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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끊어진 혈통 잇기'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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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통일은 '끊어진 혈통 잇기'만이 아닙니다

[반론] '무리한'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대한 '무리한' 비판

27일 <프레시안>에 나간 한윤형 씨의 글 '코리아 연방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를 처음 봤을 때 처음에는 내심 반가웠다.
  
  민주노동당이 국가비전이란 이름으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건 것에 대해 기자 역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윤형 씨가 글의 초반에 잘 정리했듯이 △통일정책 중 하나에 불과한 그것이 어떻게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바라보는 민노당의 시각을 총괄하는 구호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고 △그것이 결정되는 과정이 그리 민주주의적이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대통령 후보의 통일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던 <프레시안>이 별다른 파급력도 없어 보이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유독 문제 삼을 필요가 있겠냐 하는 소극적인 생각에 미적거리고 있던 터였다.
  
  그런 참에 기자와는 달리 대선에서 민노당을 찍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그의 글쓰기는 꽤 의미있어 보였다. 찍지도 않으면서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읽어본 한윤형 씨의 글은 끝까지 읽어 내리기에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논리의 비약, 개념의 혼동, 그리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말투까지.
  
  코리아연방공화국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보이는 한윤형 씨의 글은 기자로 하여금 반론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흡수통일론 外 모든 통일론은 헌법 제정 전제
  
  일단 글의 순서대로 따라가 보기로 한다. 한윤형 씨는 "코리아 연방제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했다. 1국가 2체제의 연방제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를 어긴다는 것이다.
  
  그의 논지가 약간 모호하지만, 연방제에서 말하는 '2체제'는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를 말하는 사회경제적 의미의 체제 구분이라는 일반적인 설명을 해주면 될 것 같다. 민주공화국이냐 입헌군주국이냐 하는 식으로 정체(政體)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2체제가 민주공화국과 어긋난다는 말은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북한은 공산주의'라는 도덕교과서식 오류다.
  
  그리고 통일은 기본적으로 헌법의 개정이 아니라 제정을 전제로 한다. 연방제가 된다면 연방헌법을 새로 만들고 남북 지방정부의 최고법을 개정해야 하며, 어떤 한 체제로 '일체화'하면 '그냥 헌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통일 논의에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걸 대한민국 헌법 위반이라서 안 된다는 것은 전제가 잘못된 것이거나,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사소한 오류겠지 싶었다. 서론이니까. 이제 본론이 나오겠지.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대해 따질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기대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걸로 끝이었다. 한윤형 씨는 글머리에서 "코리아 연방제를 호되게 비판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런데 헌법 위반이라는 모호하면서도 별로 호되지 않은 비판으로 끝을 내더니, 대뜸 통일을 하지 말자고 나온다. 공격의 초점을 민노당의 코리아연방공화국에서 일반적인 통일론으로 갑자기 확대해버린 것이다.
  
  진화하는 통일론 속 고정된 통일 인식
  
  지금까지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통일을 하지 말자는 대목에 와서는 그 주장 자체에 대한 반론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왜냐면 기자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진적인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통일.
  
  그런데 '통일이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이 답이다'라는 중간제목으로 시작되는 부분을 읽고 나서 기자는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반론을 펴기 힘든 글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앞부분에서는 통일을 하지 말고 북한을 별개의 외국으로 인정하자더니, 뒤에서는 '바람직한 통일'을 이야기 한다. 이것저것 개념과 용어가 요동을 치고 있어서 알쏭달쏭하다.
  
  어느 부분은 100% 동의되다가도 또 어느 부분에 가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소리들이다. 기자 역시 중국의 제국주의적 습성에 경계심을 갖고 있지만, '중국의 야욕 분쇄' 대목에서는 지나친 피해의식이 느껴지는 한편 논리가 몇 단계를 훌쩍 뛰어 넘어 솔직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평화체제(통일지향형이냐 분단고착형이냐도 중요한 쟁점이지만) 구축을 강조하는 점은 기자의 생각과 유사하고, '통일을 욕망하지 않는 통일 방안'이라는 표현한 것을 보면 그가 통일과정의 변증법적 속성을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통일 개념을 혼동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이는데, 따라서 그에 대해 기자 나름대로 머릿속에 정리한 것들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통일의 개념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대부분의 한국인들 머릿속에 있는 통일은 일체화로서의 통일이다. 남북한 두 체제가 하나의 정치·경제 질서로 통합되는 것이다. 그건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흡수하면 간단히 이뤄진다. 혹은 남측이 제기하는 국가연합이나 북측의 연방국가를 오랫동안 지속시킨 후 합의에 의해 하나의 체제를 이룸으로써 완성된다. 한윤형 씨가 '통일을 하지 말자'라고 할 때의 통일은 이러한 '흡수를 통한 일체화'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흡수통일은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자 역시 그런 통일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실제 실현 가능한 통일, 그래서 추구할 수밖에 없는 통일은 그런 일체화가 아니다. 실현 가능한 것은 '법·제도적인 통일'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통일' 혹은 '사실상의 통일' 같은 개념들이다. 앞서 말한 일체화 중 후자의 과정 그 자체 즉, 국가연합이나 연방국가를 통일로 보자는 것이다. 북한의 연방제나 민노당의 코리아연방공화국도 여기에 속한다.
  
  요즘에는 평화체제 구축 상태를 통일이라고 하자거나, 심지어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고 긴장이 완화되며 교류협력이 심화되는 상태를 통일로 보자는 쪽으로 통일론이 진화하고 있다.
  
