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까지 참여하는 지구촌 축제
오는 14일과 19일, 그리고 23일에 오사마 빈 라덴이 어디에 있을지 나는 알 것 같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TV 앞에 앉아 있을 것만은 거의 분명하다. 자신의 모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튀니지, 우크라이나, 그리고 스페인과 벌이는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서. 신앙심이 깊은 빈 라덴에게 축구는 '죄스럽지만 보고 싶은(guilty pleasure)' 경기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언자의 나라(사우디)에서 온 축구전사들이 이교도들과 싸우는 장관을 그가 놓칠 리가 없다. 아마도 빈 라덴은 튀니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관대할 것으로 보인다. 튀니지는 지금까지 알카에다의 순교자 대열에 합류한 유일한 프로 축구선수를 배출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숙적 중에서 2006 독일 월드컵에 열중할 사람은 빈 라덴뿐만이 아니다. 이란 대통령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는 만일 이란 팀이 조별 예선을 통과한다면 자신이 직접 독일로 날아가겠노라고 '위협한' 바 있다. 포퓰리스트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뽐내려려는 듯, 아흐마디네자드는 최근 자신이 이란 대표팀과 함께 축구복을 입고 공 차는 모습을 촬영하도록 혀용하기도 했다. 북한의 김정일도, 비록 북한이 아닌 남한 팀이 출전하기는 하지만, 월드컵을 열심히 볼 것이 분명하다.
아마 미국 대통령 부시는 월드컵을 볼 것 같지 않다. 미국 팀이 우승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은 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의 제국적 역할을 편치 않아 하는 미국 사람들은 원기왕성하고 사랑받는 미국대표팀을 응원하면서 모처럼만에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 애국심의 발산을 만끽할 것이다. 반면 토니 블레어, 앙겔라 메르켈, 자크 시라크, 고이즈미 준이치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그 자신이 이탈리아 최고 명문팀인 AC밀란의 구단주다) 등 부시의 친구들은 자국 팀의 경기를 단 한 게임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만큼 전세계 5대륙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사도 없다. 약 30억 명이 TV를 통해, 그리고 2억5000만 명은 라디오를 통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게 될 것이다. 1974년과 1978년의 월드컵을 남아공에서 TV 없이 라디오중계로 접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라디오로만 이번 월드컵을 접해야 하는 앙골라, 토고, 가나, 그리고 아이보리코스트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지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당시 나는 BBC 단파라디오로 실시간 중계를 들었고, 약 2주일 후 '백악관호텔'이란 이름의, 케이프타운에 있는 유곽에서 경기 비디오를 봤다. 이 호텔은 돈벌이를 위해 월드컵 경기의 해적판 비디오를 돈을 받고 관람시켰다.)
수십억 명이 보게 될 월드컵 경기에서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고 신체적 조건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스피드와 기술, 상상력과 조직력의 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축구는 단순한 운동경기 이상의 것이다.
축구가 뿜어내는 국민적 열정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전설적 역사가이자 사회학자인 C. L. R 제임스(1901~89년,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 맞서 싸웠으며 1930년대 <맨체스터 가디언>의 크리켓 통신원을 역임했음)는 "크리켓을 아는 자만이 크리켓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안다"고 말했다. (대영제국 시절) 흰색 모직 플란넬을 입은 영국의 백인 식민주의자가 풀밭 위에서 닷새간의 크리켓 경기를 치르면서 점심시간과 오후의 티타임만은 꼬박꼬박 지키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대영제국이 겪었던 정치적 문화적 갈등을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일 제임스가 지금까지 살아 자신의 조국 트리니다드토바고가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축구에 대해서도 똑같은 지적을 했을 것이다.
제임스는 스포츠가 의례화된 전투(ritualized combat)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스포츠에서는 전쟁 때에 필적하는 국민적 열정이 뿜어져 나온다. 이 열정은 좋든 나쁘든, 관객이 자신의 팀과 자신이 속한 국가의 국민적 서사(national narrative)를 연결하는 신비한 연관관계와 관련이 있다. 잉글랜드 축구 팬들은 독일팀과 경기를 할 때면 으레 이렇게 외친다.
"2번의 세계대전, 그리고 1번의 월드컵."
