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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대장정 대열서 배제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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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대장정 대열서 배제될 뻔"

中 사학자 확인…"저우언라이 간청으로 해결"

신중국 탄생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정작 신중국 탄생의 모태가 된 대장정(大長征) 출발 때 제외될 뻔 했던 것으로 중국 역사학자에 의해 확인됐다.
  
  신화통신 9일 보도에 따르면 1934년 10월 대장정이 시작됐을 당시 좌경 영도들이 마오쩌둥을 대장정에 집어넣지 않으려 했다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끈질긴 간청으로 참여를 허락했다고 당사(黨史) 전문가가 밝혔다.
  
  장시(江西)성 간저우시 당사편찬실 부주임인 링부지(凌步機)는 이런 사실이 해방군출판사가 1984년과 1993년 발간한 우슈취안(伍修權)의 '나의 역정(我的歷程)'과 '캉커칭회고록(康克淸回憶錄)'에 소개됐고 학계에서도 공인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어 통역으로 장정에 참여한 우슈취안은 '나의 역정'에서 "당초 그들(지도부)은 마오쩌둥을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 당시 마오는 중앙영도의 핵심에서 밀려나 있었다"고 회고했다.
  
  신화통신은 당사 전문가를 인용, 1934년 9월 중앙혁명군사위원회가 대장정에 참여시킬 사람과 배제시킬 사람을 결정하면서 우경에 치우친 인물들은 동참시키지 않았다고 전했다.
  
  군사위는 중화 임시정부 주석이자 중앙홍군의 주요 창건자로 군대에서 매우 높은 신망을 얻고 있던 마오쩌둥을 홍군 주력부대의 이동에 참가시키지 않기로 하고 장시성 위두(于都)현으로 보내 조사연구 업무를 맡겼다.
  
  당시 마오의 경호요원이었던 우지칭(吳吉淸)도 1983년 출간한 저서 '마오 주석 곁에서의 삶'을 통해 "대장정 출발시 중앙부대의 명단에 마오쩌둥이란 이름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역시 그의 경호요원이었던 천창펑(陳昌奉)도 1986년작 '마오주석 장정을 좇아'에서 "마오가 중화 임시정부 주석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역경에 처해 부단한 비판을 받았다"며 그의 올바른 주장은 '우경 기회주의'로 매도됐다고 말했다.
  
  링부지 부주임은 마오쩌둥을 대장정에 참여시킬 것인지 잔류시킬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마오 개인의 안위에 연관이 있을 뿐 아니라 당과 홍군, 중국혁명의 명운과도 직결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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