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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첼렛 "불행했던 과거사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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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첼렛 "불행했던 과거사 잊지 말자"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135〉칠레의 첫 여성대통령 취임식

"과거 없는 미래는 없다."

지난 11일 낮 12시(현지시간) 공식 취임한 미첼 바첼렛 칠레대통령이"불행했던 과거사를 잊지 말자"면서 밝힌 분명한 과거청산 의지다.

이날 35개 국 국가원수들과 110개 국에서 온 축하사절단 등이 칠레 국회의사당 '명예의 전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치러진 취임식에서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은 바첼렛 대통령은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를 반대했다는 명목으로 체포돼 50세의 나이에 살해된 자신의 아버지 알베르또 바첼렛 장군을 회상하며 "내일 아버지(묘지)를 방문하겠지만,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 아버지가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느낀다"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바첼렛 대통령은 이어 "칠레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인 청소년들과 지체장애자들을 잊지 않겠다. 그들을 돌보고 불평등을 없애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다"라고 밝히고 "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국민들을 섬기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역설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날 오후 칠레 대통령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바첼렛 신임대통령은 몇 차례나 지난 1973년 처형 직전 "언젠가는 칠레의 모든 사람들 앞에 대로(大路)가 열리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던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유언을 언급하며 "모든 칠레 사람들이여, 우리는 그 대로를 열고 함께 축하를 하자"고 외쳤다. (대로〈grandes alamedas〉는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이 건설을 추진했던 칠레 산업 발전과 자유의 상징인 넓은 도로 이름. 아옌데는 1973년 피노체트 등의 군부쿠데타에 의해 이 도로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처형됐다.)

시종일관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 이날 취임식장은 최근 설전을 벌이기도 했던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등이 자리를 함께해 팽팽한 긴장이 감돌기도 했다.

***모랄레스, 라이스 장관에 코카잎 붙은 악기 선물**

이날 오전 이른 시간 취임식장에 도착한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우루과이, 브라질, 볼리비아 대통령 등과 인사를 나누면서 몇 차례 차베스와 대면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호 경호요원들의 견제와 서로가 의도적으로 등을 돌려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는 모습이 현장 중계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서로가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는 모습조차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을 꺼리는 모양새였다.

중남미 좌파지도자들의 통합회담장 같은 성격을 띤 이번 칠레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다시금 중남미통합프로젝트를 내세우고 칠레에 가스공급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바첼렛 신임 대통령과 만나 중남미통합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베네수엘라에는 향후 중남미 전체국가들 모두가 200년 이상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천연가스가 충분히 매장돼 있음을 설명하면서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로 중남미발전을 앞당기자고 역설하기도 했다.

칠레 현지언론들은 차베스의 중남미통합과 가스공급프로젝트에 칠레의 민간기업들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취임식 하루 전 칠레에 도착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바첼렛 대통령과 만나 양국의 관계개선과 외교관계 정상화 방안 등을 논의, 긍정적으로 함께 검토해 보자는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와 볼리비아는'5년 전쟁'(1879~84년)으로 역사적 앙숙이 됐으며 지난 70년대 볼리비아가 빼앗긴 국토반환운동을 벌이면서 외교단절 등 적대적인 상태였다.

그러나 현재 칠레는 볼리비아산 가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볼리비아는 칠레가 점유한 태평양으로 가는 뱃길이 필요한 상황이다. 좌파임을 내세우며 칠레 최초 여성대통령에 취임한 바첼렛 신임 대통령과 원주민 출신으로 사상 처음 볼리비아 대통령이 된 에보 모랄레스가 역사적인 앙금을 청산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협상을 이루게 될 지가 남미 정가의 관심거리다.

이와 함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모랄레스 대통령은 어색한 만남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선물까지 교환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날 취임식이 시작되기 전 두 사람이 잠시 따로 만난 자리에서 모랄레스가 코카잎을 붙여 표면 처리한 차랑고(작은 기타 모양의 남미 전통악기)를 라이스장관에게 선물한 것.

두 사람 간의 대화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담 후 두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취임식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미국과 볼리비아간 코카잎 재배합법화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지언론들은 또한 라이스장관이 공개적으로 볼리비아산 코카잎을 지니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에 대해서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랄레스가 선물한 차랑고에는 꽤 많은 량의 코카잎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대통령의 향기'라는 타이틀로 바첼렛 대통령의 취임식 표정을 전한 남미 언론들은 "칠레 서민들과 진보그룹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대통령에 취임한 미첼 바첼렛 신임대통령은 정치개혁과 민주국가발전, 군사독재 과거사청산 등 산적한 현안들을 칠레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지지에 힘입어 무리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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