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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쿨'하지만…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31> 한 소년의 죽음

날이 가고, 좀 힘겹다. 그렇다고 안 살 수야 없는 노릇이다. 나는 세상사를 겨울날씨처럼 냉정하게 지켜본다. 어느 계절에도 그렇지만 나는 이 겨울에, 되도록 많은 뉴스를 차갑게 소비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한다. 인터넷을 대충 검색하고 다양한 신문의 사이트를 훑어본다. 대개 기사의 내용이 요약돼 있는 제목만 읽고 지나간다. 그리고 제목에 나와 있는 사망자 숫자마저 잊어버린다. 그게 23명이었는지 17명이었는지. 어쩌면 사망자 숫자는 32명이거나 71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 컴퓨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아랍어 파일에 맞게 설정돼 있기 때문에, 숫자의 순서가 뒤바뀌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지 안 그런지 내가 알 방도가 없고, 정말로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다.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읽자마자 잊어버리는 것처럼, 나는 사망자 숫자를 곧 잊어버린다. 하루마다 점성술에 따른 고유한 점괘가 나오듯이, 요즘은 하루마다 여기서 폭탄이 터지고 저기서 난리가 났다는 고유한 보도가 나온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기억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내 피는 겨울날씨처럼 차가워졌으므로.

냉혈한 같은 나의 무감각은 어쨌든 살아가겠다는 나의 결심을 지탱하는 비결이다. 결단코 그럴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무너질지라도 나는 버틸 것이다. 확신을 갖고 평소처럼 살아갈 것이며, 성공적으로 하루를 시작하여 마칠 것이다. 돌연 실패가 막아설지라도, 나는 자신이 차가운 사람이므로 성공을 개의치 않는 것처럼 실패 또한 개의치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유념할 것이다. 내 삶이 행복도 절망도 아닌 중립 상태로 유지되도록.
▲ "가자 지구에서 일자리를 찾아볼까? 가자 지구 안에는 일자리 같은 건 없고, 날아다니는 총알뿐이잖아." ⓒ무함마드 조하

그러나 종종 뜻대로 안 된다고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두 번 그랬다. 예컨대 오늘 같은 날. 나는 잠에서 깨어 거의 죽을 뻔했다. 창문을 내다 보아도 정원 뒤편 마른 덤불 속에서 꼬리로 몸을 말고 자는 여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엉엉 울고 나서야 차가움을 가까스로 되찾았다.

덤불 속에서 자는 이 여우는 한동안 나와 함께 있었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 일하는 동안 나는 덤불 속에서 자는 이 여우를 바라보며 동지로 삼았다. 어둠이 내리면 여우는 일어나서 어딘가로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는 돌아와 있었다. 내 진정한 친구는 그 여우뿐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잠에서 깨어 내가 그 여우와 사랑에 빠진 건 아닌지, 여자가 인간을 사랑하듯 여우를 사랑해도 괜찮은 건지 생각했다. 겁이 났다. 사랑의 대상이 인간 아닌 동물이어서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겁났다. 사랑은 내가 진력을 다해 주위에 둘러쌓아 놓은 요새를 허물어뜨릴지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자신이 그 짓궂은 여우의 덫에 걸려들었음을 깨달았다. 박절하게 사라져버린 그 여우 때문에 내가 울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에 나는 이번 못잖게 고통스러운 다른 덫에 걸렸다.

늘 그렇듯이 나는 여러 신문을 섭렵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는지 제목만 훑어보고 있었고, 제목의 숫자는 종종 열자리 수였다. 갑자기 나는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제목을 보았다. 아랍어에 맞게 설정된 내 컴퓨터일지라도 이 제목만큼은 혼동할 수가 없으니, '1'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든 '1'이기 때문이다. 절로 내 손이 마우스를 그 제목에 맞추어 클릭했으며, 기사 전문이 떴다. 그리고 나는 덫에 걸렸다. 인간보다는 여우랑 사랑에 빠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듯이, 수십 명이 죽었다는 기사보다야 한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를 읽는 게 나을 줄 알았는데. 지난 1월 25일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에 난 그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이스라엘 국방부 순찰차는 어제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가려던 15세 팔레스타인인을 쏘아서 죽였다. 다른 두 명의 십대는 체포되어 팔레스타인 쪽으로 회송되었다.'

'어제 이른 새벽 세 명이 키수핌 교차로 부근에서 벽 쪽으로 기어가다가 발각됨으로써 사건이 발생했다.'

'군 소식통은 셋 중 한 명이 멈춰서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은 발포하여 그 십대를 사살했다.'

'다른 한 명의 십대는 경상을 입고 비르세바의 소로카 병원에서 처치를 받았다.'

'조사를 받은 후 십대 두 명은 가자 지구로 석방되었다. 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도 넘어가려 했다고 말했다.'

'장벽에 관련된 교전 수칙은 밤에 그 부근에서 기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쏠 수 있도록 허용한다.'
▲ "그들의 이름마저 나는 모른다. 이스라엘 신문이 그들의 이름을 누락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팔레스타인 신문 사이트를 검색해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소년들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도 않았다. 수십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기사들로 도배된 팔레스타인 신문에서는 한 소년의 죽음은 어느 한 구석 차지할 수조차 없었다." ⓒ무함마드 조하

그 기사를 나는 머리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다. 열다섯 살이라면 내 나이의 절반보다 적다. 그는 가자 지구 밖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새벽에 집을 떠난다. 왜냐하면 가자 지구에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총탄만 있다. 아마도 그는 돈을 벌면 어머니에게 보내드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자기는 열다섯 살밖에 안 됐고, 어머니가 알뜰히 살림을 꾸리실 테니까. 아버지가 몇 년째 실업 상태이므로, 그는 다른 두 친구를 만나 도대체 어쩌면 좋을지 함께 고민한다. 가자 지구 바깥에서 일을 찾아볼까? 가자 지구 안에는 일자리 같은 건 없고, 날아다니는 총알뿐이잖아. 셋은 결정한다. 찬 새벽에 그들은 출발할 것이다. 벽 하나만 넘으면 그들은 가자 지구를 벗어날 것이다. 열다섯 살이거나, 어쩌면 열다섯 살도 채 안 됐거나. 보통 십대는 게으르다지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법. 여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따뜻한 담요를 들추고 나와, 싸늘한 새벽 공기 속에 출현한 세 명의 십대가 있다. 주위를 살피며 벽에 접근하는데, 어둠이 그들을 가려주는 것 같다. 춥다. 그러나 벽 너머에서 그들은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자 지구에는 일거리가 없고, 쏟아지는 미사일과 폭탄뿐이니까.

그들의 이름마저 나는 모른다. 이스라엘 신문이 그들의 이름을 누락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팔레스타인 신문 사이트를 검색해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소년들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도 않았다. 수십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기사들로 도배된 팔레스타인 신문에서는 한 소년의 죽음은 어느 한 구석 차지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편파적인 기사로 돌아간다. 그런 기사일지라도 내가 둘러쓴, 살아가기 위한 책임 면제 따위를 벗겨내기에는 충분하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기획·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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