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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win, 多 win, 아니면 Darwin?

한반도브리핑 <51> 한미 FTA와 적자생존의 사회 진화론

'일부러' 자연상태로 돌아가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쓴 <리바이아싼(Leviathan)>이라는 책을 보면 국가가 생기기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인생은 외롭고, 불쌍하고, 비열하고, 거칠고, 짧다.(Life of man,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그래서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사람들은 항상 서로를 의심하고, 싸우고, 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전쟁과 전투적인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안전한 삶을 보호받기 위해 만든 괴물(Leviathan)이 바로 국가라고 홉스는 말했다.
  
  물론 홉스가 상정한 자연상태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라는 보호 장치가 없는 무정부 상태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직한 일을 상정했다. 기실 지금도 실패국가(failed state)나 무정부 상태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삶이 잔인하고 외롭고, 불쌍하고, 비열하고 짧은 경우를 목격할 수 있다.
  
  왜 이 마당에 이렇게 철학적인 얘기를 할까. 그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바로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 원시상태로 지금 우리가 다시 일부러 돌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삶을 '외롭고, 불쌍하고, 비열하고, 거칠고, 짧게'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그 길은 자청해서 가야만 할 길이라고 우리가,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는 정부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에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독재, 권위주의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꾸로 완전한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 역시 그렇다. 그 세계는 강자들만의 세계가 될 것이고, 불행히도 소수의 강자가 나머지를 자신의 세계 속으로 굴복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도태되는 대다수의 약자는 강하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눈치를 보며 외롭고, 불쌍하고, 비열하고, 거친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힘들게 살게 될 것이다.
  
  필자는 한미 FTA가 한국사회를 이러한 자연상태로 되돌리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 물론 시장에는 경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과도한 국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국가가 약자들에게 생선을 직접 먹여주어서는 안되지만, 최소한 그들이 낚시질 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 때까지는 낚시 세계 챔피언과의 경쟁에서 보호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우선 밝힐 게 있다. 필자는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있으며 시장의 장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특정 정파를 이념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미을 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미 FTA는 워낙 반민주적으로 추진되었고, 또 앞으로 한국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 커다란 충격을 주는 사안이기 때문에 그 협상결과에 관해 가감 없는 논평을 하고자 한다.
  
  미국의 한미 FTA 협상 : 크고 강한 창과 방패 얻어내기
  
  한미 FTA 협상이 종결되면서 양쪽의 협상 대표가 협상의 성적을 매겼다. 미국 측은 'A+'를 주었고, 한국 측은 '수'를 주었다. 평가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최종적인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만일 평가의 기준이 위에서 말한 '자연상태로 돌아가자는 신자유주의의 수용도'라면 필자는 한국 측에 '수', 미국 측에 B 정도를 주고 싶다. 상당히 양호한 성적이다.
  
  미국에게 A를 주지 않고 B를 준 근거는 협상 종료 후 발표된 USTR(미국무역대표부)의 한미 FTA 요약문이었다. 미국은 생각보다 '보호주의적'이었다. 물론 이 요약문이 타결안의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필자는 전문을 볼 수도 없다) 나중에 평가를 바꾸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평가의 기준을 '신자유주의의 수용도'라는 큰 그림으로 잡았기 때문에 전체의 윤곽이 드러난 이 요약만으로도 일단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 요약은 A4용지 10장의 분량인데, 그 내용은 대략 3~4개의 원칙으로 구별해 다시 정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상대방의 시장, 즉 한국 시장에 얼마나 진출할 수 있게 되었는가, 즉 시장접근(market access)의 원칙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시장에서 이익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제반 요인을 제거할 수 있었는가, 즉 한국 시장에서 자국(미국) 기업 및 투자자에 대한 '보호'의 원칙이다. 세 번째는 외국기업의 자국시장 진출시 피해를 입게 되는 기업과 산업에 대한 보호장치를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 즉 미국의 '무역구제' 원칙이다. 이밖에 일반적으로 환경 및 노동기준의 문제 등이 추가로 들어 있다.
  
