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출범 후 3년여 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일했던 김창수 실장은 2.13합의 이후 불거지고 있는 쟁점을 간추려 분석했다.
김 실장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문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문제, 테러지원국 해제, 핵 불능화의 개념과 상응조치, 경수로 제공 문제, 미 네오콘들의 대응, 한미합동군사훈련 등 7가지를 2.13합의 이행의 걸림돌로 꼽고 그에 대한 해법과 전망을 내놨다.
김 실장은 그러나 이같은 문제점들이 불거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6자 외무장관 회담 등 고위급 협의구조를 만들었다는 점과 북미 외무장관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특히 남북미 3국의 종전선언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망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도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편집자>
2.13합의와 제네바합의의 근본적인 차이
북미관계가 최근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언론에 북미수교에 대한 전망이 오르내릴 정도이다. 이 달 초 뉴욕에서 열린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북미 양자대화 이후 정세는 더욱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작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1994년의 제네바합의는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타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북미관계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9.19공동성명은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된 것이었다. 반면 북핵 2.13합의는 네오콘의 퇴장 이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북미 사이의 신뢰를 조성해가는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부시의 하노이 발언이 가져온 평화 쓰나미
북미관계의 변화는 작년 11월 18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하노이 발언'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상당히 놀랄 만한 제안을 했다. 그가 내놓은 대북 제안은 크게 세 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미국의 대북경제지원 참여 등이다.
특히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가 함께 임기 중에 북핵문제를 다 해결하자"며 "자, 저쪽에 김정일이 앉아 있고 여기에 당신과 내가 앉아서 함께 종전서명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명했다고 한다.
물론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제안'이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 △구체적으로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참가하는 3자의 종전서명식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부시 대통령의 하노이 발언이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의 출발점이라면, 부시 대통령의 임기 중에 북미관계가 도달할 종착점은 종전선언과 북미수교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낙관할 수는 없다. 2.13합의의 이행과정에는 숱한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제재 해제, BDA 동결해제로 완전할 수 없어
첫째, 3월 14일로 예정된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해제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김계관 부상은 지난 10일 앞으로 핵폐기 프로세스를 BDA 문제와 연계할 뜻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현재까지 알려지기로 미국은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기관'에서 '돈세탁 대상기관'으로 공식 지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는 미국이 BDA에 의한 불법자금세탁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에 따르면 돈세탁에 연루된 BDA 임원들을 기소해야 한다. 이 때에는 최근 북미관계를 고려해 BDA 임원들에 대해 가벼운 조치를 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울러 BDA에 의해 동결된 북한 자금 가운데 합법자금을 해제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다.
BDA가 북한계좌 동결을 해제한다고 해도 북한이 위조지폐를 세탁했다는 혐의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게 된다. 이 경우 장외로 퇴장한 네오콘들이 여론몰이를 할 것이기 때문에 2.13합의 이행은 새로운 암초와 마주치게 될 수 있다.
둘째, 핵 프로그램 목록협의(60일 내 초기조치)와 신고과정(불능화 단계)에서 고농축우라늄(HEU), 과거 추출한 플루토늄,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 문제가 매끄럽게 해결되지 못할 수도 있다.
HEU는 2002년에 제기된 이후 계속 논란을 빚어 왔다. 그러나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9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에 고농축우라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란 말이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미국도 이미 2005년부터 고농축을 빼고 그냥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란 말을 써 왔다. 따라서 북한이 파키스탄에서 수입한 20여 개의 원심분리기와 러시아에서 수입한 알미늄관의 용도를 밝히는 선에서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와, 미국이 50kg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구체적 사용내역을 핵 프로그램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김계관 부상은 3월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분리해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핵 프로그램 목록에서 북한이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제외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테러지원국 해제와 일본인 납치문제
셋째, 북미관계에서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고, 일본인 납치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은 예상대로 일본인 납치문제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했다. 납치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데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1988년부터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작년 5월에도 '국가별 테러리즘 보고서'에서 북한을 이란, 쿠바, 시리아, 리비아, 수단 등과 함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 행정부의 재량사항이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4월에 국제사회의 테러 관련 평가를 담아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 전년도 11월까지 자료 조사를 마치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테러지원국으로 지목된 국가명단이 공개된다. 2007년에 발표할 테러지원국에 대한 평가는 행정적으로는 이미 끝났다고 볼 수 있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려면 미 행정부가 45일 이전에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2·13합의 2조는 "60일 이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해제가 아니라 해제 절차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초기단계가 완료되는 4월 14일까지 해제 절차에 합의한다고 하더라도, 테러지원국 명단은 4월이나 5월초에 발표된다. 이 기간을 고려할 때 의회보고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힘들다. 이같은 실무적인 절차 때문에 2007년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이 빠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발표를 늦추거나, 북한과 협의 결과에 따라 추후에 별도로 특별보고서를 통해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다. 2000년 3월 이후 미국은 북한과 3차례에 걸쳐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 이때 미국이 제시한 조건은 △테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표명 △최근 6개월간 테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입증 △테러방지 국제협약 가입 △과거행위에 대한 필요한 조치 이행이었다. 북한은 '과거행위에 대한 필요한 조치의 이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북한은 9.11 테러 사태 이후 반테러선언을 했고, 최근 6개월간 테러를 하지 않았으며, 2001년 유엔에서 테러자금 조달 억제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는 등 반테러 국제협약 12개 가운데 7개 협약에 서명했다.
