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마흐무드'라고 하는 파키스탄인 두 명이 있었다. 임금체불로 우리 단체를 찾아왔는데, 회사와는 잘 해결이 되지 않아 노동부에 진정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이 진정을 할 때 주소며 전화번호는 우리 단체의 것을 기재하였다.
진정 후 며칠이 지나 우리 단체로 출석요구서가 왔고, 한국어를 곧잘 하는 두 사람에게 출석하라고 연락해주었다. 우리 단체는 한국어가 아주 서툰 이주노동자나 사정이 있는 이주노동자가 출석해야 할 때에는 단체 상근자가 동행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자기방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혼자 가게 한다.
두 사람은 모두 한국어가 무난했기에 본인들만으로 출석하라고 연락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출석해야 하는가 물어보아서 한 사람이 위임장을 받아서 출석해도 된다고 했더니 이슬람만 출석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전화해서 충분히 설명했다.
그날 오후, 이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노동부에 갔다 왔는데 사업주가 나오지 않았다고. 그리고 근로감독관이 다시 날을 잡아 연락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업주가 나오지 않았으면 진정인인 이주노동자의 주장이 확인되지 않으니 근로감독관들은 대개 한번 더 출석하라고 말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단체로 다시 2차 출석요구서가 오면 이슬람에게 연락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는데, 이슬람의 2차 출석요구서는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노동부에서 뭔가가 왔다. 그런데 도착한 것은 2차 출석요구서가 아니라 사건종결통보서였다. 내용을 보니 '진정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종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 감독관 왈, 여러 차례 전화로 연락했는데 연락이 안 되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니 종결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감독관이 연락한 곳은 우리 단체가 아니라 이슬람이었다. 감독관에게 사실확인을 해보겠다고 하고 이슬람에게 연락하여 물어보았다. '혹시 감독관에게서 연락이 왔느냐'고. 이슬람은 '연락받은 적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니까 근로감독관이 이슬람에게 몇 번 연락했는데 이슬람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종결처리한 것이었다. 근로감독관에게 '왜 우리 단체로 연락하지 않았느냐. 이주노동자에게 전화연락하는 일은 아주 힘들다. 그래서 우리 단체 연락처를 써넣었고 그 동안 우리와 몇 번 전화통화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감독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그럼 재진정하세요'라고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 했다.
유사한 경우가 또 있는데,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저거라는 몽골인의 경우이다. 그 역시 임금체불로 진정하였는데, 1차 출석일에는 한국어를 잘하는 몽골인이 위임을 받아 출석하여 진술하였고, 2차 출석일은 출석일 당일 출석요구서가 도착하여 감독관과 직접 통화 후 다시 연락을 주기로 하였다.
그러더니 한 10여일 지나 갑자기 두 번 이상 진정인이 출석하지 않았으니 진정의사가 없다고 보아 사건을 종결한다는 통지가 왔다. 근로감독관에게 연락해보았더니 여러 차례 연락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서 종결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나와 통화를 했었고, 진정서에 우리 단체 연락처가 적혀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1차 출석때 대리 출석했던 몽골인의 핸드폰으로 여러 차례 연락했는데 연락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귀국했다. 연락이 되지 않으면 우리 단체로 하면 되는데 왜 우리 단체로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나의 항의성 질문에 감독관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더니 '그럼 재진정하세요'라고 간단하게 답변했다.
재진정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도 있는데, 사실을 알고 보면 그게 만만치 않다. 일단 노동부에 진정하게 되면 보통 1~2번 가량 출석하게 되는데, 이주노동자들은 매번 회사로부터 지청구를 듣고 출석하게 된다. 그리고 임금은 깎이고 차비가 든다. 거리가 멀 경우에는 차비도 만만찮다. 월급을 받지 못해 억울해서 진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렇게 2차 피해를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출석일을 최소화해주는 것이 그들의 2차 피해를 줄여주는 방법이다.
또, 이주노동자들과 연락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보다 훨씬 힘들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다. 우리는 단체를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을 상담할 때 본인의 연락처 외에 긴급연락처(혹은 한국어 가능한 친구연락처)를 반드시 하나 혹은 두 개 정도 확인해두는데, 그 이유는 전화연락이 한국인에게 연락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작업 중에는 사업주들이 싫어하므로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선불제 핸드폰을 사용하는데 전화요금이 없으면 '수신정지'가 되어버린다. 전화번호도 자주 바뀌고, 어떤 경우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전화기와 번호를 아예 줘버리는 수도 있다. 때로는 당사자 연락처와 긴급연락처로 알아둔 연락처가 통화불능이 되면서 아예 연락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들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뭔가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가 이주노동자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회수는 최소한 서너번, 많으면 열댓번까지도 된다. 그러니 이런 성의를 어떻게 근로감독관에게 기대하랴! 그러기에 일단 상담을 받고 진행중인 경우는 모든 연락처를 우리 단체로 하고 중간연락의 괴로움을 우리 단체가 담당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이 이주노동자의 피해구제를 위해서인데, 노동부 진정사건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동안 십여년간 노동부의 근로감독관들은 단체를 통해 진정인과 연락하는 것이 자신들이 일처리하는데 매우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몇몇 노동부 지청의 근로감독관들에게서 '왜 내가 단체에 연락해야 하느냐'라든가 '당사자에게 연락했는데 연락이 안 되더라'라는 얘기가 간간이 나온다. 그러면서 결국은 재진정하게 함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의 2차 피해를 키우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에 대해 설명해주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리고 가만히 관찰해보니 이런 근로감독관들은 특징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젋었고, 감독관이 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한국인이 진정했을 때 그렇게 본인 핸드폰으로 연락해서 출석일을 알려주하는 것 같은데, 한국인과 이주노동자들의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일선에서 상담해온 이주노동자 상담소의 말을 경청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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