  미국 USTR의 요약본은 이중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원칙을 중심으로 매우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우선 첫 페이지부터 한미 FTA는 미국의 수출과 투자 시장을 한국이라는 작지 않은 시장으로 보다 확실히 넓힌다는 것이 강조되면서 시작된다.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부문별로 한국으로의 시장진출, 즉 시장접근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 곳에서 얼마나 미국기업과 투자자가 보호될 것인가를 중심으로 비교적 자세히 서술된 내용이 나온다.
  
  미국이 가장 핵심으로 생각한 두 개의 부문이 먼저 나오는데 바로 자동차와 농산물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의 다양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제거해 자동차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과, 다양한 농산물 수출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리고 문제가 되고 있는 쇠고기 수출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첨언하자면, 광우병 이전의 과거에 한국은 미국의 세계 3대 쇠고기 수출시장이었는데, 한국이 수입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약 3분의 2 가량이 뼈가 달려 있는,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별로 소비가 안 되는 LA 갈비였다) 이 두 부문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실제 타결안의 미국 국회 비준 여부가 이 두 부문의 한국 수출이 얼마나 확실히 보장(?)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다음은 섬유 부문인데, 여기서는 미국이 특별히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의 섬유업자들에 대해 보호조치가 남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미국의 투자자, 서비스 산업, 방송, 통신 산업, 전자상거래, 제약 및 의약기기, 지식 산업 등 미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이 한국 시장에 얼마나 진출하게 되는가를 서술하고 있고, 특히 이들 산업이 한국 시장에서 영업을 하고, 수익을 내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법적, 제도적으로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지적재산권의 보장, 표준의 문제, 약가 산정의 문제 등 자국 산업에 불리하거나, 이익 실현에 장애가 될 수 있는 한국의 제도개선 요구다. 즉 자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이 한국에서 확실히 영업을 하도록 미국 정부가 개입해 한국에서 이 산업들을 보호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다음 USTR의 요약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의 무역구제에 관해 거의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반덤핑의 문제 및 다른 비관세장벽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무기를 지속적으로 보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이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즉 미국으로의 시장접근을 위해 꼭 얻어냈으면 했던 분야인데 참패한 부분이다.
  
  여기까지의 결론은 이렇다. "미국은 한국에 대하여 창과 방패를 모두 얻어냈다."
  
  미국의 통상정책은 자국의 기업과 산업과 투자자가 상대국 시장에 진출해 영업이익을 보다 확실히 내고, 또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사실상 매우 공격적인 보호주의(aggressive protectionism)라고도 한다. 지적재산권의 보호, 특허 및 상표의 보호, 투자자 국가 소송제(ISD) 등이 그런 보호조치이고, 다양한 비관세 장벽의 철폐(예를 들어 자동차 세제의 개편 및 소비자 선호도의 교정, 쇠고기 수입의 검역 요건 완화, 외국계 회사의 소유제한 철폐, 제약업계의 보험약가 산정과정에의 개입 등을 포함해) 등이 미국 투자자 및 기업에게 이익을 내기 좋도록 한국에서 시장환경을 만들어 주는 요구들이다.
  
  즉 창과 방패를 들고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영화 '300'에서 나오는 창과 방패로 무장한 스파르타군을 연상한다면 미국의 힘을 고려할 때 약 100만의 스파르타 군이 창과 방패로 무장해 한국과 싸움을 벌일 준비를 끝낸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국가를 배제하고 자연상태, 원시상태로 돌아가는 철학을 종교와 같이 믿고 있지 않다. 특히 외국과의 협상에 있어서 그러하다. 국제관계가 더욱 자연상태에 가깝다고(무정부적이라고) 믿는지, 미국 정부는 외국과의 협상에서 더욱 강하고 크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협상을 했느냐 하는 기준에서 볼 때 미국 협상팀의 점수는 B정도 된다. 그러나 자국의 투자자, 기업, 산업을 위한 공격적 협상을 했느냐 하는 기준에서 보면 웬디 커틀러의 자평과 같이 A학점을 인정하고 싶다.
  
