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페론,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혁명 실패 예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페론,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혁명 실패 예견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97> 체 게바라와 페론 <상>

평소 반(反)페론주의자로 알려졌던 체 게바라가 사실은 열렬한 페론주의자였으며, 페론 역시 체 게바라의 혁명사상을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페론은 스페인 망명지에서 체의 방문을 받고 체의 볼리비아행을 극구 만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페론은 체가 선천적으로 기관지천식을 앓고 있는 환자임을 지적하면서 고산지대에서 게릴라작전 수행은커녕 숨쉬기도 어려울 거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군 작전 전문가로서 체의 볼리비아혁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볼리비아행을 만류했던 것이다.

이는 최근 필자가 페론당 관계자들의 증언, 체의 죽음을 애도한 페론의 공식서한과 체의 죽음을 추모하는 편지, 망명지에서 페론을 보좌했던 인사들이 남긴 기록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필자는 페론과 체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페론에 관한 가능한 한 모든 자료들의 열람을 몇 개월 전 아르헨티나 관계기관들에 요구했었다. 그러나 좋게 말하면 아르헨 사람들의 여유로움이고 나쁘게 평하면 바쁠 게 없는 이 나라 사람들의 느려터진 생활방식 때문에 자료확보가 다소 늦어졌다.

하지만 필자는 아르헨티나 공무원들이 자료 보전에 대해 철저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도 했다. 군사정권의 자료말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페론과 아르헨의 과거 기록들이 완벽하게 보관, 관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군정 당시의 실종,사망자 3만여 명에 대한 개인신상자료와 이들의 DNA까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사실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혁명 실패를 미리 예견한 페론의 주장과 그가 남긴 체에 대한 편지 내용 등을 2회에 걸쳐 재조명해 본다.
▲ 체 게바라(좌), 페론(우). ⓒ프레시안

페론 "체는 反페론주의자 아니었다"

우선 1967년 10월24일자로 돼 있는 체의 죽음에 대한 페론의 공식서한의 내용을 요약한다. 이 서한은 체의 사망소식을 접한 페론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군부의 눈을 피해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자들에게 보낸 것이다.

"나는 온 세계의 불의와 불행을 추방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을 해방하기 위해 투쟁하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웅인 우리의 형제 체를 잃게 되었다는 소식에 커다란 충격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는 말로 시작되는 페론의 서한은 "우리의 형제인 체는 제국주의의 탐욕스러운 지배욕을 분쇄하기 위해 투쟁했고 펜타곤(미 국방부)에 의해 세워진 괴뢰군부와 과두정치 세력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에 대항해 투쟁을 벌였다"는 평가를 담고 있다.

페론은 이어 "오늘날 그의 투쟁은 끝이 났지만 라틴아메리카에 끼친 그의 혁명 사상과 저항정신, 특별히 젊은 그의 이미지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다"면서 "혁명군 사령관 어르네스또 게바라는 우리의 일부였고 어떤 면에서 그는 나의 최상의 친구였다"고 밝혔다.

페론은 이 서한에서 체가 '반(反)페론주의자였다'는 일반적인 여론에 대해 "이는 황당한 헛소문"이라고 일축하고 "군부가 퍼뜨린 루머"라고 반박했다. 물론 한때 체가 군부 쿠데타에 반대했고 자신에 대해 미국의 괴뢰정부라는 오해를 한 건 사실이지만 나중에 체는 페론주의에 대해 깊은 관심과 성원을 보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체는 소외계층과 원주민 보호에 앞장서는 페론주의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고, 자신이 주도했던 무장혁명과 방법에 차이는 있었으나 기존사회제도를 바꾸려는 혁명임에는 분명하다며 의기투합했던 사실도 있다는 것이다.

체의 혁명사상에 대해 페론은 "나는 투쟁을 수반하지 않고 구호만 앞세운 혁명은 쓸모 없는 이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며 "혁명은 조직을 갖춘 행동(투쟁)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 체의 무장혁명을 지지하기도 했다.

