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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세기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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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난 한 세기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박노자-허동현 서신논쟁 3부 〈18ㆍ끝〉

 반갑습니다. 박노자 선생님
 
  2003년 2월에 프레시안 지면을 빌려 논쟁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습니다. 최종 회를 쓰고 있는 지금 '쏜 살 같이 빠른 세월'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군요.
 
  그 때와 지금의 유사성, 하나: 외세의 중압과 우리 안의 이분법
 
  높이 나는 새의 눈(bird's-eye view)을 빌려 지나간 한 세기를 조감해보면,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두 개의 전환점인 갑오경장(1894~1896)과 IMF금융위기(1997~1999)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갑오경장은 1876년 개항이후 시작된 일본 지향형 근대화가, 그리고 IMF금융위기는 1945년 해방 이후 추동된 영미 지향형 근대화가 본격화된 계기였습니다.
 
  전자는 사람 이름과 땅 명칭, 그리고 관직명까지 중국식으로 바꾼 8세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시작된 중국문화 지향에서 벗어나 서구의 아류(亞流)로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식 부국강병의 근대화를 따라 배우려 한 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후자는 5.16군사쿠데타 이후 군부정권과 12.12군사쿠데타 이후 신군부정권에 의해 추진된, 개인의 인권을 유보하고 산업화(부국강병)를 우선하는 재벌과 군부가 유착된 정경유착의 일본식 근대를 넘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추구하기 시작한 계기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협상이 웅변하듯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속에서 미국식 제도와 가치체계의 본격적 세례를 받게 만든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허나 이 두 개의 획기적 전환점은 우리 내부의 동력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동양의 패권을 손아귀에 넣은 일본과 IMF라는 국제금융기구 뒤에 숨은 신자유주의의 주창자 미국의 힘이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계기가 외세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이 초래된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로 세계질서의 변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시간의 경쟁"에서 뒤처진 것이 그 주된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는 반복하는가요? 냉전 붕괴 후 다시 돌아온, 힘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을 맞아 다시 돌아 본 우리의 현재는 한 세기 전과 너무도 유사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국제질서가 도덕률(moral politics)에서 힘의 정치(power politics)로 바뀔 때 이미 세계적으로 그 기능이 소멸한 구질서를 자력으로 청산하지 못하고 도도히 밀려드는 새 질서에 타율적으로 편입되는, 역사 시간의 지체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한 세기 전 난맥상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복마전의 태아적 원형(embryonic prototype)입니다. 남북분단은 논외로 치더라도 "보수와 진보", "친미와 반미", "근대와 탈근대", 그리고 "민족과 탈민족"으로 나뉜 우리안의 이분법은 한 세기 전 "개화와 수구", "친일과 반일"의 분열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한 세기 전 역사를 돌아 볼 때 떠오른 생각은 역사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는 것이지요. 세계사의 시계는 "똑딱똑딱" 가고 있는데 우리는 또 한번 "똑이요 딱이요"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 시간을 헛되이 보내 버리는 어리석음을 거듭하지 않기 위해 한 세기 전 그 때 참담한 실패의 역사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와 지금의 유사성, 둘: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두 개의 과제
 
