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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 언론은 메구미에게만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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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일본 언론은 메구미에게만 열광하는가

<해외시각> "'더 많은 죽음'은 외면하면서…"

1977년 일본 니가타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여중생 요코타 메구미의 행방은 일본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사건이 발생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난 2002년 10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한 뒤 일본 언론의 단골메뉴가 됐다. 특히 유족에게 보내준 메구미의 유골이 일본측 조사에 의해 가짜로 판명되고(그러나 이 조사 결과는 아직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지 못한 상태이며 북한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남한에서 납치된 김영남이 메구미의 남편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들어 매체의 주목도는 더욱 높아진 듯하다.
  
  이처럼 메구미에 열광하는 일본 언론에 대해, 일본을 연구해 온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멕닐은 7일 <재팬 포커스 www.Japanfocus.org> 기고를 통해 "지난 5년간 이 '납치극'에 대한 사안이라면 털끝 하나도 놓치지 않고 대중에게 알려 온 일본의 텔레비전과 신문은 마치 강박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선택적 고통: 현대 일본과 미디어의 강박증(Selective Pain: Contemporary Japan and Media Obsession)'이란 제목의 이 글에서 "메구미 사건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쏟는 언론들이 흡연, 노인문제, 원자력 발전소 등 더 많은 인명 손실을 낳고 있고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다른 사회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메구미 납치의 경우 사건이 한반도와 일본, 넓게는 미국까지를 배경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이목을 사로잡는데 반해, 다른 사회 문제들은 광고주들의 압력에 부딪쳐야 하는 번거로움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낮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이 글의 전문이다.
  
  선택적 고통 : 현대 일본과 미디어의 강박증
  
  요코다 시게루 부부의 주름진 얼굴에는 가족을 잃어버린 비극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어린 자식을 잃어버리는 일은 세상의 여느 부모들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공포일 테지만, 이들 부부는 자신의 딸 메구미가 1977년 발생한 갑작스런 사고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며 여러 해를 살아 왔다. 요코다 부부는 자신의 딸이 북한 간첩에 의해 납치됐다고 믿고 있을 뿐, 지금까지 그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
  
  요코다 부부가 그동안 겪었던 고통의 무게를 가늠해 보자면, 그들이 메구미를 구해내겠다며 감행했던 여러 가지 어리석은 선택들을 용서하게 만든다. 그들은 희생자를 구하기보다는 평양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데 힘을 쏟는 신민족주의자들의 무리에 편승하기도 했고, 납치와 고문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도움을 구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뭐 이런 것들은 다 딸을 구하기 위한 일이었다고 칠 수 있다. 그런데 언론들은 왜 그랬을까? 지난 5년간 일본의 텔레비전과 신문은 강박증에라도 걸린 양, 이 '납치극'에 대한 사안이라면 털끝 하나도 놓치지 않고 대중에게 알려 왔다.
  
  이 납치사건에 군대가 개입돼 있고 적어도 8명의 일본 민간인이 희생된 간첩 사건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이가 없다. 끔찍한 범죄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이 납치 사건만큼 중요하고, 어쩌면 더 절박할 수 있는 문제들에도 언론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게다가 이 납치사건에 대한 일본 언론의 끈질긴 보도 때문에 한반도를 유린한 데 대한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의 역사적 책임 따위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들은 덮여 넘어간 측면도 있다.
  
  사실 언론의 주목을 받을 가치로 따지자면 메구미 납치사건보다 훨씬 중요한 주제들은 널려 있다.
  
  요코타 메구미 487 : 흡연자 24
  
  '일본금연운동본부'에 따르면 일본에서 매년 10만 명이 담배 때문에 죽는다. 유명한 골초였던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도 담배 때문에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60만개의 담배 자판기가 하루에 판매하는 담배는 3억6천 개비로 추산된다. 일본은 담배 가격이 선진국 중에서 가장 싼 나라다. 담배를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미성년이다.
  
  대장성에 따르면 일본 담배 시장의 3분의 2는 세계의 유력 담배회사들의 차지라고 한다. 그리고 일본 담배 광고시장이 연간 40억 달러 규모라는 사실은 '왜 언론들은 값비싼 담배가 우리의 폐를 갉아먹는 현실에 대해 꽁무니를 빼는가'하는 의문점을 쉽게 해소해 준다.
  
  2001년부터 <아사히 신문>에는 '요코타 메구미'가 487번 언급됐다. 같은 기간, 같은 신문에 '흡연자'와 '암'이란 단어는 24번 언급됐다.
  
