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불출마 선언에 범여권은 크게 술렁였다. 대선주자들은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 소식에 일제히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내 대통합파 의원들은 '김 전 의장은 이제 대통합의 지도자'라고 추앙했다.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에 모두가 숟가락 놨다"
김 전 의장의 전격적인 불출마 선언이 범여권에 미칠 파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대목은 김 전 의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기 직전 서울 서대문구 모 음식점에서 열린 대선주자 조찬회동. 문희상 전 의장과 정대철 고문이 주최하는 이날 회동에 참석한 대선주자는 김근태, 정동영 두 전 의장만 참석했다.
조찬회동이 열렸을 때 김 전 의장은 이미 결심이 서 있었으나 여타 참석자는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가장 늦게 도착한 김 전 의장은 '늦게 온 사람이 한 말씀 해달라'는 정대철 고문의 재촉에 한동안 뜸을 들이다 "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세력의 분열로 군정 종식이 날아갔는데 이 6월에 민주세력이 분열돼 군부세력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정권이 날아가면 이 나라 발전, 한반도 평화가 어떻게 되겠냐"며 "오늘 설렁탕 먹고 힘내서 부활의 불길이 타올랐으면 좋겠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어진 비공개회동에서 김 전 의장은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비공개 회동 직전만 해도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던 참석자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회동장을 나왔다. 정동영 전 의장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김 전 의장의 눈가에도 눈물 자욱이 있었다.
정대철 고문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통합을 위한 살신성인이라고 평가한다"며 "상황이 급변한 것 같다. (김 전 의장의 대선불출마 및 탈당 소식을) 여기 와서 알았다. 후보자 중심의 연석회의를 얘기하려 했는데 무의미해졌다.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은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의견을 밝히자) 모두가 숟가락을 놨다"고 비공개회동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씁쓸한 표정의 김근태 전 의장은 한 말씀 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기자회견장에서 보자"는 말만 남기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정, 손, 천 "안타깝다…대통합의 밀알이 될 것"
정동영 전 의장은 조찬회동 직후 참석자들과 연세대 이한열 열사 추모비를 찾은 자리에서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고통스러운 살신성인의 결단으로 평가하고 대통합의 밀알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 전 의장은 "이번 결단이 대통합을 이루는 데 횃불이 되길 바란다"며 "김 전 의장의 결단이 대통합에 대한 불안을 씻어내는 환한 불빛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는 김 전 의장의 불출마선언 직후 논평을 내 "민주화를 위한 열정, 높은 도덕성, 정치적 경륜 등 김근태 의장이 가진 훌륭한 자산을 펼치지 못하고 불출마 선언을 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손 전 지사는 "대통합을 위해 살신성인의 결단을 한 만큼 그의 고뇌와 충정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한다"며 "그의 결단이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의 새로운 정치를 이뤄가는 큰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천정배 의원은 "김 전 의장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며 "민생평화개혁에 누구보다 앞장서 오신 김 전 의장께서 불출마를 선언하신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은 "보통 사람으로 하기 힘든 어려운 결단을 하셨다. 온몸을 던져 대통합을 이루려는 자기 헌신의 결단이라 생각한다"면서 "김 전 의장 말씀처럼 대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광야로 나오신 김 전의장과 함께 대통합 작업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혁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김 의장이 어려운 선택을 한 것 같다. 그간 얼마나 고뇌하고 힘들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며 "그간 나라와 민족에 희생하신 김 전 의장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전통을 계승하는 우리당 대통합의 길에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김근태는 정신적 대통령"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속속 논평을 냈다.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향후 범여권의 대통합작업을 이끌 지도자로 추켜세우는 내용이다.
민병두 의원은 '김근태가 통합의 길이자 법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냈다. 민 의원은 "현재 우리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수없는 '말'과 '말이 부딪혔다. 해법은 보이지 않은 채 말만 했다"며 "이제 김 전 의장이 말과 말의 부딪힘을 떨쳐버리고 칼을 뽑았다. 기득권을 버리고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 의원은 "이제 그의 칼은 도덕적 권위를 갖게 되었다. 통합에 관한 한 그는 법이자 길이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김영춘 의원은 '역시 김근태다'라는 논평에서 "당 의장을 지낸 중진 정치인으로서 일찍이 대선출마를 공언해왔고 많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한 정치세력의 지도자로서 그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었음을 안다"며 "나는 그의 결단에 감동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치권과 재야, 시민사회운동 영역 모두 그와 어떤 인연으로든 연결되어 있음으로 욕심을 버린 김근태는 최적의 조정자이고 지도자"라며 "청년시절부터 추구해온 조국에 대한 사랑을 희생과 헌신으로 실천해 온 지도자, 대한민국의 정신적 대통령은 그의 몫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이 이끄는 민주평화연대(민평련) 소속 의원들은 이날 오전 회의에서 김 전 의장의 결단을 뒷받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 전 의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는 기자회견장에 배석했던 우원식 의원은 "오전 민평련 회의에서 자기자신을 위한 결단이 아니라 자기 희생적 결단인 만큼 조직적 뒷받침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며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대통합이니만큼 김 의장이 하는 일을 적극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우 의원은 "그간 연석회의가 연이어 무산되면서 희생적 결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어와 김 전 의장께서는 결국 이 길 뿐이라는 결단을 내린 듯하다"며 민평련 분위기를 전했다.
열린우리당 서혜석 대변인은 "김 의장의 대의를 위한 살신성인에 경의를 표한다"며 "김 전 의장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는 분이 있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서 대변인은 "이제 김 전 의장의 선언에 대해 나머지 대권주자와 정치세력이 답해야 할 때"라며 "김 전 의장이 일일이 거명하신 분들은 아무 조건 없이 국민 경선 참여를 선언해야 하고 중도신당과 민주당 역시 소통합에 머물지 말고 대통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김근태는 통합을 주도할 자격이 없다"
반면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대권포기는 저조한 국민지지도와 여건을 조합해 볼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그는 "속으로는 통합국면의 주도권을 노리기 위한 계산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특히 민주당의 분열을 유도하는 언사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유 대변인은 "민주세력 분열과 국정실패 책임의 맨 앞줄에 서있는 그는 통합을 주도할 자격이 없다"며 "밀알이 되겠다고 한 말에 진심이 있다면 2선 후퇴를 해서 근신하는 것이 도리이고 사리에 맞다"고 질타했다. 그는 "우리는 그의 향후 행보를 지켜볼 생각이지만 자칫 중도개혁 대통합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복잡한 여권에서 자리잡기가 어려워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며 "떠날 때 조용히 말없이 물러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떠날 때까지 한나라당을 맹비난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근태 전 의장의 대선불출마 선언과 백의종군 선언이 국민의 눈을 속이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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