  한 세기 전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일본과 일본인을 근대 국민국가와 국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성공한 반면, 이 땅의 사람들은 좌절을 역사를 써야 했습니다. 우리는 양반과 상놈의 신분제 사회를 넘어 국민 만들기를 통한 평등사회 이루기와 민족(국민)을 단위로 한 "국민국가 만들기(nation building)"에 실패해 약육강식의 생존 경쟁에서 낙오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도층은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들었고, 백성(百姓)들은 국민(國民), 나아가 시민(市民)으로 거듭나지 못해 "천황폐하의 신민(臣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 세기 전 국민국가 형성의 시기에 "서세동점(西勢東漸)"이란 또 다른 세계화의 충격이 동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시간의 경쟁"에서 낙오한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냉전 붕괴 후 다시 돌아온 힘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을 맞아 다시 돌아 본 우리의 현재는 한 세기 전과 너무도 유사합니다. 근대 국민국가 만들기와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에 맞서 나라 지키기라는 이중의 과제를 짊어졌던 한 세기 전 이 땅의 사람들처럼 오늘의 우리들도 동시대 다른 나라 사람보다 훨씬 무거운 책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지난 세기가 남긴 숙제인 민족을 단위로 한 통일된 국민국가 세우기이며, 다른 하나는 혼혈인과 이주노동자라는 이 시대의 상놈에 대한 차별 넘어서기와 남녀동권의 양성 평등 사회 만들기를 통한 국민을 넘어 시민으로 거듭나기, 그리고 동아시아와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 만들기입니다. 이처럼 이 땅의 사람들은 100년 전 이루지 못한 민족 지키기와 근대화 달성하기라는 '근대 과제'와 함께 타자 · 타민족과 더불어 살기와 근대가 낳은 역기능인 여성차별과 환경 파괴와 같은 '근대 이후 과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중의 책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기치가 휘날리기 시작한 지금 우리를 둘러싼 열강 중 어느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기에 우리는 더불어 살기를 도모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마땅히 노력해야만 합니다. 내부적으로도 이미 다인종·다문화의 잡종사회로 접어든 우리는 혈통을 중시하는 자민족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데 힘을 기울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한 세기 전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약자의 민족주의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패였지만, 오늘 우리의 자민족 중심주의는 혼혈인과 같은 우리 안의 타자를 배제하고, 우리 밖의 다른 인종과 민족을 타자로 규정해 차별하는 오리엔탈리즘을 복제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소위 "발전"을 내세운 근대화 지상주의도 요즘의 시각에서 보면 환경 파괴, 여성 차별, 그리고 인간 소외를 심화시키는 역기능을 발할 뿐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는 타자·타민족과 더불어 살기와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양성 평등의 사회도 꿈꿉니다. 그렇다면 민족이라는 거대담론과 근대지상주의를 넘어서길 꿈꾸는 것은 정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민족 분단의 아픈 현실과 유럽과 달리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상징되는 동아시아 지역 내 민족주의의 부활은 우리가 이상적인 당위만을 꿈꾸게 내버려 두질 않는 것 같습니다.
 
  탈민족은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은 민족 지키기와 근대화 이룩하기라는 근대과제와 함께 타자·타민족과 더불어 살기나 양성 평등사회의 실현과 같은 근대 이후 과제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프랑스가 나치에 협력한 부역세력들을 숙청해 과거사 정리에 성공하고 독일이 분단을 극복한 것과 달리, 우리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하였고 분단 극복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유럽은 독일의 쉼 없는, 침략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 만들기에 성공한 반면, 동아시아 지역은 일본의 침략의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 왜곡으로 인해 민족주의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앙금이 채 가라앉지 않고, 냉전이 남긴 상처도 아물지 않은 동아시아를 사는 우리들은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 1967)를 거쳐 유럽연합(European Union, 1993)을 이룬 유럽인들이 너무 부럽기만 합니다.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들은 한 세기 전 그때 거기를 산 이들처럼 또 다시 우리 앞의 역사시간을 허송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합치하지 않는 역사 기억을 둘러싼 충돌입니다. 대대적으로는 친일파 청산을 둘러싸고 일고 있는 '기억의 내전'이,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침략의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 우파의 역사교과서 미화와 고구려에 대한 역사 기억을 가로채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야기한 '기억의 국제전'이 그것입니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미완의 근대과제 수행을 우선 하는 쪽과 앞으로 이루어야 할 근대 이후 과제의 달성을 앞세우는 쪽으로 나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전자는 민족을 외세에 판 친일파를 역사적으로 단죄하는 과거사 청산과 민족 통일을, 그리고 후자는 민족을 넘어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급선무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이처럼 요즘 우리 지성사회의 뜨거운 감자는 민족입니다. 보편적으로 좌파는 민족을 넘어서는 민중(계급) 간의 연대를 중시하고, 우파는 자국과 자민족의 우월함을 자랑합니다. 허나 우리의 경우 좌파는 민중과 민족을 함께 품으려 하며, 우파는 한 손에는 태극기를, 다른 손에는 성조기를 같이 잡으려 합니다. 뜨거운 감자를 집어 삼키는 쪽이 좌파이고 뱉으려는 쪽이 우파로 보이는 아이러니가 연출됩니다. 이러한 혼돈은 우리 근현대사의 특수성이 빚은 산물이겠지요.
 
