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 언론인들간의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하는 이 행사에는 <프레시안>을 비롯한 3개국 10개 언론사의 국제 문제 담당 기자들과 도쿄대 교수 및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특히 도쿄의 고령자시설과 시모키타자와 거리, 방위성 등을 참관하며 '오늘의 일본'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에 '오늘의 일본' 시리즈를 4부에 걸쳐 연재한다.
■ 연재 순서
1. 일본의 노인시설에 냄새가 없는 까닭 - '세대간 대화'의 모델 고토엔
2. "납치문제, 일본은 피해자가 되길 원한다" - 강상중 도쿄대 교수 인터뷰
3. '도시화'에 반대한다, 시모키타자와 거리
4. 부활하는 미시마 유키오 - 방위성과 일본의 재무장 <편집자>
"할아버지·할머니들께 어제 집에서 엄마·아빠랑 있었던 얘기 전해드리기!"
보육교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약 50여명의 아이들이 5미터 쯤 앞에 있던 노인 10여명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방금 전까지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하며 같은 구령을 외치던 아이들은 평소 친하던 할아버지·할머니를 둘러싸거나 품에 안겨 제각기 재잘대기 시작했다. 그런 일과에 익숙한 노인들도 아이들과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수다를 떨면서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줬다.
3월 29일 오전 도쿄 에도가와구(區) 사회복지시설 고토엔(江東園).
고령자와 어린이가 함께 하는 '삶의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뜻에 따라 1987년 설립된 고토엔은 일본 사회가 당면한 최대 난제인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 '저출산고령화'의 일본식 표현)를 돌파할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는 곳이다.
4층짜리 건물인 고토엔은 1층에 보육원이 있고, 2층과 3층에는 양로원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입주시설로 되어 있다. 보육시설과 노인시설을 융합한 시스템인 것이다.
입주 노인은 100여명은 가정환경과 경제적인 문제로 오갈 데 없는 노인 50여명과, 치매환자 50여명 등으로 구성돼있다. 집에 머물면서 고토엔의 도움으로 목욕, 갱의(更衣: 옷 갈아입기) 서비스를 받는 노인도 20여명이 있다. 깨끗하고 수준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지만 부잣집 노인들이 큰돈을 들여 들어오는 곳이 아니란 얘기다.
어린이들은 5세 이하의 영유아들로 현재 105명이 낮시간에만 맡겨진다. 부모들은 맞벌이 부부들이다.
맞벌이는 늘고, 단카이 세대는 퇴직하고
일본의 인구는 2005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통계사상 최초의 자연감소였다. 일본의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현재 1억3000만인 인구는 2055년에 8993만으로 급격히 줄게 된다.
의료 수준의 향상으로 노인들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물론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젊은이들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맞벌이 부부의 육아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일본의 젊은 부부들 중에는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한편으로 인구의 고령화도 진척되어 2025년 경에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를 중심으로 75세 이상이 고령자의 다수를 점하는 초고령사회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 적자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초고령 노인들에 대한 간호 및 의료에 대한 대책 또한 뚜렷하지 않다.
일본의 노인 문제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지난 1월 6일자 보도에서 "노인들의 자기책임과 자조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게 손쉬운 처방이며 성급하게 대답을 찾는다면 '시장원리에 맡긴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다"며 "젊은 세대의 직업훈련 및 육아와 동일한 문제로 노인 문제를 차분히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토엔은 일본 사회의 이같은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실험이라는 게 하야시 요시토 보육원장의 말이었다.
젊은 부부들에게는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탁아시설을 제공하고, 노인들에게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하겠다는 것이다.
세대간 교류, 설립 우려하던 후생노동성의 키워드로
고토엔은 단순히 노인들과 아이들은 한 공간에 모아두는 시설이 아니다. 남녀노소, 국적과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게 고토엔의 포부다.
이를 위해 노인과 아이들은 어울려 하루를 지내는 것은 물론, 한 달에 2회 정도 같이 식사를 하고 여름에는 가까운 바닷가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3층 어린이 풀장을 노인들의 방에서 가까운 곳에 만들어 놓은 것도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노인들에게 들리도록 배려한 것이다.
하야시 원장은 "점심을 먹을 때는 메뉴에 가시가 있는 고기나 생선을 포함시킨다"면서 "노인들이 가시를 가려내 주면 아이들이 잘 먹고 그러면 어른들도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고토엔은 '세대간 교류'를 추구한다"며 "양로 시설 담당 부처는 후생노동성, 보육원은 문부과학성 담당이라 설립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고토엔의 성공 사례에 따라 이제 '세대간 교류'는 후생노동성의 키워드가 됐다"고 강조했다.
담당 부처가 달랐다는 것 말고도 노인시설과 보육시설을 결합하는 일에는 난관이 적지 않았다. 아이들이 병약자 등 고령자들과 같은 공간에 거주하는데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까다로운 규정을 뚫고 인허가를 받기 위해 두 공간 사이에 울타리를 두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고토엔 설립 이후 우려할 만한 일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보육원은 인근 맞벌이 부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희망자를 받고 있지만 경쟁률이 상당하다고 하야시 원장은 말했다.
설립자의 취지에 따라 시설 이용자의 부담은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양로시설은 월 평균 3만엔(약 24만원), 보육원은 2만엔(약 16만원)만 지불하면 된다. 나머지 운영비는 정부와 도쿄도, 에도가와 구청 등의 지원으로 충당된다.
고토엔에는 노인들과 아이들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위해 연구한 갖가지 흔적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웃옷을 벗고 지내면서 튼튼한 몸을 만들고 있다. 노인 공간에는 병원 분위기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복도마다 이름을 붙여 놓고, 각 방에는 문패가 달려 있다. 중증 치매 환자들의 공간에도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들 정도로 모든 공간은 열려 있다.
고토엔에서는 대부분의 한국 노인시설에서 나는 노인들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보육원 공간에서도 한국의 놀이방에서 나는 아이들의 냄새가 없었다. 청결과 위생을 강조하는 직원들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야시 원장은 '냄새가 없다'는 기자의 물음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아마도 노인들과 아이들의 기운이 어우러져 체취를 중화시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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