전장에서의 승리를 축구장에서의 승리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제임스가 관찰한 것처럼, 영국의 과거 식민지가 잉글랜드 팀과 크리켓 경기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의례적으로는(ritually), 영국이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들을 식민지로 삼았던 것은 문화적으로 우수했기 때문이라는 영국측의 주장을 깨부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아일랜드공화국팀이 잉글랜드팀을 상대로 골을 넣었을 때,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아일랜드계 주민(Irish Diaspora)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는 것은 축구경기보다도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국민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잉글랜드 축구팬 중 호전적인 사람들은 소름이 오싹 끼치는 반(反)IRA 노래로 응수한다. 4년 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과거의 식민종주국이자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프랑스를 격파하자 수백만 아프리카인들은 마치 키가 한 자나 더 자란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리며 거리를 활보했다.
제임스는 또한 과거 식민지배를 받았던 민족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경기스타일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지적했다. 자신들만의 축구기술이나 사회조직의 특성을 반영해, 과거 식민지배자들이 만든 규칙 속에서 경기를 하면서도,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브라질과 독일, 너무도 다른 축구스타일
지난 번 월드컵 대회의 결승전에서는 브라질과 독일이 격돌했는데, 이 두 팀은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지구상 남과 북의 양극단을 대표하는 팀이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추앙받는 이유가 단지 링 위에서의 화려한 복싱기술 때문만이 아니라 인종주의적 질서에 대한 거침없는 저항 때문인 것처럼, 브라질 축구팀이 그토록 사랑받는 것은 시적(詩的)이기까지 한 아름다운 축구기술- '요가 보니토(joga bonito: 아름다운 게임') -과 함께 이들이 지구상 남측 국가(개발도상국)들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팀의 게임은 산업화된 서방측의 모습을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신체적 힘, 쉴 새 없는 돌파, 깨지지 않는 조직력, 그리고 상대방의 실수를 반드시 응징하고야 마는 기계와도 같은 효율성 등. 그것은 일종의 전격전(Blitzkrieg)이다. 사이몬 쿠퍼가 지적했듯이 독일 근대스포츠의 뿌리는 나치의 스포츠문화, 그리고 나치가 표방했던 군사주의적 덕목에 있다. 즉 지상과 공중에서의 물리적 힘으로 적을 압도하고, 때때로 단 한 골로 '멋대가리 없이' 이기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는 골키퍼이든가, 아니면 수비와 중원을 지휘하는 필드의 사령관들이었다. 물론 멋대가리는 없지만 어쨌든 골을 낚아내는 공격수도 포함될 수 있다. 독일 팀에는 단 한 번도 펠레 같은 선수가 없었다. 반면 브라질의 빈민가에서는 매년 기가 막히게 재능 있는 10대 선수들이 무더기로 배출돼, 과감한 기술과 탁월한 감각을 선보이면서 "제2의 펠레"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브라질의 축구스타일은 탁월한 전투능력과 확신을 가진 저항세력들이 펼치는 능란한 게릴라전에 훨씬 가깝다. 그들은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기술과 숨 막히는 과감성, 그리고 신속함을 결합시켜 예상 밖의 먼 거리에서 슈팅을 때리거나 상상할 수 없는 궤적의 킥을 만들어낸다. 동료 선수의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하는 브라질 선수들끼리의 텔레파시는 상대 팀은 물론 관중들마저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로 물 흐르듯 유연한 패스와 예기치 않은 골을 만들어낸다. 상대 팀은 문자 그대로 다음 번 공격이 어디에서 시작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중요한 게임에서도 브라질 선수들의 얼굴에 흐르는 미소는 그들이 진정 축구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축구경기 도중에 그러한 미소를 보이는 독일 선수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현재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는 브라질의 호나우딩요는 지난 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 잉글랜드의 골키퍼 데이비드 시맨이 골대에서 약 2미터 가량 앞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35미터짜리 프리킥을 높이 차올려 시맨의 '만세' 위로 골을 성공시켰다. 그 장면에 경악한 잉글랜드 해설가들은 센터링를 하려던 것이 운 좋게 골이 됐을 뿐이라고 우겨댔다. 지구상 남측(개발도상국)의 축구 팬들은 바로 그런 맛에 축구를 본다.
