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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스스로에게 50년 치적을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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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스스로에게 50년 치적을 물었더니"

장서각 소장 영조어제 5000건 정리 해제

"내 나이 이제 팔순인데 무슨 일을 했던고 내게 물었더니 / 마음 부끄러워 그 무어라 답하리오? / 첫번째라, 당색 타파 힘썼으나 '탕평'(蕩平) 두 글자 부끄럽네. / 두번째라, 균역(均役) 실시하여 한 필을 감해주자 / 그 덕택 승려까지 미쳤다네 / 세번째라, 청계천을 준설하여 만년토록 덕을 입혔네. / 네번째라, 옛 정치 뜻 회복하여 여종 공역 없앴다네. / 다섯째라, 서얼들을 청직(淸職)에 등용하니 유자광(柳子光) 이후 처음이라네. / 여섯째라, 예전 정치법 개정해 속대전(續大典) 편찬했네."
  
  영조(1694-1776)는 태조 이성계 이후 모두 27명이었던 조선 역대 왕 중에서도 재위기간(1724-1776)이 무려 53년으로 가장 길었고, 83세로 최장수했다.
  
  세종, 정조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성군(聖君)이자 학군(學君)으로 꼽히는 그는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았다. 숙종의 둘째 아들이었지만 궁중 여자종인 무수리가 어머니였고, 이 때문에 왕이 되는 과정이 험난했고 평생 콤플렉스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자신 당쟁에서 승리해 즉위했지만 재위 50여 년간 당쟁을 없애려 노력했다. 재위 50여 년간 계파별로 고르게 인재를 등용했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후계자로 지명한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겨죽인 비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이 여든에 도달했을 즈음, 50년에 달하는 기나간 재위기간에 자신이 이룬 치적으로 6가지를 거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계집 종에게 부과되던 각종 공역을 없애고, 서얼이 중앙관리로 임용될 있는 길을 열어준 두 가지는 영조 자신의 콤플렉스와 관련된다.
  
  한국 한문학 전공인 안대회 명지대 교수는 "박제가, 유득공 같은 서얼 출신들이 중앙관직에 진출해 정조 시대에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영조 임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단언한다.
  
  영조는 재위기간이 길었던 것만큼 또다른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앞에서 든 '사업을 물음(御製問業)'이라는 글처럼 임금 자신이 쓴 글을 어제(御製)라고 하는데, 역대 임금 중 가장 많은 어제를 남겼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 장서각에 소장된 한국본 고서 총수는 약 1만2000건. 이 중 영조어제는 그 절반에 육박하는 5000여 건에 달한다. 영조 자신이 워낙 글을 좋아했던 데다 재위 기간이 길었던 덕도 있지만, 똑똑한 손자를 둔 덕을 톡톡히 봤다.
  
  영조에 이어 즉위한 정조는 규장각(奎章閣)을 만들어 선왕들의 유품을 보관하는 전각 시설인 봉모당(奉謨堂)을 마련했다. 영조어제류는 이곳에 모두 봉안됐으며, 나중에 일제시대 이왕직(李王職)박물관과 해방 이후 문화재관리국을 거쳐 현재 한중연 장서각에 전하고 있다.
  
  영조어제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권오영 한중연 교수는 "국가의 공적 기록인 영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만으로는 불충분한 역사적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보조 사료적 가치가 있다"며 "이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해야만 영조의 일생은 물론 당대 역사적 정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권 교수가 이끄는 장서각팀은 지난해부터 3년 예정으로 유일본 필사본들인 영조어제에 대한 현황파악과 자료해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육성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차년도 사업이 끝난 2006년 7월 현재 1800건 8000장 분량이 완성됐다고 권 교수는 전했다.
  
  권 교수팀은 사업 시작 이후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영조의 시간의식, 공간의식, 노년의식, 추모와 훈계, 질병과 약재, 영조어제 문체의 특징 등을 밝힌 연구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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