  한윤형 씨가 말한 바람직한 통일("먼 훗날…굳이 두 집 살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합치도록 하자, 는 식의 통일")은 바로 이 범주에 속하는 발상이고, 한윤형 씨가 편을 들지 않겠다던 백낙청 교수의 통일 개념 역시 그쪽이다. 남북이 2000년 6.15공동선언이나 2007년 10.4정상선언을 통해 잠정 합의한 통일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한윤형 씨가 짧은 4개의 단락 안에서 별다른 수식어나 설명 없이 일체화로서의 통일과 과정으로서의 통일 개념을 왔다 갔다 한다는 점이다. '백낙청과 최장집 중 최장집 편을 들자'는 대목에서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읽히지만, 바로 직전에는 예의 바람직한 통일을 이야기했다.
  
  통일을 민족문제로만 보는 시각에 대해
  
  글의 후반부로 가면서 한윤형 씨는 통일론이 무슨 끊어진 혈통을 잇고 대를 잇자는 전근대적인 민족의식의 발로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 역시 민족모순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라든지, 민족문제가 근본 적대라든지 하는 주장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분단과 통일을 민족주의자들이나 생각하는 문제로 치부한다면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가 처한 '사회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역시 가지고 있다.
  
  따라서 통일 문제는 민족모순이라기보다는 분단모순으로, 혹은 평화의 문제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명명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 안에는 과도한 군비지출, 분단 상황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잘못된 활용, 하나의 경제공동체였던 한반도 남북 각자의 기형적인 발전, 대결 상황을 이용한 남북 위정자들의 비민주적 행태 등등 각종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거듭 말하건대, 모든 문제들이 분단으로 인해 발생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문제들이 분단 상황을 토대로 발생했고 다른 모순 요인들과 중첩되어 이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 그런 문제들이 통일이 되면 다 풀리는가.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통일이냐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방향으로는 남북의 경제적 기형성과 불균형을 해소하는 통일, 매개로는 시민 주도형 통일, 개념상으로는 앞서 소개했던 과정으로서의 통일 등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간과한 채 통일을 단순히 혈통이나 이어보자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너무 협소한 인식이거나 공격을 위해 의도적으로 통일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다. 물론 원래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하자는 것도 아예 소용없는 얘기는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다. 단지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폭력적 언어에 깃든 영혼을 걱정한다'
  
  한 가지 정정하자면, 한윤형 씨는 민족모순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꼬박꼬박 남한이라 부른다고 힐난했다. 그런데 남한은 '남쪽 대한민국'의 약어로 지극히 흡수통일적인 용어이며, 따라서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남한, 북한'이라고 하지 않고 '이북, 이남' 혹은 '남측, 북측'이라고 한다.
  
  굳이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 글의 치명적인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그 한계란 너무나도 감정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어서 생산적인 논쟁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꼴이 한심하다", "정치 때려치워라", "싸가지 없는 짓", "헛소리하지 마라", "별 꼴이 반쪽이다", "생떼를 부리고", "통일에 대한 페티시" 등등
  
  이렇게 해서는 과연 이성적인 논쟁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글쓰기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저쪽에서 먼저 그랬으니 나도 그러는 것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쪽' 말고 이 문제에 관해 차근차근 토론해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이 힘들다. '폭력적인 언어에 깃든 영혼을 걱정한다.' 몇 해 전 전여옥을 비판했던 한 글의 제목이 떠오르고, 며칠 전 심야토론에 나와 사자후를 토하던 이회창 후보 측 모 변호사가 연상될 뿐이다.
  
  끝으로 기자는 한윤형 씨에게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왜 민노당을 찍느냐고. "꼴이 한심"하고, "한국 정치의 단 하나의 영원한 오점"들이 당을 "쥐락펴락" 하고 "오염"시키는 민노당을 왜 찍으려고 하는가.
  
  서두에 "어쨌든 좌파 정당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표현하고자 해서 민노당을 찍겠다고 했는데, 한국 사회에는 좌파 정당이 민노당 밖에 없는 게 아니다. '어쨌든 필요하다'라는 두루뭉술한 이유로 민노당을 찍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단박 연방제' 실현 불가능하다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대한 기자의 생각이 어떤지는 핵심만 말하겠다. 그것은 한마디로 민노당 자주파(NL)의 통일조급증 혹은 과도한 정체성 발현 욕구가 빚어낸 무리한 주장이다.
  
  민노당은 지난 20일 홈페이지에 올린 정책공약집에서 "집권하면 곧바로 북측 정부를 상대로 연방통일국가 건설을 위한 통일협상을 개시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남북한 상황에서 어떻게 단박에 통일협상을 하고 연방국가를 만들자는 것인지 심히 의아하다. 김정일도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또한 민노당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단지 통일방안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국가비전"이라며 통일 외의 다른 문제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왜 굳이 붙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권영길 후보는 또 어느날 통일방안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오락가락 발언까지 했단다)
  
  그럼 어떻게 통일하냐고? 북핵 문제 해결되고, 평화협정 체결 협상 시작되고, 10.4정상선언 이행 시작되면 통일로 가는 것이다. 그럼 민노당은 손 놓고 보고만 있으란 얘기냐고? 민노당이 집권을 하면, 아니 못하더라도 하나하나 해야 할 일은 수두룩하다. 민노당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차고 넘친다. 그걸 여기서 굳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 '집권 후 곧바로 통일협상 개시'만은 아니다.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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