축구경기의 세계화
그러나 축구경기의 민족적 색채는, 유럽의 프로구단들이 세계의 재능 있는 축구선수들을 거의 모두 끌어 모으고 한때는 월드컵 때나 볼 수 있었던 수준 높은 경기를 이제는 위성TV를 통해 연중 내내 전 세계에 방영하면서, 그 특색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 브라질을 포함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국내 축구리그를 보는 팬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 대신 팬들은 이제 유럽 톱 축구리그의 TV중계를 종교적 열정으로 시청한다. 자기 나라의 최고 선수들마저도 이제는 유럽리그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런던에서 열리는 아스날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에는 중남미, 서아프리카, 아랍, 북부 남부 동부 유럽, 그리고 아시아 출신 선수들이 뛴다. 이들이 끌어 모으는, 전세계 TV 축구팬들은 선수들의 유니폼이나 기타 축구 관련 소품들을 만들어 파는 스포츠기업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를 순찰하는 영국의 젊은 병사가 아스날 티셔츠를 입은 이라크의 메흐디 민병대원과 마주치는, 조금은 희한한 광경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이 티셔츠는 영국 병사가 '고향'인 런던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맥주집에라도 갈 때 즐겨 입는 옷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아스날에서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올해 챔피언스 리그에서 아스날과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가 맞붙었을 때, 잉글랜드 선수는 단 2명밖에 없었는데 이 둘 모두 스페인 팀에서 뛰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지역'팀간의 대결이었던 축구경기가 급속하게 세계화되면서 경기스타일의 동질화가 진행되고 있다. 요즘 잉글랜드 팀에는 수비수들을 앞에 놓고 35미터짜리 중거리슛을 때릴 수 있는 선수가 한두 명은 반드시 있다. 반면 브라질 팀에는 "수비형(holding)" 미드필더가 한두 명은 있는데, 단순히 상대 팀의 공격을 분쇄하고 공을 뺐어내 보다 창조적인 플레이의 동료 선수에게 공을 전해주는 파괴자의 역할을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전통적으로 유럽에나 있던 포지션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는 브라질의 프로 축구선수는 4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브라질 대표팀의 선수들 모두가 유럽리그 출신으로 채워진 이유를 이 통계가 잘 말해준다 하겠다. (사실 브라질은 자국 출신 유럽리그 최고의 선수들로 대표팀 2개도 꾸릴 수 있을 정도다.) 반면 독일 대표팀은 거의 모두가 자국 리그 소속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분데스리가에서도 톱스타의 대부분은 브라질 용병들이다.
각국 고유의 경기스타일의 융합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감독들의 수입에 의해서도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상위 5개 팀의 코치는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출신이었다. 네덜란드 출신 감독 3명이 3개 외국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고, 아프리카 팀의 대표는 대체로 프랑스나 독일 감독이 맡고 있다. 그뿐인가, 잉글랜드 대표팀의 감독은 스웨덴 사람이, 포루투갈 대표팀은 브라질 감독이 맡고 있다.
축구공이 아닌 사람을 차다: 축구스타들의 국적 바꾸기
아직도 축구 팬들은 자신들의 국가대표 팀이 먼 옛날 조국의 신화들을 되새기게 해주길 바라고 있지만, 요즘 유럽 국가들의 대표팀은 갈수록 코스모폴리탄화 되고 있다. 2차대전 후 과거 식민지에서 유럽으로 몰려든 경제적 이민 덕택에 유럽 국가대표팀의 상당수가 이민 2세대, 심지어 3세대로 채워지게 됐다. 프랑스 대표팀 중 한둘을 빼고는 모두가 아프리카 또는 아랍 출신 선수들이다. 실제로 인종주의적 정치인 장 마리 르펜은 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한 데 대해 "이건 진짜 프랑스 대표팀이 아니야"라며 불평을 토해냈다. 반면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대표팀의 코스모폴리탄적 구성을 그런 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컨대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영국의 국민적 음식 대열에 새롭게 합류한 '빈달루(vindaloo: 고기나 생선을 넣어 만든 매우 매운 인도 카레)'를 응원구호에 넣어 이렇게 외친다.
'우리 모두는 빈달루를 사랑한다네.'
국제축구연맹(FIFA)은 그 나라 국적을 가진 선수들이나 그 나라 출신 선수 모두 국가대표팀 선수로 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카르 출신의 패트릭 비에이라가 프랑스 팀의 중원을 지휘하고 있는 반면 파리 출신의 칼릴구 파디가는 세네갈 팀의 스타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떠오르고 있는 스타들이 명성과 부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기웃거리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축구협회는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해 선수들의 국적을 추적하고 있다. 최근 수주일간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아이보리코스트 출신의 스트라이커 솔로몬 칼루를 네덜란드로 귀화시키려 했으나 새롭게 강화된 이민법 때문에 실패하기도 했다. 만일 네덜란드 축구협회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칼루는 자신의 동생 보나벤투어가 소속된 아이보리코스트 대표팀과 격돌해야 하는 얄궂은 운명을 맞았을 것이다.
