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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떨고 있는 베네수엘라 유대교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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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떨고 있는 베네수엘라 유대교민들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89> 베네수엘라에 부는 반유대인 정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한 레바논 폭격 이후 베네수엘라 거주 유대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외교단절 선언에 이어 "유대인들은 히틀러를 비난하지만 레바논에서 그들은 히틀러와 똑같은 학살을 자행했다"고 비난의 톤을 높이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지지자들이 대대적인 유대인 추방운동을 벌일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차베스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이자 카라카스의 '차베스 주의자(Chavistas)'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유대인들은 살인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유대인들은 꺼져라"라는 등의 문구가 든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의 나치계 인사들의 망명을 대거 받아들인 칠레나 아르헨티나와는 다르게 베네수엘라 거주 유대인들은 독일계 이민자들과의 마찰 없이 비교적 편안하게 생업을 유지해 왔고 대다수가 상류층으로 분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은 지금까지 베네수엘라의 정·재계와 언론계를 주름잡으며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 왔다.

그러나 최근 차베스 대통령이 반미기치를 한층 더 높이 처들고 아랍계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하면서부터 이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이 이란과 관계증진을 노리면서부터 베네수엘라 유대인사회가 정부의 눈치를 살피게 된 것이다.

'입지가 불안해진 베네수엘라 내의 유대인 사회'

베네수엘라 거주 유대인들은 "이제는 카라카스 시내에서 드러내놓고 우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말하기가 두렵다"고 하소연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이전의 대부분의 친미파 정부들은 이스라엘 및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정책에서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차베스 대통령에 의해 그 균형이 무너지고 오히려 친 아랍계로 돌아서면서 베네수엘라 내의 유대인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차베스의 이런 반(反)이스라엘적인 행보는 친미파 대기업들과 이들이 운영하고 있는 반차베스계 보수언론사들을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현지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지금까지는 이들로부터 대책 없이 당해 왔지만 차제에 확실하게 버릇을 고쳐 놓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베네수엘라 내 유대인협회 창립기념식(왼쪽), 카라카스에 설립된 유대인회관 입구(오른쪽) ⓒ베네수엘라 유대인협회

이는 차베스가 작심하고 내정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도 있다. 이제는 미국이나 자국 내 유대계 기업들, 보수언론들의 눈치를 볼 것 없이 확실하게 길을 들여 국정을 장악하려는 포석의 일환이라는 얘기다.

베네수엘라 내의 유대인 사회는 이런 차베스를 향해 "베네수엘라의 극빈자들 입장만을 대변하는 '포퓰리즘'적인 발상"이라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해서 전세계 유대인연합회에 이 사실을 알려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내의 유대인들은 최근의 레바논 사태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측 입장을 적극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차베스가 조국인 이스라엘을 히틀러와 비교하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을 향한 차베스의 반격'

차베스가 쿠데타 실패 후 사면 복권되어 우여곡절 끝에 대권을 장악한 후에 이어진 역쿠데타, 계속되는 베네수엘라 내의 언론 재벌들과 부유층 등 친미세력이 주도한 차베스의 불신임 투표 등 유대인들과 차베스의 악연은 상당히 그 뿌리가 깊다.

유럽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베네수엘라에 눈을 돌린 건 지난 17세기 중반. 당시에는 단순한 무역을 위해 베네수엘라를 왕래하던 미국과 유럽 거주 유대인들은 지난 19세기 시몬 볼리바르 장군이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중남미 해방운동을 벌이자 군수품 조달을 맡아 왔고 혁명군을 물심 양면으로 지원했다.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중미를 해방시킨 볼리바르 장군이 중남미 전역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자 유럽의 유대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대거 베네수엘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베네수엘라에 뿌리를 내린 유럽계 유대인들은 지난 1920년 '재 베네수엘라 유대인협회'를 결성하고 미국의 유대인 단체들과 연계해 사업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나갔다. 그 후 베네수엘라에서 확실하게 터를 잡은 유대인들은 1943년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정책을 펼치자 독일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대거 카라카스로 불러들여 현재는 3만5000여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베네수엘라 상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상황까지 된 것이다.

차베스가 가장 존경하는 시몬 볼리바르 장군에 의해 베네수엘라에 뿌리를 내린 유대인들이 이제는 차베스 지지자들에 의해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로 얘기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 보수언론들과 재계를 장악한 유대인들을 향한 차베스의 공격 수위가 어디까지 미칠지, 그리고 미국을 등에 업은 전세계 유대인 단체들의 반격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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