통령 당선을 막은 사실을 언급하며 "정말로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를 지지하고 있는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도 네이더 출마가 대선 경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그의 출마 선언을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공화당 예비후보인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주지사는 네이더가 공화당 표가 아니라 민주당 표를 가져갈 것이라며 "공화당은 그의 대선출마를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바논계 미국인인 네이더는 지난 65년 <어떤 속도에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저서로 미국 자동차들의 안전문제를 고발해 일약 '소비자운동의 기수'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소비자 보호와 환경보호 문제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윤만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대기업의 이익에 좌우되는 권력 엘리트와 정부 정책을 '주식회사 미국'이라는 용어로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네이더는 또 환경단체인 익조사그룹(PIRG)'과 '법률구조연구센터' '자동차안전센터' '깨끗한 물 보호 프로젝트' '장애인권리 센터' '연금권리센터' '기업책임프로젝트' 등을 창설하고 월간지인 <다국적 감시>를 만들어 소비자운동을 벌여와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소비자 운동가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