  한국의 한미 FTA 협상: 창과 방패를 버리고 자연상태로 돌아가기
  
  한국 정부 역시 외교통상부의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 FTA 타결안 요약문을 공개했다. 요약문은 첫 페이지에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시장에 대한 시장접근을 강조하고 있으나 내용을 보면 한국이 얼마나 많이 '개방'하느냐(미국에게 시장접근을 허용하느냐)에 더욱 많이 할애되어 있다. 언론에서 말하는 '제3의 개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한국의 미국 시장 진출, 즉 시장접근에서 성과를 냈다고 주장하는 내용도 요약문 초반부에 나온다. 대부분이 이미 낮은 미국의 관세를 즉시 혹은 점진적으로 철폐해 미국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혜택에 포함되는 상당부분의 업종이 이미 관세인하의 영향을 안 받는 업종(전자제품 등)이거나, 미국 현지투자를 행하고 있는 부분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로 끼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그리고 낮은 관세 철폐의 효과는 환율의 변동에 의하여 상쇄될 소지도 크다.
  
  그 다음으로 강조되는 것이 개성공단의 포함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것. 이 부분은 경제적인 내용이라기 보다는 남북관계, 북미관계와 관련된 정치적인 내용이므로 한국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개성공단 진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확보되고, 장차 북한의 국제시장 진출과 연결되겠지만 결국 북핵 문제의 향방과 운명을 같이 할 문제다.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수교되면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북한이 싼 노동력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특별히 공격적이지 않은 미국으로의 시장접근에 관한 짧은 홍보 이후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거의 전부 개방의 내용이다. 즉 미국의 한국시장으로의 시장접근을 얼마나 허용했고, 또 미국의 투자자와 기업이 한국에서 얼마나 보호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USTR의 요약문, 홍보자료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미국의 USTR 요약문에서 미국이 성과로 내세우는 부분과 상당부분 겹친다.
  
  어차피 협상이란 서로 좋아야 타결이 되는 것이므로, 즉 'win-win'일 수 있으므로 타결되는 것이지만 한국의 'win'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음과 같다.
  
  (1) 가격 경쟁력을 통한 약간의 미국 시장진출
  (2) 한국의 상품 및 서비스 시장 개방 : 관세 및 비관세장벽 철폐 및 제도변화 포함
  (3) 쌀 시장의 보호
  (4) 개성공단 문제 언급 포함
  
  이상의 네 가지를 볼 때 한국은 미국 시장에서 창을 가지지 못했다. 작은 몽둥이 정도 가진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방패는 대부분 알아서 다 버렸다. 쌀 시장은 보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경제적으로 어떤 논리에서 성과로 계산될 수 있는지 확실한 설명을 안 한다. (정부가 주장하는 경제논리로 보면 우선적으로 개방해야 할 부문이 아닌가?)
  
  한국 투자자와 기업이 미국시장으로 보다 쉽게 진출하고(시장접근: 창), 거기서 이들이 이익을 내도록 보호하는 내용의 협상(자국 기업 및 투자자를 보호하는 시장 환경조성: 방패)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무역구제 협상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그렇게 원하던 서비스 시장의 개방은 미국이 상당부분 원하지 않아서 제외된 분야가 많다.
  
  서비스업으로 한국이 미국에 진출해 세계적인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고 그곳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영어와 미국문화라는 강력한 비관세 장벽을 뚫고 한국 서비스 산업이 자력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어떤 서비스 업종으로 경쟁할 수 있을까? 법률, 교육, 의료 등이 반도체 같이 한국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교포, 한인 타운을 넘어서서 지식산업, 문화산업, 법률, 교육, 의료 산업의 거대 시장을 미국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한미 FTA 찬성론자들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시장이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이 시장접근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이미 별로 없다고. 그렇다면 왜 애초부터 한미 FTA를 시작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왜 미국 시장을 다른 나라보다 빨리 선점한다고 선전했는지 잘 모르겠다.
  