체가 볼리비아에서 실패한 원인에 대해서는 "무장혁명은 전술 및 전략 프로그램을 현지실정에 맞게 실행하도록 하는 완벽한 준비와 민중들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했다" 면서 "체가 이 부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페론은 또 페론주의의 전통은 일반대중들의 이상이 뭉친 투쟁이자 전국적인 운동이라며 아르헨 페론주의자들의 저항정신을 부추기고 "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무기를 움켜쥐고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체의 무장혁명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서한의 끝을 맺고 있다.

체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혁명사상을 높이 평가한 페론의 이 편지는 페론주의자들이 서슬이 시퍼렇던 군부에 맞서 페론 복권을 외치며 단결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 이 운동이 아르헨 전국으로 확대되어 페론이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아르헨으로 돌아와 정치적으로 재기하게 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망명중인 페론을 비밀리에 방문한 체 게바라

지난 1966년도 중반 어느 일요일 오후 스페인 마드리드 외각 '뿌에르따 데 이에로' 지역에 망명 중이던 페론의 거주지 문 앞에는 신부 복장을 하고 테 없는 안경을 쓴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조용히 주위를 살피면서 후안 도밍고 페론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한참 후 이 낯선 방문객을 맞이한 페론은 "내가 페론이요. 그런데 당신은…" 이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찾아온 신부 복장의 이 사내는 바로 그 유명한 어르네스또 체 게바라였기 때문이었다.

쿠바혁명 성공 이후 아프리카 콩고로 떠난 체는 9개월간 콩고에 머물다 콩고혁명이 여의치 않자 볼리비아 혁명을 계획하고 남미로 향하기 바로 직전 이 지역의 군사, 정치계의 거물이었던 페론을 만나 볼리비아 상황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들로부터 지명수배를 받고 있어 자신의 신분을 철저하게 숨겨야만 했던 것이다.

체는 전문가 뺨치는 사진작가였고 그는 이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해 아프리카와 유럽, 중남미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페론을 만난 체는 페론으로부터 볼리비아의 군사정보와 정치상황 등 게릴라전에 필요한 사전지식을 습득했던 것이다. 페론은 체가 요구한 군사지식들을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해주고 마지막에 그의 볼리비아 행을 무모한 도전이라고 극구 반대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페론은 체가 천식환자임을 들어 고산지대인 볼리비아가 지역별로 해발 몇 미터인가를 일일이 예로 들면서, 자신이 볼리비아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산소부족 현상을 설명하고 "당신은 거기에서 투쟁은커녕 운신하기에도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론은 이 자리에서 마치 군 지휘관이 초급장교를 교육시키는 것처럼 체에게 볼리비아 군사정보와 지형지물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의사인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 거기에서 당신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것"이라면서 "고산지대에서 오는 무기력증은 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작전을 구사해야 하는 기동력이 생명인 게릴라 전에서는 치명적이 될 것"이라고 주장, 체의 볼리비아 행은 포기돼야 한다고 설득했던 것이다.

또한 페론은 "볼리비아의 고산지대는 인적도 드물어 게릴라작전 중 부대를 위장하거나 당신의 한 몸도 숨기기 힘들 것"이라면서 "볼리비아는 쿠바와는 다르게 지역 토착민들로부터 도움도 크게 기대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외지인들에게 배타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리비아 토착민들의 지원을 기대한 게릴라전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체는 페론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 해 우루과이를 거쳐 볼리비아로 잠입했고 결과는 페론이 예견한대로 비참한 실패로 끝이 났다. 쿠바와 콩고 등지에서 신출 귀몰했던 체도 볼리비아의 고산지대에서는 산소부족에서 오는 무기력증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페론은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로 잠입한 뒤 체포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친 체의 죽음을 애도하는 편지 형식의 기고문을 1968년 8월 2일 쿠바정부의 기관지 <체 게바라>에 보내기도 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