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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美 동북아 전쟁체제 구축'의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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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은 '美 동북아 전쟁체제 구축'의 희생양

[시론] 굴복, 전쟁, 그리고 협상…미국이 원하는 선택은?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된 동북아 정세에는 두 가지 사실이 핵심적 조건으로 존재하고 있다. 첫째는 이 지역 관련 국가들 가운데 현재 전쟁을 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점, 그리고 그 전쟁도 침략과 정복 전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둘째, 이렇게 전쟁체제를 가동시키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과의 적대적 상황에 놓여 있는 나라 북한에게는 (1)굴복 (2)전쟁 그리고 (3)대화를 통한 협상의 세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현재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라는 첫 번째 전제는, 이 거대한 전쟁국가와 갈등, 대립하고 있는 나라로서는 자칫 사태가 악화될 경우 파멸적 전쟁을 각오해야 할 절박한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음을 뜻한다. 그 결과는 미국에 의한 점령 체제 실현이 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도 이미 공식적으로 들어 있는 군사정책의 정치적 요체다.

따라서 꼭 북한이 아니라 그 어떤 주권국가일지라도 그런 입장에서는 생존이 위협당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국가적 과제이다. 여기서 그 선택은 두 가지로 나뉜다. 군사적 대결인가, 또는 평화로 귀결되는 외교적 타결이냐이다.

하지만 상대가 외교적 타결을 위한 일체의 여지를 거부할 경우, 즉 체제 붕괴를 가져올 굴복이 아니면 전쟁을 각오해야 할 양자택일의 압박을 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현실의 본질을 잘 관찰해야 한다. 미국이 평화를 위한 외교적 조처를 수없이 강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어떻게든 미국과 한판 전쟁을 벌여야겠다고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북한이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끊임없이 호소하면서 굳이 핵무장에 이를 필요가 없는 안보상황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북한은 백기를 들지 않는다. 미국은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남은 것은 전쟁이 될 수 있다. 전쟁으로 가는 길은 누가 지금 주도하고 있는 것인가? 한반도 전체 민족의 생존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결정력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까지 북한이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적대관계의 해소가 확약되면 안심하고 핵무장 해체를 포함한 군사력 조절에 나서겠다." 이것이 핵무장 전략을 은폐하기 위해 명분상 내세우고 있는 말일 뿐이라는 비판을 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북한은 미국과 양자협상 및 대화를 시도해 왔고 시도하려고 하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적인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도리어 미국이라는 사실 역시 객관적으로 부정할 길이 없다.

미사일 실험 발사 이전에 북한이 외교적 타결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을 위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초청에 노력을 기울였다가 미국의 거부로 실패해버린 사례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가를 그대로 드러낸 현실이다. 현재로서 미국은 적대관계 해소에 필요한 외교적 조처를 취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외교협상의 문이 닫혀버린 셈이다.

북한은 그렇다면 자신들에게도 만일의 경우 자위수단이 있음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서는 깊은 안보위기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이 된다. 대화를 거부하면 이에 불안을 느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미국이 몰랐다라고 할 수 있을까? 몰랐다면 미국의 정보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알고 그랬다면 그 의도에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6자 회담은 공정할 수 있는가?

도대체가 거대한 몸집의 사나이가 작고 초라한 꼬마를 벼랑으로 모는 것이 벼랑 끝 전술일까? 아니면, 그렇게 벼랑의 지점에 몰린 꼬마가 결국 칼을 뽑아 든 것이 벼랑 끝 전술일까?

이 경우, "처분에 맡기겠습니다."하고 약자가 강자 앞에서 얌전하게 무릎을 꿇는 것이 온당한 태도인가? 상대의 어마어마한 힘을 알면서 감히 칼을 뽑았다면 그건 누가 보아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생명을 건 모험이다. 무모한 선택이다. "모험주의"라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모험주의를 선택하고 싶어 하는 것과,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하게 되는 것의 차이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거대한 사나이가 등 뒤에 감춘 손에는 그 칼에 비하면 수백 배의 위력이 있는 철퇴가 들려 있다면 먼저 해결할 과제는 무엇일까? 가공할 무력을 앞세우고 압박해 들어오는 미국 앞에 놓여 있는 북한의 현실을 함께 주목하지 않고, 과연 오늘날 북한의 핵실험 이후 동북아시아 정세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인지 균형 있게 짚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취하거나 붕괴전략 내지는 군사적 압박을 시도하려 하다는 비판은 근거가 없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 정책에서 "모든 동원 가능한 수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면서 "군사적 방식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언제나 예외 없이 강조한다. 실질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것은 직접 대화를 통한 협상이다.

