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관광명소만은 아니다. 음악을 비롯해, 연극, 미술, 영화 등 수많은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공존하는 일본 '서브 컬처'의 중심지다.
1970년대 돈 없는 배우들과 뮤지션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형성된 거리에 소극장과 각종 상점이 들어서면서 도쿄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이들이 꼭 들려야할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쉘 위 댄스'의 감독 수오 마사유키도 이곳에서 예술활동을 시작했다. 아직도 이곳에는 그들 소유의 집이 있다.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일본 드라마 '시모키타 센데이즈'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특히 일본 젊은이들의 음악에 있어 시모키타자와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수많은 라이브 하우스와 개성있는 레코드점이 곳곳에 있고, 그런 분위기에 따라 음악 관련 회사나 인디레이블 사무실, 녹음 스튜디오 등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도시계획도 없이 형성된 동네다 보니 거리는 미로처럼 뒤엉켜 있고 너댓 사람이 한꺼번에 걸어가면 꽉 찰 정도로 도로폭은 좁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시모키타자와 다움'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다. 정리되지 않으면서도 자유롭고 오밀조밀한 젊음의 이미지.
올림픽 유치 욕심이 낳은 도시의 재앙
그런 시모키타자와을 불도저로 밀어붙여 대규모의 도로를 건설하려는 이는 불도저 같은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다. 이시하라 지사는 2016년 도쿄올림픽 유치를 위해 도시를 정비하겠다며 2003년 2월부터 폭 26미터 가량의 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입안했고 중앙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냈다.
또 전철역 앞 광장을 확장하는 것을 포함해 또 하나의 새 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 도로가 계획대로 건설될 경우 기존 도심의 모습은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어 시모키타자와의 매력은 사라질 것이라는 게 이곳 주민들의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쿄도와 중앙 정부가 만들고자 하는 도로는 시모키타자와의 핵심 지역을 관통하는 것으로 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 4조각 나버리게 된다.
이에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도시가 나아가야 할 장래, 나아가서는 시모키타자와라는 특수한 커뮤니티가 가져야할 아이덴티티는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운동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우선 '시모키타자와를 지키는 모임(Save the Shimokitazawa)'를 2004년 결성하고 현재의 도시계획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홍보를 하는 동시에 웹사이트를 통한 정보공유, 서명운동, 여론조사 등을 실시했다. 정기적으로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상점과 땅을 소유하고 있는 일부 주민들은 소송을 통해 법적인 대응도 한다.
또 이곳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시모키타자와를 아끼고 미래형 도시에 대해 고민하는 학자들로 구성된 '시모키타자와 포럼'이라는 전문가 단체가 2004년 출범해 워크숍을 개최하고 연구모임을 갖는 등 주민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에 의해 주민 2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니 70% 이상이 정부의 도시계획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아가 이 단체들은 2005년 2월부터 정부 개발안에 대한 대안을 검토해 그해 6월 '대안 버전 1'이라는 변경안을 제시했다. 이 안은 일본의 대학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전문가들의 제안 사항을 수렴해 만든 것이라고 마사미 고바야시 메이지(明治)대 건축설계과 교수는 강조했다.
이 대안은 △보행자 우선주의 △대규모가 아닌 소규모 연쇄 재개발로 도시 본래의 매력 증진 △대규모 투자가 아닌 효율적 공공투자, 소규모 사업자의 협동 등을 원칙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제안은 지난해 9월 20일 세타가야구의 도시정비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거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주민 단체들은 도쿄도와 중앙정부에 대안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자기 결정권의 문제"
시모키타자와의 이같은 움직임은 통칭 '도시화 반대운동'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몇몇 회원들을 만나본 결과 이들의 머릿속에는 각기 다른 의미로 이 운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모키타자와 포럼을 이끌고 있는 고바야시 교수는 "여기는 이미 근대화한 지역이기 때문에 우리 운동은 교토(京都) 같은 전통거리 지키기도 아니고 환경운동도 아니다"라며 "어떤 스타일의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시모키타자와를 지키는 모임의 한 회원은 "이 거리는 예술가들이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공유하고 새로운 정보를 나누는 곳이었다"며 "그런 교류의 장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다른 의미로 시모키타자와 지키기에 나선 이들이지만 한결같이 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도시 정체성을 주민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자기 결정권'이란 말이다.
고바야시 교수는 "도시계획에 대한 찬반은 논외로 하더라도 도시 경영과 재개발에 필요한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시민의 의견이 충분이 표명되어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일본의 시민사회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시민의 권한과 책임에 있어 큰 폭의 위임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 운동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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