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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론주의'의 정체성을 회복하자"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71> 페론 주치의의 충격고백(10ㆍ끝)

'변질된 페론주의'

페론과 에비타가 꿈꿔 왔던 원주민들과 힘없는 서민들의 유토피아는 에비타의 단명과 페론의 죽음, 그리고 군부의 등장으로 1970년대 후반 막을 내렸다.

지난 1976년 정권을 잡은 군부는 '페론주의자'들을 말살하기 위해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순수한 '페론이즘'을 가진 정치지도자들이나 학생들, 각종 자원봉사단체를 이끌었던 민간지도자들은 대다수가 체포되어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따라서 군부가 물러나고 민정을 이양 받은 급진당(UCR) 정부에 맞선 노조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은 현재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 구축을 위해 '페론주의'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지 학계는 "지난 80년대 말 페론당의 간판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까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자신이 '페론이즘'의 정확한 의미나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혹평했다. '페론이즘'의 본질이 작금의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아르헨 노총(CGT)이 지도부의 주도권 다툼으로 사분오열되고 있는 사이에 아르헨 실업자연맹이 '페론주의'의 본류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들 역시 점점 정치 세력화되고 있으며 '고르도'(뚱보라는 말, 실업자들을 활용해 몇몇 지도자들만 제 배를 채운다 는 의미)화 되어가는 양상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이 '페론주의자' 임을 내세우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치하며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페론주의 정체성 찾기 운동' 벌이는 사람들
▲ '엘 헤네랄'에 모인 서방 외신기자들이 페론주의 실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아르헨 해군본부 공보실

아르헨 군부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된 '페론주의'가 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인 수단으로 변질되어 진정한 '페론주의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필자는 이번에 페론가의 숨겨진 진실을 취재하면서 뜻밖에 흥미로운 단체를 하나 알게 됐다.

이 단체는 지난 1945년부터 1955년까지 페론주의에 매료되어 각종 봉사 활동을 벌였던 학생들로 군사정부의 무차별적인 페론주의자 체포작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생존자들로 이뤄진 단체다.

이들은 왜곡되고 정치화된 '페론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당시 순수했던 열정을 가진 봉사단원들의 재결합을 추진하기 위해 '엘 헤네랄(El General, 페론 장군을 의미)이라는 식당 겸 카페를 열어 '순수한 페론주의자'들의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카페는 기본적으로 초기 페론주의자들의 결속을 다지는 만남의 장소이지만 페론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해서 그들이 수집해 놓은 각종 자료들을 열람하고 페론주의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할 수 있는 장소다.

'페론주의'가 '포퓰리즘'의 대명사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언론들과 남미전공학자들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하면 꼭 한번 이곳을 방문하여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페론이즘'에 대해 격의 없는 토론을 해볼 것을 권한다. 주소는 'Av. Belgrano 561 Cap, Fed'이다.

지난 28일 저녁 8시 필자의 초대로 아르헨 주재외신기자들이 이곳에 모여 '페론주의'의 실체에 대한 간담회를 갖게 된 건 필자의 페론가 비사 취재의 또 다른 성과라면 성과로 기록될 수 있다. 물론 이들 서방언론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페론주의'의 실상을 사실대로 보도할지는 두고 볼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이번 페론과 에비타에 대한 숨겨진 기록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건 아르헨티나에는 아직까지도 군부 철권통치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바레이로 박사 역시 페론가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25년 이상 아르헨 방방곡곡을 누비게 된 것도 대다수 생존자들이 숨겨진 진실을 증언해주기를 꺼렸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들 증인들은 군부가 왜곡한 페론가에 대한 진실들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보복이 두려워 죽음 직전에서야 털어 놓았던 것이다.

이는 군부가 민간인들을 상대로 벌인 '더러운 전쟁' 악몽의 잔영이 아직까지도 아르헨티노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거듭나고 있는 아르헨 군부

이를 염두에 둔 것일까.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최근 군에 대한 민간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국경분쟁이나 외국과의 군사적인 갈등문제를 제외하고 국내문제에는 어떤 경우라도 군이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법령을 공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대해 군사정권 당시 아르헨티나를 사실상 주물러 왔던 해군본부는 지난 27일 오전 11시 아르헨 주요 언론사 편집장들과 외신기자협회 대표, 군 업무 관련 민간기업 대표들을 초대해 민간감시체제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 "이제 아르헨 해군은 언론과 민간단체 감시를 받을 것입니다."아르헨 해군본부 내 행사장에서 해군 장교들과 함께한 필자. ⓒ아르헨 해군본부 공보실

이 자리에서 호르헤 고도이 제독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군사정부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면서 아르헨 해군은 영해감시와 해양오염방지에 주력하고 해상 테러방지 등의 업무를 위해 국제기구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임을 강조했다. 군은 사실상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또한 아르헨 해군은 홍보업무를 강화, 모든 활동을 언론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군부의 이런 변화는 지난해 3월 이들이 주도한 아르헨판 아우슈비츠였던 해군본부 지하감옥을 방문했던 필자 역시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당시의 어둡고 외부인들에게 배타적이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고급장교들의 환한 미소와 분에 넘치는 친절함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끝으로 페론의 할아버지였던 또마스 리베라또 페론이 소유했던 광활한 면적의 농장들이 오랜 반환소송 끝에 페론가로 귀속됐다는 소식을 추가한다. 이미 언급했지만 페론의 아버지 마리오는 결핵에 걸려 사회로부터 격리됐고 원주민 아내를 얻은 '괘씸죄'에 걸려 아버지로부터 유산상속을 받지 못했다. 소년 페론이 교육을 위해 할머니 집으로 들어간 것도 할아버지 사후의 일이었다.

따라서 또마스가 소유했던 재산들은 정부재산으로 환수되거나 제3자가 소유하게 되어 페론 가족들은 정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이 재산을 돌려줄 것을 요구, 오랜 재판 끝에 최종적으로 지난해 1월 페론가의 소유라는 법적인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또한 에바에 대한 증언의 상당부분은 바레이로 박사가 자신의 전임자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 선배였던 페드로 코시오 박사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것임을 밝힌다.

이번 페론과 에베타의 숨은 기록취재를 위해 조언과 자료협조를 아끼지 않은 아르헨 현지 역사학자들과 언론사들, 해군본부, 특별히 이뽈리또 바레이로 박사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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