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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사 책 하나 변변히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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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사 책 하나 변변히 없는 나라

김민웅의 세상읽기 〈252〉

국내에 돌아와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는 기쁨을 누린 지 벌써 2년이 되어갑니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세계체제의 변화가 있는지 모색해보는 그런 강의들이 주로 맡고 있는 과제들입니다. 그런데 강의록을 작성하고 참고서적을 선정할 때마다 필요한 책이 없어서 애를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충분히 조사를 하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나, 혹시 우리나라 학자가 쓴 중국 외교사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중국학자가 쓴 중국 외교사 책이 딱 두 권 번역되어 있을 뿐입니다. 일본 외교사로 가면 더 심각합니다. 국내 학자이건 번역이건 아예 없습니다. 근대 동양외교사 책은 국내 학자의 저서가 단 한 권 있을 뿐입니다.
  
  아와나미 문고와 게이오 대학에서 나온 일본 외교사 책을 각기 주문하여 받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바로 주변의 국가들이 어떤 외교적 고뇌와 전략, 그리고 탐색을 해 왔는지 알지 못한 채 지내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나라인가 싶은 겁니다.
  
  현재의 중국과 일본은 과거의 중국과 일본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현재를 대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하는 것은 명백한 요구이며, 그것이 미래에 대한 대응과 직결되어 있지만 우린 그때그때 즉물적인 대응만 하면 그뿐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외교사는 최근 한 권이 겨우 나왔습니다.
  
  일본의 외교사학자 이게이 마사루(池井優)는 일본도 태평양 전쟁 전까지는 외교사의 연구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군부가 장악한 현실에서 외교자료의 공개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외교는 권력자의 소관이라는 생각에 묶여 있던 시대상입니다.
  
  경제사의 중요한 고전적 저작들에 들어가면 상황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나마 사회과학 서적의 수요가 왕성했던 80년대까지 나왔던 책들마저 명맥이 끊겨 교재활용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지적 공백이 커다랗게 생긴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줄기찬 연구와 축적이 없이는 학문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국제정치나 경제정책 논쟁에서 구체성이 떨어지는 주장들이 나오는 까닭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현재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으니 그 정작의 뿌리는 보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역사적 기억과 성찰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난관입니다.
  
  책들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전에는 구경할 수도 없었던 저작들도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오랜 세월이 걸려야 겨우 한 권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책들은 사실 보기 드뭅니다. 꾸준하게 파고들어서 무언가 드디어 그 실마리가 보일까 말까 한 학문적 업적들은 출판계에서 자리 잡기 힘든 것입니다.
  
  출세를 위한 교육열은 높지만, 교육의 진정한 내용에는 철학적 고뇌와 사회적 논쟁이 빈약한 현실이 자초한 결과입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지속적으로 쌓아 올려가면서 한 시대에 획을 긋는 그런 성취를 귀중하게 여기고 이를 격찬하며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그런 나라에 미래가 있습니다.
  
  반짝 하는 인기에 몰두하는 사회, 그래서 뿌리 깊은 나무를 보기 쉽지 않은 나라는 바람이 거세게 불면 그 있던 뿌리마저 뽑히고 맙니다. 깊고 길게, 그리고 누가 뭐래도 신념을 가지고 꾸준하게 노력하는 그런 우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역사와 만나는 노력이 없는 나라는, 미래를 제대로 만들어 가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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