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속의 태풍인가, 제2의 BDA 사태인가. 유엔개발계획(UNDP)의 대북지원 자금 전용 의혹에 대해 북한이 처음으로 공식 반응을 내놓으면서 사태의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그러나 북한의 반발 대상이 '미 강경보수파'에 제한돼 있고, 미국 역시 '북미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서 파장이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北 "황당한 모략…부당한 협조는 안 받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25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을 통해 "미국이 유엔기구들의 협조 문제를 악용해 반공화국 소동을 벌이고 있다"면서 "미국은 (…) 모든 후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변인은 "우리는 앞으로도 유엔개발계획을 비롯한 유엔 기구들과의 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지만 협조 문제를 정치화하려는 기도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조건부적이거나 부당한 협조는 애당초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변인은 이어 "미국은 너절한 정치적 목적으로부터 얼마 되지도 않는 UNDP의 협조 자금을 우리가 '핵무기 개발에 유용했을 수 있다'는 생뚱같은 거짓말까지 꾸며내 '불법자금 제공'이니 '협조활동 조사'니, '협조계획 보류'니 하며 새해 벽두부터 새로운 반공화국 소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여러나라 통신들이 미국의 강경 보수파들이 이번에는 베를린 조미회담과 때를 같이해 '불법자금 유용 의혹'이라는 창의품을 고안해 냈다고 평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무성 대변인의 이날 발언은 '경고와 비난'에 치중됐고 향후 대응조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또한 유엔 지원 사업에 대한 외부 감사를 약속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비난도 포함되지 않았다.
美 "6자회담에 차질을 빚어선 안 된다" 강조
이에 대해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과 북한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유엔 프로그램의 관리와 감시에 대한 문제"라고 규정했다.
매코맥 대변인은 이어 6자회담에 차질이 빗어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반 총장이 북한뿐 아니라 전세계 유엔 프로그램의 점검을 지시한 것도 반 총장 역시 이 문제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리도 "9.19공동성명 발표와 맞물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계좌를 동결했을 때도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고 "UNDP 의혹 제기가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북한을 압박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美, 투명성 따지되 유엔 사업 자체에는 제동 안 걸어
의혹을 받고 있는 UNDP는 이날 집행이사회를 열고 문제가 제기된 대북사업계획을 일부 조정한 뒤 다시 승인 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UNDP는 1791만 달러에 이르는 2007~2009년 대북사업 규모는 유지한 채 인적개발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내용만을 조정한 새로운 사업계획을 3개월 내에 만들어 다시 승인절차를 밟기로 했다.
UNDP는 또 대북사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오는 3월 1일부터 북한에 대한 현금지급과 북한 정부를 통한 현지직원 채용을 중단하고, 대북사업에 대한 외부감사를 의뢰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UNDP는 집행이사회에 앞서 이같은 내용을 북한 당국에 통보했으며 북한이 이를 수용하면서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대북활동을 하는 다른 기구인 유엔인구기금도 24일 집행이사회를 열고 총 835만 달러에 달하는 2007~09년 대북사업계획을 승인했다.
미국은 유엔인구기금의 이 계획이 통과된 뒤 사업자금 집행에 대한 감시와 감사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주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집행이사회에서도 대북사업의 투명성 문제를 제기했으나 사업승인을 제지하지 않았었다.
美 보수강경파, 불씨 살리기 시도할 수도
UNDP 문제가 관심을 끄는 것은 투명성 문제 자체보다 최근 무르익어가는 북핵 논의에 끼칠 악영향 때문이다. 북한이 '또 하나의 체제 붕괴 시도'라며 핵폐기의 선결조건으로 건다거나, 미국 내 강경파가 이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다시 시도한다면 북핵 문제가 다시 꼬일 수 있다.
마크 윌리스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가 지난 16일 애드 멜커트 UNDP 총재보에게 보낸 서신이 19일 미국의 보수적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공개하면서 제기된 UNDP 자금 전용 의혹은 유엔의 신속한 조치와 북미 양측의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일단 진화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23일 이런 분위기를 타고 한국 정부가 북한에 지원해온 자금을 문제삼는 등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헤리티지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난 10여 년간 북한에 약 5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했다"며 규모와 성격 등을 조사할 독립적인 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25일 "우리가 1995년부터 지원한 것은 2조5160억 원(26억8000만 달러) 상당으로 전액 현물이기 때문에 헤리티지의 얘기는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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