  영어로는 민족과 국민은 모두 'nation'입니다. 한 세기 전 이 땅의 사람들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 국민으로 살면서 미래에 올 나라의 국민 또는 인민이 되길 꿈꾼 민족이었습니다. 해방 후 국민과 인민으로 갈라선 민족은 동족상잔의 비극도 맛보았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족은 남한에서 개발독재정권이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사용하던 수사였으며. 민중은 당시 이에 맞서 새 세상을 꿈꾼 이들이 쓰던 반격무기였습니다. 냉전 시대를 산 이들의 머릿속에는 제방에 난 구멍을 고사리 손으로 막아 마을을 구한 네덜란드 소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1994년 국민교육헌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까지 우리는 민족의 중흥을 위해 살아야 했지요. 아이의 손바닥 하나로 둑에 난 구멍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전체의 이름으로 낱낱의 희생을 강요하던 시절 국가가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만든 신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나 이에 맞서 민중의 이름으로 새 세상을 꿈꾼 이들의 눈에도 개인은 비치지 않았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 자신들이 상상하는 세상에 정당성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개인 동원을 위한 거대담론의 수사. 민족과 민중은 일란성 쌍둥이일 뿐입니다.
 
  냉전 붕괴 후 들이닥친 신자유주의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 정치세력의 해법은 너무도 다릅니다. 좌파는 민족을 방패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아직도 꿈꿉니다. 허나 우리 사회는 이미 생각과 지향과 이해를 달리 하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야 할 다원화된 시민사회로 진화했습니다. 이제 낱낱을 전체에 종속시키는 좌파의, 민족에 기댄 민중 지키기는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라는 외세를 빌려 대한민국이란 국민국가의 번영을 도모하려는 우파의 민족 넘어서기도 한 세기 전 일본의 아시아주의에 빠진 이들의 친일행각을 떠오르게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탈근대와 탈민족이 유행인 것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지성사회는 철지난 민족을 화두로 내전 중이라는 점에서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구 사람들은 남녀차별과 환경파괴, 그리고 대량살륙이 자행된 근대와 그 원인을 제공한 민족주의를 벗어나려 애씁니다. 허나 우리의 좌파는 국민과 인민이 하나 되는 민족통일이란 근대기획을 지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실존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서구 좌파들이 폐기한 민중혁명 필연론도 가슴 속에서 지우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민족·인종·성차(젠더)를 넘어 생각과 지향과 이해를 달리 하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꿈꿉니다. 그렇다면 낱낱을 전체에 종속시키는 좌파의 민족에 기댄 민중 지키기나 민족을 빌미로 한 북한 인권에 대한 눈감기에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유럽의 경험을 거울로 삼아 민족을 넘어선 동아시아 공동체를 세우자는 탈민족주의자들의 이야기가 귀에 솔깃합니다. 특히 탈민족을 통한 동아시아 만들기를 주창하는 김기봉 선생님의 친일파 청산문제에 대한 제언은 경청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중일전쟁을 맞이해서는 이전의 중국의 지위를 전유하기 위해 중화사상을 대체하는 '대아시아주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대는 '황도의 위대한 정신에 의거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근대적인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 일제 협력자가 된 조선 지식인들이란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동아시아 담론을 전유(appropriate)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가 행한 범죄와 만행의 공범자가 되었다. 그들의 역사적 선택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우리는 과연 그들과 다른 역사적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역사적 사유 공간을 실제 일어난 역사의 현실태뿐만 아니라 그 가능태까지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저항'과 '협력'의 이분법적 틀로 바라보았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항'과 '협력'이라는 이분법을 형성하는 코드는 민족이다. 민족이라는 코드에서 탈피해 우리 역사를 볼 때, 동아시아라는 대안적 역사 세계가 진지하게 고려될 수 있다." (<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푸른역사, 2006), pp. 45~46)
 