미국이 말하는 "모든"에는 직접 대화가 빠져 있고, 군사적 조처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유엔 결의안 작성 과정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없었다면 군사적 조처를 규정한 유엔 7장 41조를 내세우려 했던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북한에게는 핵무장까지 가지 않고도 외교적 타결 가능성이 충분한 "6자회담"이라는 틀이 주어져 있다고 반론을 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해 9월 19일 핵문제와 북한-미국 우호관계 진전을 위한 포괄적인 해결을 약속했던 공동성명의 이행도 미국의 예상하지 못했던 대북 경제제재로 가로막혀 좌절되었다고 보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에게 가해오는 위험의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판단이 오판이고 미사일-핵 실험 같은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면 외교적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설득하려면, 즉 6자회담의 틀에서 "공정한" 외교적 타결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려면 그 대안은 어렵지 않다.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증거로 입증된 것이 아닌, 일방적 혐의 부여로 인한 위폐논란으로 경제제재를 가한 방식을 전향적으로 철회하는 것으로써 외교협상을 재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도 이 점을 수차 강조하고 언급하고 있다.

금융제제 문제는 6자회담과 별도의 문제일까? 만일 금융제재 문제의 합리적 해결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향후에도,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북한이 지속적인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힘이 약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정하지 못한 처지에 놓인 채로 6자회담에 참석해서 협상에 임하려는 국가는 없다. 그 어떤 협상도 자신의 발언권을 극대화하려는 전략과 전술이 있게 마련인데,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부당하기 짝이 없는 "위폐범죄국가"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에서 어떤 대등한 회담 논의가 기대될 수 있을까?

게다가 사실 미국은 이미, 이라크 침략전쟁의 과정에서 입증능력에 결정적 파산을 했던 바가 있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근거로 내세워 침략했던 미국이, 북한의 경우에도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6자회담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사태가 될 수 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촉구에 앞서서 "회담의 공정성이 보장될 수 있는 조건 마련"에 노력하지 않고서는 북한의 회담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고강도의 위협"이 아니고서는 없게 된다. 그때 이미 그것은 회담이 아니라 항복문서 작성절차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자리에 주권국가의 위치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을까? 회담의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회담에서 어떤 기대가 충족될 수 있을 것인지를 확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초점일 것이다.

"이라크 교훈"과 무장력 해체의 문제

이러한 상황에서 이른바 "이라크 교훈"은 북한에게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이라크 교훈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치르게 될 대가에 대한 증거로 인식되기를 바라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의 교훈은, "적대관계 해소 없는 무장력 약화 내지 해제"는 곧 침공의 문을 열고 붕괴로 가는 첩경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미국은 이라크 침략 이후 대량살상 무기가 없는 것을 알았다기보다는, 없는 것을 알고 침략했다고 봐야 한다. 만일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이 가능했다면 미군의 희생은 재앙에 가까운 것이고 전쟁 결정을 내린 부시정권의 정치적 수명은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은 그런 결정을 결코 내리지 않는다.

적대관계 해소가 확보되지 않았을 때, 전쟁체제를 갖춘 초강대국에 맞서 자기를 지키거나 그나마 협상의 여지를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고강도의 방어수단을 마련하는 길 외에는 없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 정책"이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냉전 시기에 이미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ance of Destruction)라고 해서 서로의 파멸이 보장된 방식의 체계이다. MAD 말 그대로 미친 짓이다. 외교적 협상의 절박성이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MAD 시스템이 가동되면, 군비확장 경쟁과 함께 언제 어디에서 어떤 우발적 상황이 전쟁체제의 적극적 가동과 결합 될지 모른다.

그건 재앙이다. 사태가 아무리 험악하고, 자신들의 무장력 강화를 정당화하는 상황 전개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북한의 핵무장 자제를 그토록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서는 이유는 일단 MAD시스템이 현실에서 진행되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무장력 강화 내지 추가조처는 일말의 상황적 정당성이 있다 해도 결과적으로 자기방어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파멸적 과정으로 들어가는 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남쪽도 같은 운명에 휘말리게 하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이를 피하도록 북한에게 요구하려면 대북 설득력을 가질 만한 우리 나름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아무튼 북한은 이러한 정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군사적 조처가 어떤 사태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혹여 무기를 내려놓으려 해도, 그것이 항복이나 더 강제적 조처를 겪게 되는 계기가 아닌 새로운 관계개선의 기회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북한으로서는 퇴로가 차단되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북한에게 "명예로운 퇴로"를 만들기보다는 치욕적인 굴복을 강요해서는 아니 될 이유가 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상대를 안심시키고 대화의 장에 초대할 수 있는 것은 강자의 위협을 거두는데서 시작된다.

북한의 무장력 강화 과정은 미국의 동북아전쟁 체제의 구축 명분을 위한 성과

이와 함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바는,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 부시정권의 네오콘이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동북아 긴장증폭 전략의 결과물이라는 측면과, 그 긴장의 상한선을 어떻게 정하느냐의 문제로 딜레마에 직면한 측면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무장력 강화로 유도하는 작업은 일정한 선까지는 미국의 동북아 전쟁체제 구축과 일본의 본격적인 군사대국 등장을 위해 필요한 긴장국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과연 그러한 전략이 미국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것인지 제한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기까지는 일단 우여곡절 끝에 왔지만, 그 이후 군사적 조처의 단계로 이행할 수 있을 지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달레마의 비중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미국에게 부담의 차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시 주목하건대 기본적으로 북한은 이러한 미국 네오콘의 전략에 의한 "희생양"의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동북아 전쟁체제 구축에 요구되는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미국이 끊임없이 악마화해온 북한은 네오콘에게 불가결한 존재이다. 북한의 핵무장까지 몰고 온 미국 네오콘의 전략은 일본과 함께 동북아 전쟁체제를 완결시키고 그 와중에 북한의 붕괴까지 가져올 수 있다면 중국의 측면 공격 기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손해 볼 것이 없다.

