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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와 '에바 페론'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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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와 '에바 페론'은 달랐다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93> 에비타의 이중적 삶

지난 1970년대 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뮤지컬 '에비타'가 이번에는 영국 런던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모양이다. 에비타의 고향이자 영국과 외교적으로 앙숙관계인 아르헨티나에서도 런던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에비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가 바라까스 지역(탱고와 극장식 식당이 집중돼 있는 지역) 출신의 뮤지컬배우가 주연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아르헨 현지에서 상당히 잘 알려진 뮤지컬배우 에레나 로저(31)는 이 뮤지컬의 주연배우를 노리고 편도 항공권 한 장만 달랑 소지한 채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보다 더 에비타 역을 잘 소화할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3년 전 앤드류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에 의해 뮤지컬 에비타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접한 엘레나는 무작정 런던으로 날아가 오랜 기간 동안 제작자들을 만나 에비타 역은 꼭 아르헨티나 출신인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53cm 정도의 단신에다 각종 핸디캡을 무릅쓰고도 세계적인 스타의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하지만 아르헨 국민들은 그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에선 그의 아버지가 열렬한 페론주의자라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왜 하필이면 영국이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내고 있는 분위기다.
▲ 무작정 런던으로 날아간 엘레나 로저가 뮤지컬 '에비타'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었다. ⓒ <엘레나 로저>(아르헨)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오(No llores por mi, Argentina)'로 더 유명한 '에비타'에 얽힌 진정한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 6월 필자가 페론과 에비타에 대한 감추어진 진실을 취재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페론당(PJ,Bonaerense) 관계자들에게 '왜 사람들이 에바를 '에비타'라고 부르게 됐나'와 '에비타'가 가진 이중적인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 문의했던 자료를 최근에야 입수해 이를 다시 정리해본다.

지난 1950년대 초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통령 영부인으로 유럽 사교계를 이끌며 전세계 상류층의 유행을 주도해 귀부인의 상징이 되었던 에바 페론은 역설적이게도 헐벗고 소외 받은 극빈자들과 노동자들의 희망이기도 했다.

이런 에바의 이중적인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비타' 라는 애칭이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게 '페론당'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아직까지도 전세계 뮤지컬의 타이틀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에비타(Evita. '작은 에바' 혹은 '귀여운 에바'라는 의미)'는 에바가 어린 시절 가족들과 이웃사람들에 의해 불려진 애칭이었다. 다시 말해 '에비타'는 가난에 쪼들리며 살았던 어린 시절 에바의 눈물겨운 모습과, 친절했던 이웃들이 잊을 수 없는 그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이름이었던 것이다.

벽촌의 농장지대에서 궁핍하게 성장했던 어린 에바(에비타)가 장성하고 인기인으로 변신해 급기야는 대통령의 부인이 되어 서민들의 보호자임을 자처하고 나서자,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서 '에비타'는 밑바닥 인생에서 대통령 영부인이 된 신데렐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에바. ⓒ 김영길

하지만 에비타는 상류층이나 영부인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떠나 누구나가 쉽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가난한 서민의 딸이라는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에바 페론 스스로도 '에비타'는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격식에서 벗어나 소외계층들과 함께 고통을 나눈 존재요, 청소년들에게는 어머니, 노동자들에게는 동료, 미혼모들에게는 언니나 동생 같은 친숙한 존재를 의미했다고 자서전 '내 삶의 존재 이유'에서 밝혔다.

'에비타는 귀족이 아닌 극빈자들의 상징'

에바는 평소 고위급 공무원들이나 외교사절들이 자신을 향해 '대통령 영부인님'이라든가 '페론 여사님' 등의 호칭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 거부반응이 일어난다고 자신의 측근들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 대통령 영부인으로써 그 역할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면서, 세계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그에 걸맞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에바가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에바는 대통령 영부인의 역할은 에바 페론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이런 역할을 떠난 개인적 구호사업은 '에비타'라는 이름을 가진 한 개인의 봉사활동이라는 걸 강조했다. 에바 스스로 대통령 영부인과 극빈 서민의 딸 에비타로 구분해 살아간 자신의 이중적인 생활을 인정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영부인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에 걸맞은 활동을 하다 보니 유럽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세계 유행을 주도해 귀부인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페론 대통령을 만나기 전부터 심혈을 기울였던, 소외 받는 서민들을 구제하는 사업의 상징이 된 '에비타'의 역할은 에바 페론과는 달랐다"는 게 부에노스아이레스 페론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에비타'로 불리며 극빈자들의 우상이 된 에바가 지난 1946년 페론의 대통령 당선으로 영부인이 되자 현지 유력 언론사의 한 기자가 에바를 향해 "영부인과 에비타라는 두 가지 이름 중 어떤 호칭을 붙이는 게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에바는 주저 없이 "이 땅의 모든 서민들이 즐겨 부르는 '에비타'라고 써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에바는 또 "사람들이 나를 향해 에비타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어렸을 때의 빈곤했던 생활을 떠올리며 서민들을 챙기며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것이 아르헨티나 서민들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전설처럼 떠돈 '에비타'라는 애칭이 널리 알려지게 된 동기다.
▲ 원주민 거주지를 방문한 '에비타'로서의 에바. ⓒ 김영길

페론재단 관계자들의 자료에 따르면 에바는 "거리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나를 향해 '에비타'라고 외쳤을 때 나는 아르헨티나 거리 청소년들의 어머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됐고, 노동자들이 나를 '에비타'라고 부르면 나는 그들과 똑같은 동료의식을 느끼게 된다"면서 "소외받은 여성들이 나를 향해 '에비타'라고 부를 땐 나는 그들의 언니이자 동생이 되며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누리는 가족이 된 느낌을 받는다"고 회고했다.

결론적으로 '에비타'의 의미는 누군가의 도움과 이웃의 사랑이 필요한 '가난한 자들의 상징'이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겐 그가 대통령 영부인으로서의 에바 페론이 아닌 가난한 소녀 '에비타'로 아직까지 기억이 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아르헨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유럽 상류층의 유행을 이끌며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에바 페론에게 정치적인 야망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에바는 자서전에 "사람은 누구나가 개인적인 야망이 있게 마련인데 나에게는 대통령 영부인이나 정치가가 아닌 가난한 '에비타'로 아르헨티나 역사에 기록되는 게 유일한 야망이자 꿈"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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