  이처럼 김기봉 선생님은 일제에 대한 "저항과 협력"을 기준으로 식민지시대를 산 이들을 애국자와 매국노의 둘로 나누는 이분법의 주술에서 놓여나라고 충고합니다. 그래야만 동아시아는 과거의 갈등을 재생산하는 "기억의 터"가 아닌 미래의 희망을 위한 "기억의 장"이 될 수 있으며, 이 땅의 사람들도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동아시아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와 같이 식민지를 경험한 인도 근대사를 연구하는 이옥순 선생님의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 선생님은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푸른역사, 2006)라는 책에서 민족의 신화(神話)화를 통해 국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기억 만들기"인 참여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의 문제점을 꼬집더군요. 친일(親日)은 악이고 반일(反日)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는 두 극단의 중간에 자리한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 간 지식인은 친일과 반일, 강경한 저항과 무기력한 순응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은 조선에서 자치 문제가 대두되고 인도에서도 자치령 문제를 놓고 간디·어윈 총독 회담, 인도·영국 원탁회의 등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협상이 대등하게 전개된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사이에 국내 언론에 논설과 논평기사가 집중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주목하더군요. 일제에 대한 저항과 해방에 대한 희망을 인도의 민족운동을 빌려 말하는 행위를 "식민화된 몸에 식민화하지 않은 정신"을 가졌으되 직접 항일운동 전선에 나서지 못한 지식인들이 펼친 "은유적 저항"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더군요. 식민지 사람들의 "인도를 통해 말하기"는 일제 탄압의 직격탄을 피하는 중간지대에 자리한 저항의 한 방법이었다는 말이 우리 안의 이분법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것 같아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탈민족을 말하는 이들은 민족이라는 초역사적 거대담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동아시아라는 대안적 역사세계에 눈을 뜰 수 없으니 민족이라는 색안경을 어서 벗어던지고 공동체 만들기에 동참하라고 손을 잡아끕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탓하기 전에 국사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우리 눈 안의 들보를 먼저 없애는데 힘을 기울이는 게 순리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동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의 거울"처럼 민족의 영광만을 노래하는 국사를 버리고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동아시아사라는 "공동의 거울"을 새로 들여놓으라고 말입니다.
 
  허나 공동번영과 평화를 꿈꾸는 공동체의 싹을 돋아나게 하기엔 아직 동아시아의 토양은 너무도 척박합니다. 일본 우파의 역사왜곡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동아시아에는 다시 민족주의의 깃발이 넘실거리고 북소리가 둥둥 울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를 말하는 이들의 민족 넘어서기도 강대국이 민족주의를 먼저 폐기하지 않는 한 순진한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약자가 갑옷을 먼저 벗을 수는 없는 법 아닐까요? 아직은 민족주의 폐기를 말할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안의 타자를 차별하는 민족주의 역기능은 줄이고, 민족주의 사이의 전압을 낮춰 국가 사이의 충돌은 막는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것만이 현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현실과 이상을 아우르는 차선책이 아닐까요?
 
