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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입장이 아니라 '정부' 입장이다"

[기고] '잘 나가는' 송민순 외교, 그 안과 밖

북핵 2.13합의가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 송금 문제로 삐걱거리고 있다. 그러나 송금이라는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합의 이행에 별다른 차질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렇게 되면 북미 관계정상화 작업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 강연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핵 문제의 해결과 북미 관계정상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한 적이 있다. 그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조금 앞서가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말 열린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의 합의 내용과 합의 이후의 상황을 보면 오히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끌려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같은 문제는 남북관계의 독자성을 중시하는 통일부에 비해 북핵 이슈에 남북관계를 종속적으로 연계시키려는 외교통상부가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기 때문이라 것도 지배적인 분석이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최근 행보를 통해 이같은 상황을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해 온 김정환 KBS 남북관계 예비전문기자가 <프레시안>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김정환 기자는 지난 24일 KBS 홈페이지 기자칼럼을 통해 통일부가 그처럼 주도권을 빼앗긴 이유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변신에서 찾았다. 적극적인 포용론자로 일컬어지던 이 장관이 취임 초의 '소신 발언'을 부담스러워 하던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동시에 터져나왔던 통일부 문서 유출 사건 등을 겪으며 '몸을 사리고' 청와대에 보조를 맞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에 발을 맞춘다는 말은 곧 외교부의 주도권을 사실상 용인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
☞ KBS 기자칼럼 '한반도통신' 바로가기)

김 기자는 그 후속편 격인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 이번에는 송민순 장관에 포커스를 맞춰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외교부 독주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BDA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예사롭지 않은 문제들이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편집자>


1. 지난 21일 아침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서울대 정치학과와 외교학과의 총 동창회가 주최하는 월례 조찬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서울대 독문과 출신의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특별히 초청돼 '북핵과 6자회담'을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이른바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에 대한 지적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을 만큼, 외교부의 수장인 송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술술 설명을 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좀 편한 자리라고 생각했는지, 올해로 외교부 밥을 먹은지 32년째인 노련한 외교관답지 않게 비외교적인 언사가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북한은 예측하기 어렵다. 골치 아프고 알 수 없는 집단이다."
▲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문제는 그 후였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D일보 K사장이, 공교롭게도 통일부를 취재하는 기자와 함께 왔던 것입니다.

뒤늦게 취재 기자가 왔던 것을 안 송 장관은 먼저 자신의 특보를 외교부 취재 기자들에게 보내 조찬회의 전체적인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9·19공동성명과 2·13합의의 배경, 북한이 왜 핵무기를 보유하는가, 남북관계와 정상회담, 핵시설 불능화의 의미, 평화체제 등에 대한 언급을 소개했습니다. 몇 번씩 나왔던 내용이라 특별히 눈에 띄는(즉 기사가 될 만한 새로운) 내용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기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북한에 대한 과격한(?) 발언이었습니다.

2. 이틀 뒤 여의도. 송 장관이 이번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북핵 문제는 물론 한미FTA 등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토론회 끝부분에 외교부와 통일부 사이에 이견은 없는지를 묻자, 흥미로운 답변이 나왔습니다. "외교부의 입장, 통일부의 입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입장이 있는 것이다", "외교부는 실무 선에서는 이러이러한 게 고려돼야 한다고 하지만,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정부의 입장으로 결정되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송 장관의 넘치는 자신감

언뜻 원론적으로 보이는 말이었지만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송민순 장관이 차지하는 위상과, 스스로의 자신감(느끼기에 따라서는 오만 내지 자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정부 안에서의 흐름( ☞KBS 기자칼럼 '한반도통신' 관련 글 바로가기)을 참고하면서 송 장관의 발언을 보자면, 자신이 방송기자클럽 토론회라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은 외교부의 입장이 아니라 정부 전체의 입장이라는 점을 내비쳤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점은 특히 송 장관이 핵 문제만이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등에 대해 언론브리핑이나 각종 인터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 내용을 보면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점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통일부 사안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도 '정부 입장'이라며 말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이와 함께 안보정책 조정회의가 송 장관과 외교부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엿볼 수 있습니다.

3. 기자로서 송민순 장관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10월 외교부를 취재하게 되면서였습니다. 송 장관은 당시에는 차관보로 6자회담 한국 대표단의 수석대표였습니다. 송 차관보는 2006년 1월 장관급인 대통령 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석 달 남짓 겪은 송 차관보는 인상 그대로 선이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경남 진양이 고향으로, 흔히 떠올리는 '갱상도 사나이' 스타일인데, 별명은 '송 대령'입니다. ('장군'이 아니고 왜 '대령'이라고 불릴까, 이 점 또한 묘한 의미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창의적인 면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송 차관보가 안보실장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 관계자로부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안보실장에 송 차관보와 이수혁 당시 독일 대사가 최종 후보로 올라갔는데, 송 차관보를 추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는 것입니다. 6자회담 수석대표였기 때문에 핵문제를 잘 알고 있고, 미국에 대해서도 무르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이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송 차관보의 성격이 강해서, 대통령 앞에서 말대꾸를 하지나 않을까하는 점을 가장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송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철저히 자신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은 통일부의 수장으로 청와대를 나간 이종석 장관을 점차 밀쳐내고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실세가 돼 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가장 많은 전쟁을 한 나라"…계산된 발언?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얘깃거리의 하나가 송 장관이 미국을 자극했던 '사건'입니다. 송 장관은 차관보 시절에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미국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더러 드러내곤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보인 기억도 거의 없습니다.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을 내고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들고 나와 단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상황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1991년 북미과장, 1996년 북미국 심의관, 1999년 북미국장을 했던 한국의 외교관치고는 눈길을 잡기에 충분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중순 한 포럼에 참석한 송 실장의 발언입니다.

