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6일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통해 친서를 전달했다. 힐 차관보는 5일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박의춘 외무상에게 그 친서를 건네줬다.
고든 존드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6일 "부시 대통령이 지난 토요일(1일) 북핵 6자회담 참여국 지도자 모두에게 서한을 보냈다"고 확인했다.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가 김 위원장을 대화 파트너로 분명히 인정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북한과의 양자 회담 분위기가 매우 협조적이었다"는 힐 차관보의 5일 발언과, "미국측은 만족했을 것이고 우리도 만족하고 있다"는 북한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의 말은 양국 지도자간 '친서 대화'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무슨 내용 담았을까?
<중앙통신>이 친서의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친서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강력히 촉구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으로 부시 대통령은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10.3합의)에 따라 북한이 연내에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를 이행하면 미국도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 상응조치를 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그는 '2단계 조치'가 완료된 후 핵폐기 단계에 접어들면 북미수교와 한국전쟁 종료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의지를 피력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부시 대통령은 이처럼 미국이 상응조치를 조속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친서라는 형식으로 강력히 표명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백악관은 '신고' 강조…언론서는 '배핵화와 관계정상화' 강조
존드로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이 서한에서 6자회담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거듭 확인하고 지난 2005년 합의(9.19공동성명)대로 북한이 충분하고도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중국을 방문중인 힐 차관보도 "북한에 대해 신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도 친서를 보내 과거 합의에 따라 모든 핵 프로그램의 세부내용을 반드시 밝힐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이 자체 입수한 친서 요약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우리가 계속해서 진전을 이루려면 핵 프로그램 신고가 완전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AP> 통신은 익명의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고 한반도가 비핵화된 뒤 궁극적으로 관계정상화에 이를 수 있다고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은 북한이 최근 미국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내며 핵 프로그램 신고를 지연시키고 있는 상황과 관련되어 보인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5일 "힐 차관보는 자기의 의무 이행에 대한 부시 정권의 드놀지 않는(굳건한) 의지를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했을 것"이라며 미국의 행동 의지를 강조했다.
공은 김정일에?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행동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면 이제 관심을 끄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다음 행동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6일 "현재 핵문제는 안정적 국면으로 가느냐, 삐걱거리는 굴곡을 겪느냐의 고비에 있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핵무기에 대한 신고와 핵 확산 의혹 해명 등 10.3합의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북한으로서 받아들이기 곤란한 사항까지 요구했을 경우 김 위원장이 취할 행동은 그다지 많지 않아 '고비'가 계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친서 전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재임 당시 세 차례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 이후 경수로 발전소 건설과 대용에너지 보장에 필요한 자금 조성 및 이행을 확약하는 담보서한을 전달했으며 1999년 5월에는 방북한 윌리엄 페리 당시 대북정책조정관을 통해 친서를 전달했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10월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통해 친서를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이에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을 방문한 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통해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부시의 친서에 대해서도 답신을 보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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