이 점을 간과할 경우,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체의 사태가 가지고 있는 미국 주도의 세계 체제적 의미를 직시하기 어렵게 된다.

중국은 미국과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정면충돌할 입장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휩쓸려 자신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한을 빌미로 한 미국과 일본의 무장력 강화 움직임을 최대한 저지하려 한다. 여기서 중국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북한의 일정한 희생을 방치 내지는 허용 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미국의 북한 붕괴전략에 손을 들어줄 수는 없다. 중국으로서 최선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북한과 미국 간의 대치상황이 장기화되어 자신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중국으로서는 여유가 없다.

한반도, 다시 동북아시아 강대국 정치의 희생물 되고 있어

결국, 북한은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의 과정에 주도권 쟁탈을 벌이고 있는 강대국 정치의 계산에 의해 자칫 희생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강압정책에 대해서는 일체 발언하지 않은 유엔의 결정도 바로 이러한 강대국 정치의 면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시대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의지가 유엔을 통해서 관철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평화적 해법이 주도권을 갖도록 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이미 유엔 내부에서는 국제관계의 민주적 재편에 대한 요구가 높고, 유엔이 이러한 역할을 하기를 강렬하게 갈망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결정 자체가 곧 국제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없으며, 미국 또한 유엔의 결정에 언제나 따르는 것도 아니다. 유엔의 결의에 가장 많이 반발하고 거부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도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로서는 전쟁을 피하는 것이 절대적인 과제이다. 이를 움직일 수 없는 중심에 놓고 적대적 긴장이 증폭되고 있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는 노력이 유엔에 맡겨진 임무이다. 사무총장으로서 공식 업무도 집행하기 전에 대북 제재 강화론을 내세우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자의 발언과 태도는 그런 점에서 사려 깊지 않다.

햇볕정책, 포용정책은 남북관계에 집중한 정책이고, 북한과 미국 간의 적대적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기능이 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서로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지, 역할의 차이를 한계로 부각시켜 폐기될 정책이 아니다. 햇볕정책 포기론은 위험한 발상이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확보하는 것은, 민족 내부의 대화통로가 상실되지 않고 대외적 관계에서 평화외교를 추진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의 손에서 떠나 강대국 정치의 계산속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재차 강조하건대, 북한의 핵무장이 북한과 미국 간의 적대적 관계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양자간의 적대적 상황이 핵문제를 낳고 있는지 그 전후 상황을 잘 짚어서 해결의 기조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이 최근에 펴낸 자서전에서 네오콘은 북한의 붕괴를 기도하고 있다는 증언은 주목할 발언이다. 이러한 자세를 미국의 부시정권이 지니고 있는 한, 동북아시아 평화체제 확보는 매우 어렵다.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기에 빠뜨릴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북한의 좀더 유연한 대응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무엇보다도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절실한 과제이다.

외교, 우리의 생명선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근본 배경에 미국의 대북 정책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미 외교정책은 정세의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펼쳐져나가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의 현실은, 다만 북한과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에 펼쳐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잠재적 대결상태와 관련된 전략적 과정의 산물이자 일본의 군사패권 야욕과 직결되어 있다. 미국이 꾸준히 실현하고자 하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도 북한의 희생을 기초로 관철하려는 패권전략이다. 전쟁체제의 강화에 다름이 아니다. 미-일 동맹체제가 주도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무장력 강화를 최대한 억지할 수 있는 군축논의가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실험 수준에 있는 북한의 무장력과 미-일 동맹의 무장력은 그 비교 자체가 비이성적이다.

따라서 이 시점은 실로, 우리 민족이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의 주체자로서 나설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도 강대국 정치의 희생물이 되어버릴 것인지가 결정되는 국면이다.

대북 제재 일변도의 인식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이 강대국 정치의 패권적 질서에 묶이지 않고 우리민족이 평화롭게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렇지 못하면, 우린 강대국 패권정치의 거대한 폭풍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북한과 우리는 따로 떨어진 운명이 결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교는 이제 우리에게 생명선이 되고 있다. 모든 역량이 총집중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외교에도 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쟁으로 가는 외교가 있고 전쟁의 조건을 해체하는 외교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외교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매순간 명백히 점검하고 방향을 바로 잡아나갈 일이다. 역사는 불가피한 경로가 아니다. 선택은 언제나 새롭게 열려 있다.

*이 글은 18일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하는 북한 핵실험 관련 토론회 발제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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