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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는 민주주의와 적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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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는 민주주의와 적대관계"

김민웅의 세상읽기 〈227〉

  <인도에서 영국의 지배는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1853년에 발표한 이런 제목의 글 속에서 칼 마르크스는 영국의 자본주의가 인도의 구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표현은 마치 인도에 대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라고 오해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오해는 칼 마르크스의 원문은 영국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인도인들의 저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은 단정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인도 사회의 구질서가 영국의 지배로 말미암아 무너지기는 하지만, 그로써 이루어지는 새로운 사회의 이익은 인도인들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원문의 해당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은 인도에서 두 가지 사명을 성취하게끔 되어 있다. 하나는 파괴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재창조이다. 다시 말해서 오랜 아시아적 사회구조를 청산하고 아시아에서 서구사회의 물질적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 인용에서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시아에서 서구사회의 물질적 기반"이라는 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도인들은, 영국 사회 내부에서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에 의해 혁명이 일어나 부르주아 지배계급이 교체되거나, 아니면 인도인들 스스로 강력해져서 영국의 지배를 벗어던질 수 있을 때까지는, 영국 부르주아가 자신들끼리 나누어 갖는 이 새로운 사회의 열매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국 사회 내부의 변혁이나 또는 인도의 민족해방이 이루어질 경우에만 새로운 사회의 혜택은 인도인들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도의 자산은 영국 부르주아가 박탈하고 착취하는 대상이 될 뿐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앞에 언급했듯이 영국 자본주의가 인도사회에 재창조한 것은 인도 자신의 물질적 기반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서구사회의 물질적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또한, 이 영국 자본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문명의 그 심각한 위선과 내재한 야만성이 우리 눈앞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는 품위 있게 행동하는 듯하지만 식민지로 가서는 그 본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지 않은가?" 영국의 자본주의가 인도에서 저지른 일들을 그는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칼 마르크스의 역사적 관찰이 오늘날에도 그리 다르지 않게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화'라는 지구적 변화는 달리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확대를 말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인류사회는 국가의 경계가 사라짐과 동시에, 패권적 경제 질서에 흡수되면서 고통도 함께 겪게 됩니다.
 
  칼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인도사회에서 주목했던 것처럼, 내적 준비와 대응의 역량을 기르지 않은 채 강대국의 자본주의체제가 약한 나라에서 자신의 이해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게 되면 그것은 그 강대국의 물질적 기반이 될 뿐이지, 그 나라의 민중들의 삶과는 도리어 적대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한-미 FTA는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어가는 과정이 되기 쉽고 우리 사회는 보다 처절한 약육강식의 야만적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의 물질적 기반"을 만드는 결과가 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한-미 FTA가 과정을 거치지 않고, 민주적 논의를 피하는 까닭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소수의 특수한 이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자본과, 그들과 연대 내지 이해를 같이하는 세력의 물질적 기초를 세우려는 과정입니다.
 
  그런 FTA는 민주주의와 적대관계입니다. 그걸 이런 식으로 추진하려는 대통령과 여당은 민주주의와 갈수록 멀어질 겁니다.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에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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