  FTA 찬성론자들은 이렇게 또 반박할 것이다. 미국으로의 시장접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시장을 개방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있다고. 그렇다면 굳이 한미 FTA를 할 필요 없이 알아서 우리가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개방을 하면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개방과 경쟁력 상승 간의 상관관계는 경제학적으로 증명되어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경제학자를 발견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경쟁력은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방은 경쟁력이 강화시킬 수도, 약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경쟁력이 커지는 부문이 있을 것이고, 소비자 이익이 올라가는 부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다른 국가와 FTA를 한다면 한국 정부는 미국의 협상가들과 같이 상대방 국가로의 시장접근과 그곳에서 한국 기업과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에 더욱 집중하고, 또 그 성과를 자랑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진국인 상대국과의 협상을 하는 정부가 선진국에 국내시장을 개방해 국내 경제의 체질개선을 하겠다는 것을 주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면 처음부터 협상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들의 시장접근을 용이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즉 그들이 원하는 대로 협상을 하면 되는 것이다.
  
  악마는 세부사항이 아니라 큰 그림에 있었다
  
  한미 FTA를 체결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통상철학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알아서 살아남기"였다. 특히 미국 시장보다는 한국 시장에서 미국과의 경쟁에서 알아서 살아남자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알아서 경쟁하라고. 그리고 살아남는 자는 강한 자이므로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자연상태로 돌아가자고.
  
  물론 여기서 살아남은 기업과 경제행위자는 강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에는 근본적인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다르게 한국 기업이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데에 특별히 협상을 잘 해내지 못했다. 관세율을 좀 낮춘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싸움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미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식 표준과 제도, 보호장치가 한국에 들어오기 때문에 미국기업에게 한국 시장에서의 경쟁은 낯선 어웨이경기가 아니라 오히려 익숙하고 보호된 홈경기가 된다.
  
  둘째, 한국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벌이는 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그 기업과 산업이 미국 시장에 확실하게 진출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대통령이 강조하는 지식, 서비스 산업에서 그러하다. 미국의 지식, 서비스 상품은 세계 어디서나 소비가 있고 수요가 있는 세계상품(global commodity)이 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지식, 서비스 상품은 한국이라는 경계를 겨우 벗어날 정도이고, 또 세계상품이 되기는 더욱 힘들다. 제조업과 달리 지식, 서비스 산업은 상대방 시장의 언어, 문화, 역사, 인맥과 보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이러한 상품은 대다수 미국인이 한국어를 쓰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한국적 문화와 스탠더드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있지 않는 한 만들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남은 지식, 서비스 산업의 상품의 대부분은 기껏해야 국내상품 (national commodity)을 조금 넘어서는 정도의 상품이 되거나 지역상품 정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품은, 학문 분야로 굳이 비유하자면, 수학이라는 인류보편적인 언어와 사고체계가 성립된 이과의 상품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기 힘든 문과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수학, 통계, 계량이 안 들어간 문과의 분야에서 한국 토종이, 아니면 최소한 유학파가, 미국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얼마나 되는가? 즉 이러한 지식, 서비스 산업은 언어와 문화와 사회적 네트워크 등에 의해 이미 비관세 장벽이 강하게 존재하는 분야다. 한국정부가 미국에 대해 어떻게 이 시장에서 시장접근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한국의 한미 FTA 협상 성적은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손을 뗀다는 신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수'에 해당한다. 반대로 한국의 기업과 산업에 창과 방패를 쥐어 준다는 측면에서는 '양'이나 '가'에 가깝다. 창과 방패가 없이 그것을 가진 강한 군대와 싸우고자 하다니 '구국적인, 국익을 생각하는' 매우 과감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악마는 세부사항에 있다(Devil's in the details)고 한다. 그래서 타결된 내용의 전문을 보고, 조항을 하나하나 자세히 따져 보아야 손익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한미 FTA의 악마는 큰 그림에 있다. 미국은 시장접근과 자국 기업 및 산업을 공격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창과 방패를 얻는 원칙'에서 협상 내용을 채워 나갔고, 한국은' 고난의 행군'을 통해 강해지겠다며 될 수 있으면 많은 '창과 방패를 버리는 원칙'에서 협상을 해 왔다. 그 결과 한국은 미국 시장은 고사하고 한국 시장에서도 몇몇 대기업과 상위 소수를 제외하고는 매우 불리한 경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덕 위에 있는 사람을 향하여 언덕 밑에서 공격을 하는 불리한 싸움('uphill battle')이 된 것이다.
  