  요코타 메구미 1128 : 자살자 40
  
  
자살은 아마 고통을 받고 있는 현대 일본사회의 정체성을 가장 기발하게 표현해 내는 방식이다.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고 가장 안전하다고 꼽히는 나라에서 매일 94명이 제 목숨을 끊는다. 아시아 전체에 금융위기가 닥쳤던 97년 이후 일본의 자살자는 25만 명에 이르는데 전문가들은 실제보다 수치가 낮게 잡혔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상담구조전화 '이노치 노 덴와'의 창립자 사이토 유키오 씨는 "실제 자살자는 하루에 110명에서 120명 가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국이 유행처럼 번지는 자살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3배나 많은데 일본 정부가 교통안전에 쏟는 예산이 자살 예방에 쏟는 예산의 1700배가 넘는다. 자살방지를 시민단체의 대표인 스기모토 나오코 씨는 "보건국은 자살은 개인의 문제지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며 "그래서 우리 같은 작은 단체들이 나설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요미우리 신문>에는 '요코타 메구미'가 1128번 언급됐다. 같은 기간, 같은 신문에 '자살'과 '예방'이란 단어는 40번도 채 언급되지 못했다.
  
  요코타 메구미 346 : 핵 사고 16
  
  일본은 전 세계에서 핵 산업이 가장 급성장하고 있는 나라로 꼽힌다. 현재 55개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고 11개가 건설 예정돼 있다. 원자력은 일본이 필요로 하는 전력량의 3분의 1을 제공하고 있다. 교토 의정서의 내용을 지키기 위해서 석유 의존도를 좀 더 줄여야 하는 일본 정부는 원자력 의존 비율을 4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지진이 빈발하고 지형이 불안정한 나라인 일본이 이렇게 많은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은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원자로가 두 개 설치된 하마오카 발전소의 경우 도쿄에서 90마일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땅이 한 번만 크게 흔들려도 방사능에 오염된 먼지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심으로 쏟아져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히로시마는 플루토늄 단 5 킬로그램에 만신창이가 됐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45톤의 플루토늄이 쌓여 있다. 아직 정부가 플루토늄 사용법을 거론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시민 핵물질 정보 센터'의 반 히데유키씨는 "언론에서 이 문제를 잘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일본이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한다.
  
  2001년부터 전국 방송인 <NHK>에는 '요코타 메구미'가 346번 언급됐다. 같은 기간, 같은 방송에 '하마오키'와 '핵 사고'란 단어는 16번 언급됐다.
  
  요코타 메구미 187 : 교통사고 8
  
  자동차 산업은 일본 최대의 광고주다. 자동차 광고 시장은 일년에 10억 달러 규모지만 자동차 산업은 북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매년 2500명의 보행자가 교통사고로 죽고 8만 명이 다친다. 교통안전과 희생자 보조를 담당하는 전국 협회에서는 일본의 거리에서 사고를 당하는 인구가 매년 100만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던 교통사고 급증세가 이제는 한풀 꺾였다곤 하지만, 성인 사상자가 여전히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인 교통사고가 잦은 데에는 일본 보도가 도로에 비해 턱없이 적은 탓도 있다. 그렇지만 한 해에 승용차가 450만 대 팔리는 이 좁은 섬나라에서 어디다 도로를 더 지을 것인지 묘안을 궁리하는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일본경제신문사가 만든 <니케이넷>에서는 2001년부터 '요코타 메구미'가 187번 언급됐다. 같은 기간, 같은 매체에 '교통사고'란 단어는 8번 언급됐다.
  
  요코타 메구미 1086 : 노인 사망 20
  
  일본은 65세 인구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그리고 이미 복지 체계의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 900만 노인이 연금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한 달에 4만 엔 남짓을 받고 있어 그 생활이라니 겨우 연명을 해 나가는 수준이다. 노년층의 가난과 부양의 문제가 심각하지만 전문적인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이러한 상황은 노인 자살과 요절, 그리고 범죄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일본의 65세 이상 수감자의 비중은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65세 이상이 전체 수감자의 10%가 넘는다. 일본은 선진국 중 65세 이상 수감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노인 자살자의 급증은 한 때 노인 공경으로 유명했던 사회의 추한 자화상으로 남을 것이다.
  
  2001년부터 <산케이 신문>에서는 '요코타 메구미'가 1086번 언급됐다. 같은 기간, 같은 신문에 '가난'과 '요절'이란 단어는 20번도 채 언급되지 못했다.
  
  쓰레기 소각으로 이한 다이옥신의 발생, 무자격자의 의료 행위 등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 짧은 목록에 자신들이 심각하게 여기는 사회 현상들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각 지방마다 토착세력으로 남아 있는 야쿠자들의 폭력이나 확성기가 달린 트럭을 몰면서 평양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외쳐대는 극우세력들(ultra-nationalists)은 일본인들에게 훨씬 많은 피해를 끼친다. 정치권력과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닿은 큰 매체들이 막가파에다가 부도 지경인 외국의 독재정권을 다루기보다 이런 국내 문제들이 관심을 쏟아주길 기대해 본다.
  
  (번역= 이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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