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선포된 파키스탄 비상사태 이후 파키스탄을 방문한 미국의 최고위 관료인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이 17일 무샤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무샤라프와 면담을 한 다음날인 18일 미 대사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비상사태 조치는 자유롭고 공정하면서 신뢰할 만한 선거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무샤라프에게 비상사태를 즉각 철회하고 군 참모총장 직에서 물러나는 한편, 예정된 총선 일정 준수, 언론 통제 중단, 정치사범 석방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무샤라프는 여전히 안보상황을 이유로 비상사태 조치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그는 비상사태 조치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해, 회담이 만족스럽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무샤라프 "비상사태 풀면, '전략적 자산' 위태로워져"
무샤라프는 비상사태 조치가 유지되어야 할 가장 큰 이유로 치안유지와 핵 유출에 대한 대비를 내세우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세력이 위협을 하고 있어 이들과의 전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불과 240km 떨어진 스와트 계곡을 탈레반 세력이 점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자지라>는 "17일 파키스탄 군은 이 지역에서 반군 40명을 사살했지만, 이슬람 무장단체가 마을과 경찰서, 정부 건물 등을 장악했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또한 무샤라프는 이날 방영된 영국의 <BBC>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의 핵무기들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한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총선이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진행되면, 파키스탄의 '전략적 자산'을 위태롭게 할 위험분자들을 불러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관련 기사: "핵무기 확산의 주범은 부시" ).
BBC "네그로폰테, 지원중단 문제 거론"
하지만 <BBC>의 현지특파원 바바라 플렛은 "네그로폰테는 무샤랴프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플렛은 "네그로폰테는 무샤라프에게 어떠한 제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부시 행정부 관료들은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 중단 문제를 꺼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는 조건으로 연간 10억 달러에 달하는 군사지원금을 파키스탄 군부에 제공해왔다. 이 지원금의 중단은 무샤라프의 권력 기반인 군부에 상당한 압력을 가하는 카드이지만, 그동안 미국은 이같은 의사의 직접 표명은 자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네그로폰테 부장관은 무샤라프에게 부토 전 총리와 권력 분점을 위한 협상을 재개할 것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BBC>는 "이 협상은 부토가 비상조치에 대해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겠다고 나서면서 무산됐다"면서 "부토 전 총리는 가택연금이 되었다가 지금은 풀려났지만 협상 재개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토 전 총리는 16일 네그로폰테 부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무샤라프와의 관계 복원에 대해 권유를 받았지만 "무샤라프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네그로폰테가 무샤라프의 군 참모총장 후계자로 이미 지정된 아슈카프 키야니 장군을 만났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무샤라프를 퇴진시키고 키야니 장군을 '킹메이커'로 활용해 민간인 대통령과 총리로 교체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美,무샤라프 실각ㆍ부토 지원 방안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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