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총리는 "오늘 온실가스를 '실질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의견접근을 보았다"고 확신했고, G8 정상들의 환영사만 듣고 있자면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난제로 꼽혔던 온실가스 감축 협상이 예상보다 빨리, 너무나도 수월하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였다.
외신들은 물론 우리나라 일간지들 사이에서도 지구 온난화 문제에 미온적인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고집을 꺾고 기후변화협약 상 '엄청난 전기'를 이끌어 낸 메르켈 총리의 정치력에 대한 찬사가 빗발치기도 했다.
그러나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교토 의정서'를 탈퇴해 버려 첫 기후변화협약에 소금을 뿌렸던 부시 대통령이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협약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을 리가 없다는 것은 상식 수준에서도 가능한 추정이다.
이에 국내외 환경운동가들은 "이번 회담 결과를 '성공'으로 판단하는 것은 G8 정상들의 언론플레이와 거기에 부화뇌동한 일부 언론들의 찬사일 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분위기다.
"현 시점에서 이번 합의로 바뀔 것은 없다"
환경연합의 이상훈 에너지·기후변화본부 처장은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의 생떼에 메르켈이 굴복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가 G8 정상회담에 앞서 유엔 전문가들에게 부탁해 만든 안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다는 것.
산업, 주택, 가전제품, 교통, 에너지 공급, 열병합 등 각 정부가 구현할 수 있는 정책별로 수치화된 목표를 들고 들어간 메르켈 총리가 회의장을 나설 때엔 "2050년까지 1990년 수준의 50%를 감축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엉성한 합의문이 들고 나온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한 '굴복'이란 얘기다.
메르켈 총리의 부연설명, 즉 "G8 정상들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감축하자는 제의에 대해 '적극 고려할 것'을 합의했으나 일부 국가는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는 말에서도 '성공'보다는 '패배'의 뉘앙스가 다분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합의문의 엉성함을 좀 더 들춰보면, 일단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시한이 2050년으로 정해져 있다.
이 처장은 2050년을 "현 세대 정치인들이 책임을 질 수 없는 미래"로 단정했다. 유럽연합이 '2020년까지 30%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정해두고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G8 선언문에서 '심각하게 고려한다(consider seriously)'는 종결어를 사용해, 정치적 선언마저 명확히 하지 않은 것도 실제적인 효력을 떨어뜨린 지점으로 지적됐다. "목표를 정하자는 유럽의 주장을 미국이나 러시아가 무마한 후 만들어낸 합의임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처장은 "이번 협약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2012년이면 시한이 만료되는 교토의정서 이후 논의를 펼쳐나갈 조건을 마련한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현 시점과 상황에서 이번 합의로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도 했다.
이 처장은 강경했던 메르켈이 굴복을 한 데 대해서는 "G8은 모양새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서로 등 돌리고 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2050년까지 50%? 재앙 면하려면 90%는 줄여야"
국제 환경단체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린피스> 기후정책 담당자인 다니엘 미틀러 씨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이번 협약은 위험한 기후변화를 방지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혹평했다.
미틀러 씨는 특히 '2050년까지 50% 절감' 목표가 대단한 진전인 양 포장된 데 대해 "지구가 재앙적 기후변화를 면하려면 2050년까지는 80~90% 줄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미국을 향해서도 "나머지 국가들이 정해놓은 목표를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말은 그 목표 달성에 동참하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비판했다.
<지구의 친구들> 역시 논평에서 이번 협상 내용이 "빈약하고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지구의 친구들> 기후변화활동가인 유리 오노데라 씨는 "메르켈 총리는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명확히 하는 데 실패했다"며 일각에서 찬사를 받고 있는 메르켈 총리의 성과를 '실패'로 규정했다.
오노데라 씨는 "우리는 지난 수 년간 G8 정상들이 공허한 약속을 해 온 것을 봐 온 만큼 정상들의 즉각적인 실행을 요구한다"며 "전 세계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8개 국가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3%를 방출하고 있는 상황에 '생태적 채무'를 느껴야 할 것"이라고 G8 국가들에 좀 더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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