한편 이번 월드컵 출전 선수 중 현재 프랑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 스트라이커 프란실루도 도스 산토스는 최고의 행운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포지션과 같은 브라질 선수들 가운데에는 그보다 나은 선수가 10명이나 있어 브라질 대표팀에 발탁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인 그를 튀니지가 튀니지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발탁한 것이다. (아마도 산토스는 이번 월드컵에서는 2년 전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브라질 국기로 자신의 몸을 감싸는 일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을 국민으로 받아들인 튀니지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 될 테니까)
인종주의: 일부 극성팬은 인종학살의 주역까지
러시아에서 영국에까지 이르는 유럽의 모든 국내 축구리그의 스타 중 상당수가 아프리카 혈통(브라질을 포함하여)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축구팬은 물론 감독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의 인종주의가 만연해 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의 올레그 블로킴 감독은 우크라이나 국내 리그의 세계화를 이렇게 개탄했다.
"국내 리그에서 뛰는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많아질수록 어린 친구들이 배울 게 많다. 우리 선수들을 뛰게 해야지, 나무 위에 올라가 바나나 2개를 따 들고는 괴상한 주문이나 외는 깜둥이들이 뛰게 해서는 안 된다."
스페인 대표팀의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또 어떠한가. 한번은 그가 스페인 팀의 스트라이커 호세 안토니오 레이에스에게 아스날 팀 동료인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보다 레이에스가 낫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TV에 포착됐다. 그는 앙리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앙리를 "저 검은 똥(that black shit)"이라고 지칭했다. 며칠 후 아라고네스는 자신의 발언에 인종주의적 폄하는 전혀 없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레이에스는 짚시 혈통이다. 내게는 짚시 친구도 많고 흑인 친구도 많다. 나는 그에게 그가 흑인보다 낫다는 말을 해줌으로써 짚시로서의 그의 자존심을 자극하려 했을 뿐이다."
오늘날 유럽의 많은 축구경기장에서 흑인 선수들은 관중들의 원숭이 소리 흉내나 바나나 투척 등 인종주의적 조롱을 당하고 있다. 사실 월드컵은 각국의 수많은 극우 축구팬들에게 인종주의적 외국인혐오증을 발산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의례화된 전투(축구경기)에서 자기편을 응원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 극우팬들과 실제 전투를 치르기도 한다. 지난 수 년간 잉글랜드 팀의 경기는 인종주의적 극우 팬들의 집결지이자 싸움터였다. 그러나 잉글랜드 극우 팬들도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의 팬클럽을 중심으로 결집된 세르비아 과격파들에 비하면 아주 얌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 아르칸의 지휘 아래 결집한 이들 세르비아 강경파들은 저 악명 높은 "타이거" 민병대의 핵심멤버가 되어, 헤이그전쟁범죄재판소가 20세기 최악의 '인종청소' 중 하나로 규탄한, 1991~93년 보스니아에서의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이민 노동자의 노동에 의해 복지사회를 지탱해가고 있는 유럽이 수백만 이민노동자들을 사회에 통합시켜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면서, 갈수록 축구경기는 또다른 형태의 정치적 의례, 즉 만연하는 인종주의를 발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부활하는 독일의 네오나치들이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전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데 대해 독일 당국이 긴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만일 네오나치가 성공한다면 세르비아, 폴란드, 이탈리아, 그리고 심지어 잉글랜드의 "극우파"들까지 수많은 동지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경기의 상품화: 지역의 영웅에서 세계적인 상품으로
축구팬들을 자신의 국가대표팀과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적 서사"가 진보적 또는 보수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더 이상 "국민적 서사"는 축구경기의 추동력이 아니다. 오늘날 축구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제적 산업이 됐다. 유럽의 돈 많은 포로구단들, 즉 일종의 초국적기업들이 이 산업을 좌지우지 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브랜드'를 바그다드에서 베이징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팔아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영국 섬유산업의 몰락과 함께 쇠락해가고 있는 맨체스터라는 도시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중국) 광둥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팀이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찾아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에콰도르의 버스보이에서 방콕의 택시기사에 이르기까지 바르셀로나의 푸르고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축구팬들은 "자신들의" 팀이 카탈로니아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를 것이다.
