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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미국-중남미 대결구도…한국엔 '강 건너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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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미국-중남미 대결구도…한국엔 '강 건너 불'?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72> 급속히 강화되는 남미공동시장

'자원보호 나서는 중남미 국가들'

지구촌 전체가 월드컵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6월과 7월초 '축구의 고장'인 중남미(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의 외교·통상관련 실무 장관들이 월드컵 축구 경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카라카스를 오가며 열띤 공방을 벌였다. 실무 장관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이들의 표정에는 사뭇 비장함까지 엿보였다. "중남미의 장래가 우리 손에 달렸다"는 책임감과 자부심 때문이었다.

"카라카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거대한 가스관공사 기공을 위한 실무자 모임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이들은 월드컵 관전도 마다할 만큼 중남미 전체 국가들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사를 논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본다.

지난 1991년 남미통합을 목표로 태동됐으나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남미공동시장(MERCOSUR)이 베네수엘라의 신규가입으로 몸통 불리기에 나서면서 칠레와 볼리비아의 적극적인 참여의지와 쿠바의 특별회원 영입, 멕시코의 참여의사 등으로 일대 변화를 맞고 있다.
▲ 지구촌을 달군 월드컵 열기도 마다한 체 남미공동시장 발전을 위해 열띤 토론을 벌인 MERCOSUR 통상관련 실무장관들. ⓒ아르헨 외무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남미를 향한 미국의 최근 군사전략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들은 미국의 중남미전략이 크게 테러 방지, 포퓰리즘 제거, 마약밀매 근절을 표면적인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남미의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자원과 수자원, 특수생물자원, 광물, 의약품 원자재 확보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결론 짓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따라서 중남미와 미국의 관계는 향후 각종 천연자원을 보호하겠다는 중남미 각국의 정부와 이의 확보를 노리는 미국의 첨예한 대결구도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국 차베스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남미공동시장을 매개로 남북의 대결구도로 이어질 거라는 얘기다.

지난 달 16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가에 위치한 아르헨 외무부 별관 산마르띤궁. 이곳에 모인 남미공동시장 실무장관회담 참가자들의 분위기는 예전의 모임들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러시아산 수호이30 및 수호이35 전투기의 대량구입과 AK-103 '칼라슈니코프'(Avtomat Kalashnikova) 자동소총 베네수엘라 현지생산 발표가 맞물려 있긴 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 정부의 F-16 전투기 금수조치에 맞서 베네수엘라 공군 주력기를 러시아산 수호이로 전면 교체하고 지상군의 개인화기도 벨기에산 FAL 자동소총에서 AK-103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베네수엘라를 향한 미국의 무기 금수조치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다. 차베스는 이어 지금까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남미공동시장에 비관적이었던 파라과이와 우루과이를 향해서도 에너지의 파격적인 거래조건을 내세우며 대폭적인 경제지원과 산업화 지원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남미공동시장 참여에 비관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던 볼리비아 정부도 최근 방향을 급선회 차베스의 중남미권 통합의지를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멕시코도 미국과의 FTA의 문제 인식하고 남미로 눈 돌려
▲ 에너지벨트를 활용 실질적으로 남미공동시장을 이끌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최근 인도된 러시아산 AK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

차베스가 이들 남미 국가들에 내세우는 경제발전 복안은 산업의 지역화다. 지역별 경제규모와 수준에 맞게 경제를 특화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최종적인 밑그림은 오는 8월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시에서 개최되는 남미공동시장 정상회담에서 구체화 될 것으로 보인다. 차베스의 의지대로 남미공동시장이 새판짜기에 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남미공동시장과 사사건건 충돌했던 멕시코마저 참여 의지를 보이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FTA가 당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 남미공동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멕시코는 미국정부가 주 방위군을 동원, 국경통제를 강화하고 2000마일에 달하는 국경에 장벽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게 알려지면서 국민여론이 악화되자 남미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이번 멕시코 대선에서 좌우를 떠나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미국과의 관계는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멕시코의 반발을 의식하면서도 국경통제를 강화하는 건 불법 밀입국자 단속보다는 마약밀매를 근절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멕시코 국경을 통해 밀반입되는 코카인의 규모가 연간 350톤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전세계 자금흐름에 영향을 미칠 만큼 거대한 마약거래 자금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미국으로 밀반입되는 마약의 90% 정도가 콜롬비아에서 제조되며 거래가격은 콜롬비아에서는 kg당 1500달러, 페루에서는 1100달러, 볼리비아에선 880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미에서는 이런 헐값(?)의 코카인이 일단 미국국경을 넘어서면 kg당 7만5000달러 이상을 호가하며 미국 국내에서는 12만 달러 이상으로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멕시코 국경을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막을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비롯한 대다수 남미정상들은 미국의 마약밀매근절 프로그램에 협조를 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중남미 국가 내에서의 미군 활동은 거부하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중남미 대다수 국가들의 의식구조 또한 중남미 자원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입장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최대의 국가전략으로 꼽고 있는 에너지자원 수급계획의 실질적 책임자인 딕 체니 부통령이 이끌고 있는 국가에너지정책개발그룹(NEPDG) 실무자들의 이마에 주름이 생기는 것은 에너지의 수급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미국은 최근 해외전략의 우선순위를 유럽이나 아시아보다는 중동과 중남미 중심으로 수정하는 등 에너지확보 전략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평가하고 "그러나 지금까지 중남미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 등의 금융기관들이 예전처럼 이 지역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미국의 딜레머"라고 진단했다.

또한 중남미 국가들은 세계 최대의 식수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브라질-아르헨티나-볼리비아 지역 보호에 나서야 하며 식수 역시 자원화는 물론 상품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이 분야에서도 미국 및 유럽 생수회사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남미공동시장의 흐름, 한국엔 '강 건너 불'?
▲ 남미공동시장이 극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단떼 시까 전 아르헨 상공부장관. ⓒ김영길

각종 전자제품과 자동차 등을 중남미에 수출하고 있는 한국도 남미공동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자그마치 1만2000km에 이르는 세계최대의 가스관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남미공동시장은 에너지벨트를 매개로 산업 전반에 걸쳐 일대 개혁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상공부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남미공동시장 아르헨티나측 자문역을 맡고 있는 단떼 시까 박사는 필자와의 대화에서 "차베스 주도로 남미공동시장이 획기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면서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지역간 교역물량과 산업의 불균형이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망했다.

시까 박사는 "향후 중국 등 아시아산 제품의 남미공동시장 수입은 상당한 제약을 받겠지만 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품목별로 상호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미공동시장 실무장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타결점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건 국가별로 특화 품목을 생산해 공동구매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차원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생산기술이 앞서 있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배기량과 차종 별로 중복생산을 피해 각각 다른 모델을 생산, 필요한 차종을 서로 물물교환 방식으로 교역한다는 얘기다.

또한 우루과이의 양모를 아르헨티나에서 수입, 직물과 스웨터를 생산해서 중남미 전역에 판매하고 파라과이의 특성을 살린 산업을 찾아 기술과 자금을 지원해주고 여기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다른 국가가 구매해주는 방식이다.

베네수엘라가 최근 군사용 개인화기 제조공장 설립을 결정하게 된 것도 역내 약소국가들의 군사현대화를 돕고 역내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제한 없이 수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남미공동시장이 외부세력에 의한 무분별한 자원개발을 억제하면서 역내산업을 보호하고 역내 국가들의 동반발전을 모색하는 일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전처럼 일방적인 판매시장으로서의 역할은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철저한 사전준비 없이 남미의 자원개발사업에 뛰어드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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