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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 이어 레바논서도 美ㆍ佛 삐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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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 이어 레바논서도 美ㆍ佛 삐긋

'염불보다는 잿밥에'…당사자 레바논의 고통은 외면

레바논 무력사태를 중재하기 위한 유엔의 결의안 채택이 늦어지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주도 하에 마련된 당초 결의안에 대해 당사자인 레바논은 물론 아랍연맹까지도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과 아랍국가들은 결의안에 모든 교전행위의 중단 및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철수 조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ㆍ불 주도의 결의안에는 이스라엘군의 철수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모든 군사행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반면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군사행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당연히 자신들의 행동은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는 이같은 레바논 및 아랍측의 반발을 고려해 새로운 결의안 마련에 들어갔으나 아랍측의 요구사항이 제대로 반영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미 레바논 영내에 지상군 1만 명을 투입한 이스라엘은 현재 추가 병력 투입을 고려하고 있어 이번 주말 안에 결의안 채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고 <BBC> <로이터> 등 서방언론은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무력충돌이 시작된 지 한 달이 가까워오는 데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레바논 등 아랍측의 입장을 거의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의안 작성과정에 아랍측은 아예 참여조차 하지 못했다. 프랑스가 참여한 것은 과거 레바논의 식민 모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서방측 주도로 사태해결을 모색하면서도 미국과 프랑스 간에는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린 물밑 신경전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분쟁 포럼'의 공동대표로 있는 마크 페리와 알라스테이어 크루크는 지난 8일 홍콩의 인터넷 매체 <아시아타임스 (http://www.atimes.com)>에 공동 기고한 글을 통해 당초 결의안 작성과정에서 평화유지를 위한 다국적군의 배치와 휴전의 선후관계를 두고 미국과 프랑스가 심각하게 대립했다면서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싸우고 있지만 유엔에서는 미국과 프랑스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지난 2003년 이라크전 개전 당시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간의 갈등이 재연됐다는 얘기다.
  
  美 "다국적군 배치 먼저"… 佛 "휴전 먼저"
  
  
미국은 레바논 사태 중재를 위한 유엔 결의안에 △이스라엘 병사의 석방 △레바논 북부에 유엔 평화유지군 배치 △헤즈볼라의 무장해제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지만, 이스라엘의 교전 중단을 요구하는 조항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는 '즉각적인 휴전 요구'를 결의안의 핵심이라 여긴다.
  
  이에 마크 페리와 알라스테이어 크루크는 "휴전 선언에 앞서 레바논에 프랑스가 이끄는 다국적군을 배치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프랑스가 듣기엔 한 마디로 '웃기는 소리'"라고 평가했다. 휴전도 성립되지 않은 마당에 어떻게 자국 병사를 파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 역시 프랑스의 반대를 이해할 수 없어 하는 분위기다. CIA 출신 한 고위관리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의 자세에 깜짝 놀라면서 '헤즈볼라는 테러 단체인데 어떻게 미국에 반대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으로서는 다국적군에 의해서든 이스라엘군에 의해서든 헤즈볼라의 제거가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입장차가 확연한 만큼 절충 또한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볼튼 미 유엔 대사는 이라크전 개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을 '늙은 유럽'이라고 비판했던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본받아 휴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프랑스의 입장을 '구식'이라고 비아냥댔고, 이에 사빌레 프랑스 유엔대사는 격분하며 레바논 사태와 관련한 미국과의 논의를 중단하겠다고 맞서기도 했다.
  
  마크 페리와 알라스테이어 크루크는 "양국간의 대결 구도에서 미국에 대한 프랑스의 뿌리 깊은 '적의(敵意)'를 엿볼 수 있다"며 "프랑스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박멸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니 레바논 사태는 그저 두고 보면 된다는 식의 미국의 태도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핀란드의 한 외교관 미국과 프랑스의 입장차에 대해 "미국 정치인들이 유대인 표에 민감하다면 유럽에서는 무슬림들의 표를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헤즈볼라 "유엔 결의안은 프랑스 굴복의 상징"
  
  
미국과 프랑스가 만들어낸 결의안 초안도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다국적군 배치와 프랑스가 요구하는 휴전 요구를 교묘하게 빠져나가 '적대행위 완전 중단'이란 문구를 만들었을 뿐, 정작 정치적으로 까다로운 문제들은 논의 대상에 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 대변인은 아예 결의안 초안을 두고 "객사했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에 굴복했다. 우리는 무장해제를 강요받았다. 우리가 무장해제 하는 대신 미국은 텔아비브 공항에 군수품을 보따리 채 실어 나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는 뻔한 것 아니냐"며 이스라엘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초안에 강하게 반발했다.
  
  아랍 연맹 수장인 아무르 모우사는 이 초안을 두고 "뜬금없는 서류"라고 표현해, 미국과 프랑스가 알력을 빚는 동안 정작 아랍 국가들은 논의 구조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실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 초안을 "미국과 유럽 간 협력의 상징"이라며 환영했지만 유럽 외교관들은 이 초안이 미국과 유럽 간의 깊은 균열을 드러내는 종잇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크 페리와 알라스테이어 크루크는 "일부 외교관들은 미국의 진짜 목표는 이스라엘의 장애물을 없애고 유럽으로 하여금 레바논 공격에 가담하도록 하려는 게 아니겠냐며 투덜거리고 있다"고 유럽의 불만을 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초안을 수정해 최종 결의안을 만들기 위해 미국과 프랑스는 싸울 채비를 하고 있다"며 "이번 레바논 사태가 미국과 유럽의 외교적 공조의 마지막 사례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레바논 사태로 인해 미국과 프랑스, 더 나아가 미국과 유럽 간의 균열이 깊어졌다고 판단하며, "미국은 곧 유럽과의 전략적 동맹이냐 아니면 이스라엘과의 우호적 관계냐를 두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선택해야 할 때를 맞을 테지만 미국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최근 중동 사태로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대서양 동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서양동맹이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라는 주장은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생명과 재산을 잃은 무수한 레바논인들을 간과한, 한마디로 서방중심의 지극히 오만한 생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8일 유엔 결의안을 논의하는 안보리 모임에 출석한 타레크 미트리 레바논 외무장관 대행은 "적대행위의 중단이란 곧 모든 교전행위의 중단이어야 한다"면서 교묘한 말장난으로 이스라엘의 무력행사를 용인하려는 미국의 위선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이어 "우리의 휴전 요구가 즉각 받아들여졌다면 900명 이상의 무고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300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8일 현재 레바논 993명, 이스라엘 10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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