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는 북한 자금 2500만 달러의 대북 송금이 늦어지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제2의 방안을 내놨다. 마카오 금융당국이 북한 계좌를 풀면 그 조치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BDA 해결을 통해 최종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에 여전히 미치지 못해 북한이 다시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BDA 완전 해결 후 진행될 북한 핵시설 폐쇄와 중유 5만 톤 지원이라는 2.13합의의 1단계 이행이 시한을 넘겨 더 지체될 것으로 보인다.
"송금은 마카오와 북한이 알아서 하라"
대북 금융제재의 사실상 주체였던 미 재부부의 몰리 밀러와이즈 대변인은 10일(현지시간) 성명을 발표해 "미국은 마카오 당국이 BDA에 현재 동결돼 있는 모든 북한 관련 계좌의 동결을 풀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 마카오 및 북한 관리들과 이뤄진 이전의 논의 및 이들 자금의 용도에 관해 북한과 함께 도달한 양해에 기초해, 미국은 문제의 계좌들을 푼다는 마카오 당국의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한중인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이날 "미국이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BDA에 묶여 있는 자금을 북한이 찾아가기 위해 취해야 할 구체적인 조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것은 마카오 당국과 북한이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BDA에 대한 미 재무부의 제재 조치가 지속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그것은 BDA 소유주 측과 마카오 당국의 장기적인 경영 및 관리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현 상황은 2005년 9월 BDA 자금이 동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간 것"이라며 "내일부터는 모든 (북한) 계좌 주인들이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마카오 금융당국은 미국의 이같은 발표 후 BDA의 북한 동결자금 해제조치가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해 계좌 소유주들의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돈이 은행 아닌 전당포에 있는 격…전당포 창구만 바꿔준 것
미국의 이날 발표는 △마카오의 동결 해제를 지지하지만 △송금은 마카오와 북한이 '알아서' 하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는 지난달 19일 힐 차관보와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가 베이징에서 성명을 발표해 △불법·합법 자금의 구분없이 전액 송금을 묵인하겠지만 △동결자금 처분은 마카오가 하라는 원칙을 천명한 것에서 다소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두 해법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미국은 BDA에 대해 돈세탁을 한 금융기관이라는 낙인을 지우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 자금은 불법행위를 한 금융기관에 맡겨진 돈에 불과하다. 일부 자금은 합법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자금은 여전히 '불법 금융기관에 맡겨진 불법 자금'으로 중국은 물론 세계의 어느 은행도 이 돈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마카오와 북한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태도는 3월 19일 성명과 이후 보여준 미국의 해결 노력으로 볼 때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미국은 3월 19일 성명 이후 중국은행(BOC)을 통한 대북 직접 송금, 중국은행과 제3국 은행을 통한 송금 등의 방법을 두고 중국, 북한, 마카오와 협의해 왔다. 이를 위해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열이틀 동안 베이징에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제안한 각종 해결방안은 이해당사자들의 거부로 무산됐고, 미국은 결국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마카오와 북한이 알아서 하라'는 것은 '결자해지는 하기 힘들게 됐다'는 미국의 포기 선언이라는 시각도 있다.
따라서 "매우 큰 진전"이라는 힐의 표현은 사실과 거리가 있고, 향후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사학일 뿐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북한이 진짜로 원한 건 실현 못해
새롭게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는 방안을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북한이 BDA 해결 과정을 통해 진짜로 추구하는 것은 2500만 달러라는 돈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6자회담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는 지난달 23일 비공개브리핑에서 "북한은 현금 보따리를 가져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돈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정상적인 국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다시 만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제 금융질서 편입'은 이미 지난 1월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북미회동에서 양측이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도 보인다.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고 싶다'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뉴욕 발언은 그런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은 그 공감대를 현실로 만들지는 못했다. 10일 발표에 대해 대다수의 언론들이 표현하는 '최후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힐 차관보는 이날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만난 뒤 "가장 실현 가능한 것" 혹은 "정확히 북한이 원했던 것"이라며 자신들의 '해법'을 추켜세웠다. 우리 정부 당국자도 한미 양국의 '용단'이라며 "당연히 북한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거들었다.
물론 북한이 결국은 받아들일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이번 조치로 북한이 불법 여부에 상관없이 돈을 인출할 수 있게 되어 BDA 동결 이후 취해졌던 불이익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라이스와 힐이 벌이는 '최후의 도박'
그러나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의 문제는 2.13합의의 이행이다. 미국이 직접 움직여 제3국 은행을 경유한 송금을 관철하라는 북한의 입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4월 14일까지 하기로 돼 있는 핵시설 폐쇄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은 시한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북핵 문제를 2.13합의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미국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11월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을 좌우하고 있는, 따라서 실패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힐 차관보가 현 상황을 감내하고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내놓은 '제2안'에 대한 불만으로 북한이 미국의 책임을 물으며 2.13합의 이행을 위협하는 경고성 행동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 경우 한차례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라이스 장관과 힐 차관보에 의해 관리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두 사람은 결국 미국이 직접 움직여 BDA 문제를 풀고 2.13합의의 이행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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