  국내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강한 상대방에게 창과 방패를 다 주면서, 그리고 이렇게 반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성급하게 우리는 무장해제를 해야 하는가?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한경쟁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비로워질 수 있을까?
  
  한국은 큰 도박을 하고 있다. 설령 그 도박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기대효과는 매우 긴 시간에 걸쳐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선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중국이 쫓아오는 분야가 아닌 보다 첨단의 분야, 지식 서비스 산업에서 반도체와 자동차의 전례와 같이 미국 시장과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큰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는 우선 생존경쟁을 위한 덩치 키우기와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다. 그 결과는 크고 강한 소수가 살아남고, 나머지는 자연상태에서 '외롭고, 힘들고, 비열한' 삶을 살게 방치되는 것이다. 한미 FTA 찬성론자는 말할 것이다. 크고 강한 생존자가 성장을 이끌면 그 후에 이를 분배하고, 사회안전망을 만들면 된다고. 그러나 자기도 살아남기 힘든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더 비정해지면 비정해졌지 자비롭고 '한가하게' 나누고 도와주겠는가?
  
  운이 좋다면 한국이 언젠가는 체질개선을 하고 경쟁력을 갖추어 선진국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인 것을 좋아한다. 장기적으로 시장은 균형점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케인즈는 말했다. 장기적으로 가기 전에 우리 대부분은 다 죽는다고. 확실히 알 수 없는 장기적인 것을 위해서 현재를 무정부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 아닌가? 우리를 위해서 보다 신중하고 철저하게 고민해 국정을 운영해 달라고 밀어준 정부가 우리를 도박의 제물로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출로 먹고 사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타국과의 FTA를 협상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원칙은 상대국에서 최대한의 시장접근을 얻어내고, 그 시장에서 한국의 기업과 투자자가 보호받는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들이 반드시 국내시장의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얻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들 산업은 상대국 시장에 접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쟁력을 올린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의 산업서비스 산업을 포함해)에도 세계 시장으로의 시장접근이 매우 중요함은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케인즈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중요한(important) 것과 시급한(urgent) 것은 다르다고. 한미 FTA는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시급하게 창과 방패를 모두 버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 국가 중에 선진국이 된 국가가 있는가? 한국정부가 세계 최강의 경제라고 여기는 미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 경쟁력 있는 다른 국가에게 자국 시장에서 창과 방패를 다 주고, 자신은 스스로 무장해제했었던가?
  
  한미 FTA를 경제동맹이라고 부르지 말자. 다른 나라와는 FTA를 안 하고, 미국하고 폐쇄적인 경제통합을 하겠다는 것인가? 한미 간의 안보동맹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런 용어를 쓴다고? 그렇다면 그 효과를 상쇄하는 중국과의 FTA는 왜 하려고 하는가?
  
  한미 FTA를 통해 모두가 이기는 '다 win'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이기는 '多 win'도 아닌, 단지 강한 소수만 살아남는 'Darwin'의 세계가 될까 걱정된다. 일 안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게 결코 아니다. 다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그 만큼 잘 살 수 있도록 인센티브 구조가 만들어지는 사회를 원한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항상 그 자리이거나,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사회가 된다면 이제는 정부를 포함해 이 사회를 만들어 가는 지도층 모두에게 책임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한미 FTA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열심히 일하면 인맥과 학맥과 다양한 네트워크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시장을 만들 수 있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한미 FTA를 재협상하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선의 방책은 한미 FTA의 세계가 'Darwin'의 세계가 아닌 최소한 '多win'의 세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있을 다른 지역 및 국가와의 FTA에서 그러한 시장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현재와 미래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의 시장접근, 고용창출, 우리 기업 및 투자자 보호(표준 및 제도의 문제)를 최대한 성취해야 한다. 한-EU FTA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정부가 어떤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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