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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애감정…그 내면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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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애감정…그 내면이 궁금하다면

<화제의 책> '작가들의 연애편지'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연애도 잘 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넘기다가 가장 먼저 눈이 머문 곳은 소설가 마광수의 편지다. "야한 여자가 좋다"고 외치다가 구치소까지 들어갔던 작가이니 연애도 '진하게'하고, 편지도 '야하게' 쓰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얄팍한 추정은 그가 "물밀 듯 고독감이 밀려왔다"며 운을 떼는 서먹서먹함 앞에 무너졌다. 오히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화면 속에 나타나는 것은 온통 너의 얼굴 뿐"이란 고백이 풋풋했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언제나 이쪽만 억울하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란 투정은 앳되기까지 했다.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내놓은 해에 이 책에 실린 연애편지를 썼다. 대중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불혹의 작가도 '그 사람' 앞에서는 쓴 편지를 띄우지도 못하도록 수줍게 하는 것이 연애감정인가보다.

김훈의 연애편지에는 '소설가 김훈'이 고스란히 담겨진 듯하다. 김훈의 마음은 상대의 '정맥'에 대한 집요한 묘사에 담겨지고 "가깝고도 멀었으며 절박하고도 먼" 너와 나의 거리 역시 '정맥'을 따라 관능적으로 묘사된다.

"겨드랑 밑에서부터 당신의 정맥은 당신의 몸속의 먼 곳을 향했고, 그 정맥의 저쪽은 깊어서 보이지 않았다. 당신의 정맥이 숨어드는 죽지 밑에 당신의 겨드랑이 살은 접히고 포개져서 작은 골을 이루고 있었다. 당신이 찻잔을 잡느라고, 책갈피를 넘기느라고,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느라고, 자동차 스틱 기어를 당기느라고 또는 웃는 입을 가리느라고 팔을 움직일 때마다 당신의 겨드랑이 골은 열리고 또 닫혀서 때때로 그 안쪽이 들여다보일 듯했지만, 그 어두운 골 안쪽으로 당신의 살 속을 파고 들어간 정맥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고 사라진 정맥의 뒷소식은 아득히 먼 나라의 풍문처럼 희미해서 닿을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아내 서영은이 '동리·목월 문학관에도 차마 내놓지 못하고 간직해 왔던' 김동리 선생의 편지는 <장편소설 '연애편지'>란 제목처럼 6부로 나눠진 소설 형식이다.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한 '문단의 반향'까지 지어내 붙인, 장난기 어린 편지다. 읽고나면 한 여자에게 순정을 다한 '식'과 놓친 사랑을 그리워하는 '영', 두 주인공 중 누구에게 작가의 마음이 실렸을까가 한 없이 궁금해지는 편지기도 하다.

"황홀한 순간을 맞은 작가의 영혼이 잣은 텍스트"
▲ 작가들의 연애편지(김다은 엮음, 생각의 나무). ⓒ 프레시안

이 책엔 이렇게 '읽기 즐거운 편지' 총 27편이 엮여 있다. 소설가 김다은의 기획으로 2003년 1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월간 <넥스트>에 게재된 25통에 '자진해서 제출한' 김훈과 김동리의 편지가 더해졌다.

엮은이 후기에서 김다은은 사적인 편지가 '작품'으로 여겨지는 유럽과 달리 한국 작가들의 편지는 공개되지 않고 문학 텍스트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역사에서 찾았다.

편지는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가장 무서운 무기인 바, 일제 강점기에는 자유롭게 쓰고 보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고 한국전쟁과 독재시절을 거치면서는 개인의 기록이나 역사의 진실을 대변하는 편지가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함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가의 연애편지는 새로운 문학 장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먼저 근대화 과정을 거친 유럽과 일본은 편지가 지닌 주체성과 문학성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는 범람하는 통신기구에 대항해서 작가의 편지가 문학을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편지와 문학의 경계에 대한 까다로운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작가의 편지를 읽는 효용에 대한 엮은이의 정의는 명쾌하다.

"이 책은 작가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최소한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주고, 가장 황홀한 순간을 맞이한 작가의 영혼이 잣은 문학 텍스트를 접하게 해주고,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연애편지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삼중의 기쁨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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