질문 :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국은 'No War', 미국은 'No Nuclear' 입장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은?

송민순 실장 : 국가의 탄생과 생존의 역사에서 미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도 많은 전쟁을 한 나라고, 전쟁에 대한 가장 큰 피해자는 안보 구조의 부조리에 처해 있는 우리 한국이다.

이 발언 알려지면서 정치권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미국 역시 내부적으로 송 실장에 대한 비판과 거부의 분위기가 드세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전개 상황이 절묘한데, 이 발언이, 노 대통령이 송 실장을 외교통상부 장관에 임명하는데 (결정적이지는 않아도)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었습니다. 특히 일부 인사 담당자들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아니라 송민순 실장을 가장 왼쪽 성향으로 꼽았다는 것입니다(그 다음이 이종석 장관). 이런 사람에게 외교부를 맡겨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차관보가 된지 1년 만에 장관급인 안보실장이 됐던 송민순은 이번에는 11개월 여만에 드디어 외교부 장관에 올랐습니다.

"송민순의 독주를 막아라"

4. 송민순 장관이 외교부를, 이재정 장관이 통일부를 맡으면서, 당시 일부에서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 백종천 새 안보정책 실장 - 김만복 새 국정원장이 협력하는 구도를 만들면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독주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통상적으로 청와대를 나가면, 즉 대통령과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틈이 생긴다, 그 틈을 잘 활용하면 송 장관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그림입니다.

정부 부처 안에 심각한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안보실장 시절의 송민순에게 '당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기류가 일정 부분 만들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즉 정부 부처들의 정책 협의 과정에서 현안에 대한 정보 공유를 피하면서 송 실장이 자신이 중심 돼 일부 측근들만 데리고, 관련 부처들은 배제하면서 진행하는 일들이 상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이종석 전 NSC 사무차장이 형식적으로나마 각 부처들과의 협의를 중시했던 점과 비교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은, 개인적인 경험까지 겹쳐 송 실장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이종석 통일부 장관까지 물러나게 되자, 송민순 외교부 장관을 견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방안의 하나로 '이재정-백종천-김만복 협력 체제'가 거론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그 같은 '협력 체제'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대북 포용론자로 평가됐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핵 문제가 풀리는 가운데 제자리를 잡지 못했고, 급기야는 남북관계를 "한 발짝 뒤에서" 진행시키겠다며, 스스로의 역할을 깎아버렸습니다. 또 군인 출신의 학자로 조용하지만 강단 있다는 평을 받았던 백종천 안보실장은 핵 문제, 북미관계, 평화체제, 남북정상회담, 남북관계 등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송민순 장관의 질주로 미뤄볼 때, 백 실장 역시 대통령에게 철저히 맞춰가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만복 원장의 경우도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와대 내부 견제 없고, 핵 문제 가닥 잡히고…

5.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참여정부 중반까지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최고 실세였던 이종석 당시 NSC 사무차장과는 달리 송민순 당시 안보실장은 청와대 내부로부터 심각한 견제를 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종석 사무차장은, 청와대 밖에서는 자주파라며 좌파로 낙인찍혔지만, 내부에서는 친미파라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대통령 주변의 386들로부터 적잖은 의혹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NSC 문건 유출 등 적잖은 부작용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송 실장은 그런 힘든 상황을 많이 겪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이후 송 실장이 외교부 장관이 되어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실세로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론 송 장관이 "정말 운이 트였다"는 것입니다. 송 실장을 비롯한 외교부는, 지난해 11월 부시 미 대통령의 하노이 '종전선언' 발언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부시 대통령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실험 이후 강력한 대북 제재를 주장하는 미국에 발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특히 금강산 관광 사업을 놓고 통일부와의 이견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부시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지난 1월 북미 베를린 회동, 2월 2·13합의는 그 같은 극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 긍정적인 변화가 송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북 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선 핵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관계의 지체를 필요로 하는 송 장관의 주장이 그다지 무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족한 '2%'를 채울 수 있을까?

6. 수 년을 핵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온 한국으로선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절실합니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통일부냐, 외교부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칫 부처 이기주의나 힘겨루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가건 저렇게 가건, 서울로만 가면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다 누가 되건 정책을 주도하는 사람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송민순 외교부 장관에 대한 호불호를 내세우는 것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송 장관에게 '2%'가 빠져 있다는 느낌은 좀처럼 지울 수 없기도 합니다. 특히 남북 관계를 북미 핵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또 송 장관이 현재 정부 안에서 사실상 독주하면서 보이는 모습들에 대해서도 선뜻 "잘 하고 계십니다"라며 박수 치기 어렵다고 합니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2%'를 잘 채울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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