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재개정 장외투쟁 6주째인 19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지쳐 보였다. 연말에 걸린 감기가 덜 나았는지 목소리는 가라앉았고 그간 정수리께 흰 머리도 늘어난 것 같았다. 두 달째 전국을 누비며 장외집회를 선도한 피로가 겹친 탓이라곤 하지만 박 대표를 괴롭히는 것은 육체 피로만은 아닌 듯 했다.
***#1. 여당 공격에 대꾸도 않던 朴 대표가… **
박 대표는 이날 아침 회의에서 "남의 당 선거에 콩 놔라 팥 놔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마디 하겠다"며 여당 당의장 경선 출마자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을 비난하고 나선 데 대해 불쾌감을 한껏 드러냈다.
'색깔론자'란 김근태 고문의 비난에는 "간첩도 민주화 인사로 만들꺼냐"라며, '마키아벨리적'이란 정동영 고문의 비난에는 "노인들은 선거하지 말란 발언이 더 마키아벨리적"이라며 그야말로 '맞대응'을 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남을 비방하는 행태야 말로 방어기제의 투사"라며 준비해 온 용어까지 사용할 때, 테이블에 함께 앉은 지도부는 웃었지만 뒷자리의 당직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중 하나는 "박 대표가 저런 적이 있냐"며 옆 자리에 귀엣말을 건넸다.
'유신공주', '수첩공주' 등 여당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지던 재작년 연말에도 일절 대꾸를 않던 박 대표였다. 너무 심하다 싶은 비난에만 대변인단이 '알아서' 대응을 하는 수준이었지 개인을 향한 비난에는 좀처럼 응대를 않던 박 대표가 회의석상에서 '맞공세'를 펼친 것은 우선 당 내부에서부터 의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맞수로 두고 초점을 맞춰 온 박 대표가 '별 상관 않던' 열린우리당을 공격하고 나선 것도 의외였다.
박 대표의 측근은 "자신이 다른 당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이 분하지 않았겠냐"고 설명했지만, 최근 박 대표가 지나치게 '날카로워졌다'는 것이 당내의 일반적인 평이다. 사학법 투쟁이 당 안팎의 공격을 받으면서 비난이나 반대를 수용할 만한 여유가 없어졌다는 풀이다.
이에 한 소장파 의원은 "이명박 시장에겐 밀리지, 여론은 안 좋지, 물러날 데는 없지, 자기 심신이 괴로우면 모기 소리에도 과민반응하게 되는 거 아니냐"며 "다른 생각을 가진 의원들을 공개 석상에서 면박 주는 것만 봐도 박 대표가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2. "대표 좀 말려봐"…당직자들도 수근수근 **
"사학법 여론이 뒤집어졌다는 보고, 그 쪽에서 했어요?"
"그럴 리가요…, 그런 결과는 보지도 못 했는데요."
"어디서 생뚱맞은 결과로 조그맣게 쓴 기사가 대표실에 보고 됐더라고. 나 참, 우리 당원들 중에서도 사학법 찬성 여론이 더 많은데…."
회의 직전, 당직자들이 나누는 '수군거림' 속에서도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사학법 투쟁에 대한 불만이 읽혔다. 당 사무처의 직원들은 대표에 대한 '로열티'가 소속 국회의원들에 비해 높기 마련이다.
"사학법 투쟁을 반대하는 일반 여론이 박 대표에게까지 잘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걱정이었다. 박 대표가 사학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다는 것을 수치로야 확인하지만, 실제 접하는 여론은 사학 관계자, 종교 지도자 등의 것이니 강경 일변도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장외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8.0% 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16일에도 박 대표는 '사학법 투쟁 대전본부 발대식'에 참여해 "사학법의 부당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당원들을 독려했다.
***투쟁 두 달 성적표, 이명박 시장과 '더블 스코어'**
사학법 투쟁이 장기화 되면서 눈에 띄게 떨어진 여론 지지도도 박 대표를 옥죄고 있다.
최근 〈한길리서치〉 조사결과에 따르면 장외집회에 나선 직후인 12월 16일 조사에서 12.2%였던 박 대표 지지도가 1월 13일에는 10.6%로 떨어졌다. 그 대신 12월에는 15.5%였던 이명박 시장의 지지도가 21.8%로 치솟으며 두 주자간 지지도차는 두 배로 벌어졌다.
이 시장에게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음에도 지지도가 대폭 상승한 것은 박 대표를 지지하던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 시장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재오 신임 원내대표가 본격적으로 사학법 재개정 작업에 들어간 것도 박 대표에게는 부담이다.
우선 사학법 투쟁 전선이 원내로 옮겨지면서 자연히 무게중심도 이 대표 쪽으로 쏠리는 분위기다. '반박(反朴)' 진영의 몰표로 당선된 이 대표가 여당과 재개정 협상에 성공할 경우에도 박 대표의 리더십은 도리어 상처를 입을 공산이 크다.
이처럼 장기화된 사학법 투쟁은 한나라당은 물론 박 대표 자신에게도 적잖은 부담을 안기고 있지만, 박 대표는 회군(回軍)을 모른다.
"국민들은 지도자가 선견지명을 갖고 미리미리 판단해서 국가를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기에 권한도 주고 권위도 부여하는 것"이라는 것이 박 대표의 주장이지만, 지루한 사학법 투쟁을 끌고 나가는 박 대표의 신념이 '선견지명'이 되기는 쉽잖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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