지역의 영웅들(local icons)은 이제 세계적인 상품(global brands)이 되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맨체스터 주민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 대신 잉글랜드 국기를 들고 있겠지만, 이 팀 소속 선수들 대부분은 네덜란드,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세르비아, 프랑스, 그리고 한국의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 팀과 맞서 싸울 것이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소속 팀 선수들이 어떤 나라든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트라이커인 웨인 루니는 부상을 무릎 쓰고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다. 그는 잉글랜드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의 부상이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9월에 시작되는 다음번 리그에 출전할 수 없다면 구단으로서는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몸값은 자그마치 4000만 달러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유럽의 18개 명문구단이 FIFA측에 대해 월드컵 수입 중 일부를 배분해달고 요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구단들은 이들 선수들이야말로 막대한 수입을 창출해내는 구단의 "자산"이기 때문에 이들을 월드컵에 출전시키는 것은 구단에 엄청난 위험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최고 축구선수들의 소유주로서 유럽의 프로축구 구단주들은 이제 각국 축구협회의 주권에 도전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축구 장비 및 관련 의류 생산 등 축구경기의 또 다른 상업적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 이들 기업들은 월드컵 및 각국 국가대표팀을 후원하면서 수십억 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다. 이들 중 선두는 나이키로, 이 회사는 브라질을 비롯해 네덜란드, 포르투갈, 멕시코, 한국, 그리고 미국 대표팀 등을 후원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아디다스는 독일, 프랑스, 스페인, 아르헨티나, 일본, 그리고 트리니다드토바고 등을 후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푸마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코트디브와르, 이란 등을 후원하고 있다.
아디다스가 대체로 나이키보다는 열세에 있지만 그래도 절대우위를 지키는 분야가 딱 하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사용될 축구공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월드컵 공인구 1000만 개를 판매한 아디다스는 올해 안에 500만 개를 추가 판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이 차는 것과 "똑같은" 공을 찬다는 보통사람들의 열망을 충족시키는 것만으로 아디다스는 자그마치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래도 월드컵은 지구촌 화합의 한마당
현대의 지정학적, 문화적 갈등(또는 역사적 반향)에서 세계화의 충격에 이르기까지, 월드컵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실시간 스냅사진으로 보여준다. 이번 여름, 포르투갈과 앙골라, 잉글랜드와 트리니다드토바고가 맞붙었을 때 이전 식민지 국가(앙골라와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축구팬들은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떠올릴 것이다. 지난 24년동안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격돌할 때면 양국 팬들은 어김없이 포클랜드전쟁(영국), 또는 말비나스전쟁(아르헨티나)을 상기하자고 외쳐댔다. 호주와 일본의 대결에서 2차대전의 기억이 튀어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나아가 만일 미국과 이란이 맞붙게 된다면 현재 진행되고 국제정치의 드라마가 축구장에서 재연될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단순한 축구경기 이상이기도 한 월드컵,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예측불허였다. 승자는 언제나 조직력과 영감, 개인 기술과 팀의 협력, 실력과 순전한 행운의 절묘한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드넓은 경기장에서 한 개의 축구공과 11명의 선수들을, 더구나 이를 방해하려는 또 다른 11명과 대적하면서 그토록 신속하게 조율해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90분간의 경기에서 현실세계의 힘의 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나아가 "전투"가 아무리 치열했다 해도 경기가 끝나고 나면 월드컵의 오랜 전통에 따라 선수들은 상대에 대한 존경과 우정의 표시로 유니폼을 바꿔 입는다. 결국 월드컵은 갈등으로 가득 찬 세계뿐만 아니라 전쟁 아닌 다른 방법에 의한 화해의 가능성이라는 스냅사진까지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필자 토니 카론(Tony Karon)은 다음 월드컵 개최국인 남아공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영국 프로축구팀 리버풀의 골수팬이다. 중동지역을 비롯한 국제분쟁 전문가이며 현재 인터넷매체 Tlme.com의 선임 편집자로 있다.
이 글의 원 제목은 'How to Watch the World Cup: Politics and War by Other Means', 원문은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SectionID=105&ItemID=10392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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