문제는 과거행위에 대한 필요조치 이행 부분이다. 2005년 미국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테러문제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따라서 납치 문제가 일본에 의해 계속 제기될 경우 이에 대한 해석이 복잡해진다.
2002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납치문제를 사과했고, 북한은 생존해 있는 납치자들을 일본에 돌려보냈다. 그러나 일본이 납치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어 현안이 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네오콘들은 과거행위에 대한 북한의 필요조치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지난 10일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문제는 납치문제와 연계돼 있다"며 "현재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일본인 납치뿐 아니라 남한인 납치 문제도 함께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의 강경파들도 납치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고, 행정적으로도 일정한 절차가 필요하므로 테러지원국 해제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미국은 이란, 쿠바, 시리아, 베네수엘라, 북한 등 5개국을 대테러활동 비협력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명단에서 북한을 빼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이런 조치를 취하면서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한 절차를 계속 밟아나가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제6차 6자회담에서 추동력을 확보해야
넷째, 초기단계에서 핵폐쇄 조치를 취한 이후 다음 단계인 불능화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불능화 단계에서 북한과 관련국들이 취해야 할 상호조치가 합의되어야 한다.
4월 13일까지 북한의 폐쇄조치가 완료되면 다음은 불능화 단계다. 그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불능화의 개념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불능화와 핵폐기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불능화 단계에서 북미의 상호조치를 합의해야 한다. 불능화에 포함되는 핵시설의 범위, 대상, 방법 등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오는 19일부터 열릴 제6차 6자회담에서는 이를 협의할 것이다.
또 불능화 단계에서 95만 톤 중유에 해당하는 지원을 둘러싸고 각국의 자기 몫 줄이기 시도도 예상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이미 추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부채탕감을, 중국은 지금까지의 북한에 대한 중유지원을 불능화 단계에서 지원해야할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다섯째, 북한이 어느 시점에서 경수로 제공을 요구할 것인지도 쟁점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은 핵폐기 이후라고 못박고 있으나, 북한이 경수로 지원 없이 핵 불능화나 폐기를 선행할지 의문이다. 북한이 불능화에 대한 상호조치로 경수로 제공을 주장할 경우 이룰 둘러싸고 지루한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북한의 행동조치로서 불능화와 핵폐기가 일정에 올라 있으나, 불능화와 핵폐기 단계에서 미국 등 관련국이 취해야 할 상응조치는 합의되지 않았다. 상응조치가 충실하지 못할 경우 불능화와 핵폐기로의 이행은 지연될 것이다.
여섯째, 미국의 네오콘들이 지속적으로 2.13합의 이행을 가로막을 것이다. 네오콘들은 북한 핵 프로그램 신고의 불철저성, 납치문제, 북한 인권문제와 위폐 등을 문제삼아 북미관계 진전에 대해 발목잡기를 시도할 것이다. 미 국무부가 3월 6일 연례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폭압정권 중 하나"라고 평가한 것도 빌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네오콘의 핵심인물인 체니 부통령이 리크게이트와 건강문제로 퇴임할 가능성이 있고, 그 자리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승계할 수도 있어서, 강경파의 구심이 약화되는 것은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이다.
일곱째,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복병이다.
북한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 실시될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RSOI)과 독수리합동군사연습(FE)이 고비가 될 것이다. 당장 지난 3월 10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RSOI)과 독수리 합동군사연습(Foal Eagle)이 핵 포기 협상과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94년 제네바합의 이전에 미국이 팀스피리트(TS) 훈련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으나 RSOI-FE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한 보강조치 차원에서 지속한다는 것이 한미양국의 입장이므로 RSOI-FE가 중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라이스의 방북과 남북미 3자 종전선언
이상과 같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2.13합의가 소중한 것은 이런 걸림돌들을 넘어설 수 있는 고위급 협의구조를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4월말이나 5월초에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린다면 여기서 많은 사안들에 대한 조정이 될 것이다. 초기단계에서 발생한 쟁점 해결, 불능화 단계와 핵폐기 단계의 상호조치에 대한 합의 등이 6자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루어진다면 큰 고비를 넘어설 것이다.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린다면 거기서 북미 외무장관 회담이 열릴 것은 확실하다. 북미 외무장관 회담이 열린다면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도 가능해진다. 2.13합의 이후 북미 정상회담, 남북미 3자 정상회담,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 6자 정상회담 등 위한 여러 가지 형태의 정상회담이 예상되어 왔다. 라이스의 방북은 이 가운데 하나가 실현되는 기초를 닦을 것이다.
또 9.19공동성명에서 약속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남북미중 4자 평화포럼이 5월경에 열릴 경우 부시 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본궤도에 오를 것이다.
남북미 종전선언으로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면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더라도 북미관계 정상화의 초석은 마련되는 셈이다. 아울러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북미중 4자 평화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다뤄지면 길고 길었던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운명을 다하게 된다.
남북대화도 이런 물결을 타고 있다. 올해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공존을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게 진전시키고 냉전체제를 검증가능하게 해체하는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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