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서울 도렴동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실로 모여들었다. 초점은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중단된 쌀·비료 인도적 지원을 어떻게 풀려고 할 것이냐는 문제.
그러나 이 장관은 끝내 '기대됐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쌀·비료 지원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에 대해서는 보는 이들에 따라 '기대하는' 이유가 제각각이겠지만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미래지향적인 화해협력을 위해 인도적 지원의 개념과 운영원칙을 새롭게 정립하고 다각화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은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하는 것과 시민사회단체가 하는 게 있다. 수해지원도 있고 일반적인 지원도 있고, 상황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다르다. 그런 내용과 방법, 개념을 어떻게 정리하고 해석하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특히 정부가 하는 인도적 지원은 여러 가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무상지원과 차관은 어떤 효과가 있나, 사후 검증(모니터링)은 어떻게 해야 하나 등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
이 장관의 발언은 이렇게 요약된다. 한 마디로 인도적 지원의 범위와 개념, 지원방법, 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에 쌀·비료 지원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에 한 기자가 '검토는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묻자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정리하고 바로 결과를 발표하겠다"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인도적 지원의 효율성을 확대하고 누구에게나 보람있는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지원 활동을) 제약하거나 제약할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인도적 지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만 확인됐을 뿐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빠져 있었다.
확인된 건 또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했는데도 불구하고 '회담에 복귀하면 쌀·비료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방침이 이행되지 않은 건 10월의 핵실험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6자회담의 진전 상황, 남북대화, 국민들의 공감대라는 3대 고려사항을 봐서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확인됐다'고 하는 건 부정확하다. 이미 다 공포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다만 "모든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지원) 재개의 방법들을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뭔가를 빨리 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내심을 슬쩍슬쩍 비치긴 하지만 이미 알려진 내용을 되풀이하고 모호한 '검토'만을 강조하자 기자회견장 주변에서는 '역시 정치인 출신 장관답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잘 빠져나간다'는 말들이 나왔다. '개념은 이미 다 정립됐는데 또 무슨 검토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자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의 발전에 레버리지(지렛대)로 쓸 수 있는 지원과, 그렇지 않고 그냥 주는 것을 구분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아줬다.
이 장관의 평소 성향으로 볼 때 쌀·비료 지원 재개의 시점과 논리를 가급적 빨리 찾으려 한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관측이다. 통일부 장관 임명에 반대했던 야당과 보수언론이 이 장관의 인도적 지원 재개 발표를 '공격 개시'의 총성으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사전포석이 너무 많으면 '눈치보기'가 돼버리고 스스로 자기 논리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당장 재개가 어렵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한 전문가의 지적은 이 장관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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