  우리가 이룬 근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한 세기 전 우리는 우리 손으로 근대국가를 만들지 못한 대가로 쓰디쓴 식민통치를 맛보았고, 해방도 우리 힘으로 얻지 못하여 분단과 동족상잔이란 쓰라린 역사의 기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근·현대 100년은 고통과 재앙이 연이어 일어난 암울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강행군에 강행군을 거듭한 우리의 근대국가 만들기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와 대립적 노사관계, 입시지옥으로 표현되는 과도한 교육 경쟁, 인간 소외 현상과 가치관 혼란 등 인간성 상실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위기 상황을 불러일으켜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것을 꿈꾸지 못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한 대학신문이 17개 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실로 충격적입니다. 프랑스 대학생의 80퍼센트, 러시아·캐나다 대학생의 78.6퍼센트와 75.9퍼센트가 "다시 태어나도 모국을 택하겠다"고 응답한 반면, 우리 대학생의 절반 이상(51.4퍼센트)이 "다시 태어난다면 모국을 택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것입니다. "민족"을 절대 가치로 교육받아 온 최고 학부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나라로 생각할 정도로 우리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은 위중한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근대라는 것이, 그 문을 여는 순간 인간에게 없던 질병과 전쟁·증오·슬픔·고통이 빠져나와 인간을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신화 속 판도라 상자처럼 열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근대가 물신 숭배와 인간 소외, 도덕성 타락,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박해라는 야수성으로 우리의 인간성을 타락시킨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또한 자유와 평등·박애·관용이란 가치를 소개하고 널리 퍼뜨려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한 시대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 이웃집 소를 가져다가 자기 밭 먼저 갈고, 마을 사람을 불러다가 내 밭 먼저 김매게 한다. 이리해도 어느 누구도 욕하지 못한다. 잡아다가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상투를 잡아매어 벌을 준대도 아무도 원망하지 못한다."
 
  이제는 박지원의 <양반전>에 그려진 양반들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특권층은 없으며, 대통령이나 재벌조차 견제와 심판을 받을 만큼 시민의 힘이 성장하지 않았나요? 오늘날 한국인들이 동시대의 선진국 사람들에 비해 정치·경제·사회·교육 여건에서 열악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조선시대나 일제시대 사람들에 비해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삶의 질이 개선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듯, 역사 해석의 폭도 큰 낙차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유리잔에 조금 남은 물을 보고 "이것밖에 남지 않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직도 이만큼 남았네"라고 볼 수도 있지요. 이제 구구단을 갓 배운 아이에게 방정식을 풀지 못한다고 나무라는 것이 무리이듯, 서구 선진국들이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한 근대와 뒤떨어진 역사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빨리 빨리"와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불과 반세기만에 일궈낸 "압축 근대"를 같은 잣대로 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사실 서구 선진국들도 환경 파괴와 노동자 착취·여성과 타자에 내한 차별 같은 근대가 가져온 부작용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늘의 서구 사회가 우리에 비해 야수성이 덜 하다는 것은 그들이 좀 더 오랫동안 근대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힘써 왔음을 말해주는 것이겠지요. 사람이 바르게 성장하는 데에는 따끔한 지적과 훈계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따뜻한 포용과 칭찬이 약이 되기도 합니다. 잘 되라고 가한 비판의 채찍이 본래 의도와는 달리 제 자신을 경멸하는 역사 허무주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우리 근현대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감싸 안을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 젊은이들이 자신의 모국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그 첫걸음은 시간과 속도를 상대로 한 전쟁을 끝내고 느림의 미학을 되찾는 것, 그간 "민족"이라는 거대 명제에 억눌려 소외돼 온 작지만 소중한 가치에 관심을 돌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하면 물질적인 측면에서 이룩한 "압축 성장"을 어쩌면 정신적인 면에서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가 연 근대라는 이름의 판도라 상자 속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연구실 창 너머로 보이는 신록의 아름다움에 취한 허동현 드림
 
  끝으로 그 동안 저희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아 주시고 질정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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