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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레스, '남미의 좌파연대'로 갈까? 글쎄…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118〉

***'아르헨티나 방문 중 높아진 위상 실감'**

중남미와 유럽, 중국을 차례로 방문했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당선자가 17일 아르헨티나 방문을 끝으로 본격적인 에너지자원 챙기기에 들어갔다.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정부가 보내준 대통령전용기 편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자는 옅은 회색줄무늬 와이셔츠 차림으로 키르츠네르 아르헨 대통령의 영접을 받았다.

이번 방문에 앞서 몇 차례나 아르헨을 방문했던 그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자신에 차 있었다. 그에 대한 아르헨 정부의 의전도 국가원수급으로 격상됐으며, 현지 기자단의 취재 태도도 후보자 시절이나 코카생산협동조합 지도자 시절의 아르헨 방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남미의 빈국, 그것도 토착민 출신인 모랄레스가 중남미는 물론 유럽에서까지 가는 곳마다 분에 넘치는 귀빈급 예우를 받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볼리비아가 가진 천연가스라는 에너지자원 때문이다.

***'키르츠네르에 통치 비결 질문'**

모랄레스 당선자는 키르츠네르 대통령을 향해 맨 먼저 통치의 비결을 물었다.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국민들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어 모랄레스 당선자는 아르헨티나 내에 거주하고 있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들의 인권을 챙겨달라고 요청하고 가스요금인상 건은 취임 후 실무자들 선에서 해결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오전 11시30분 까사로사다(대통령궁) 프레스센터로 자리를 옮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고산지역의 빈농 출신인 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며 자신을 선택해준 볼리비아 토착민 유권자들에게 고마움을 공개적으로 표시했다.

"나는 임기 동안 케추아의 문화를 전승 발전시키는 문화혁명을 완수하고 볼리비아 전역에 민주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목청을 높인 모랄레스는 "우리 조상(잉카제국)들의 전례대로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를 국정의 최우선 좌우명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모랄레스 당선자는 또 "볼리비아에 진출한 모든 기업들은 이제 볼리비아 국법을 지켜야 할 것"이라며 "모든 에너지자원을 국영화시킬 것이며 볼리비아 정부 주도로 이를 산업화하여 에너지자원의 약탈과 착취를 막겠다"고 강조했다.

"중남미가 언제까지나 미국의 발 밑에 깔려 지배당할 수는 없다"고 말한 모랄레스는 "미국은 나를 가리켜 차베스의 자금으로 정치를 한다거나 코카인마피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고 있으나 미국과의 대화의 길을 열어두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회견장을 떠나기 전 모랄레스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에너지정책은 "해외판매는 국제가격에 준하는 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볼리비아 내수는 국민들의 수입 수준에 맞추겠다"고 밝혀 내수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공급하는 베네수엘라 차베스식 정책을 펼 것임을 내비쳤다.

***볼리비아 토착민들 "정장은 약탈과 착취의 상징이다"**

모랄레스 당선자가 아르헨 국내 유력언론과 단독인터뷰를 하는 동안 기자는 알렉스 꼰드레라 대변인에게 현재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모랄레스 당선자가 국가원수로서 의전을 무시한 정장 기피현상에 대해 질문을 했다.

꼰드레라 대변인은 "모랄레스 당선자의 노타이 차림은 볼리비아 유권자들의 전통을 존중하자는 뜻이며 취임식장에서도 정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볼리비아 전통과 의전을 따르는 정장 차림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모랄레스를 수행한 볼리비아 기자단은 "볼리비아 토착민들은 정장을 한 백인을 보면서 옛날 백마를 탄 파란 눈의 정복자들과 근대에 와서는 우리의 인권말살과 자원을 착취를 한 서구의 화이트칼라를 연상하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다시 말해서 모랄레스가 서양문화의 상징인 정장을 기피하는 것은 볼리비아 국민들에게 자신은 권력자나 착취자가 아닌 동일한 토착민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어 필자를 향해 "당신이 만일 볼리비아 대통령 취임식 취재를 위해 라 빠스 현지를 방문하려면 노타이에 간편한 평상복 차림을 하고 오라"면서 "만일 지금처럼 말쑥한 정장을 입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는 말로 현재 볼리비아 국민들이 느끼는 정서를 설명했다.

***모랄레스, 남미 좌파정권 향해 '새 판 짜자'주문**

이번 해외순방을 통해서 에너지자원의 파워를 몸소 체험한 모랄레스 당선자는 스페인 정부를 향해 "우리는 주인이 아닌 동업자가 필요하다"고 말해 자원착취의 고리를 벗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했다. 볼리비아 현지에 진출한 스페인 기업들을 향해서도 이제 주인 행세를 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상호 동업자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달 초 베네수엘라를 방문한 모랄레스는 "21세기는 제국의 시대가 아닌 민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외쳐 지난 수 세기 동안 서방세계로부터 억압되고 착취당한 볼리비아 토착민들의 응어리진 한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모랄레스의 자원착취에 대한 피해의식은 같은 좌파이자 남미국가들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정부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지난 13일 브라질을 방문, 룰라 대통령에게 브라질 국영석유회사의 볼리비아 천연가스 개발사업에 대해 에너지개발의 모든 권리는 볼리비아 정부가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예전처럼 헐값에 천연가스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브라질은 자국 내 천연가스의 소비량의 45% 가까이를 볼리비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룰라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모랄레스는 이어 향후 볼리비아 내에서의 모든 에너지관련 사업권은 다국적기업 대 수입국 개념이 아닌 정부 대 정부 베이스로 추진할 것을 천명함으로써 종전에 스페인-아르헨국영석유(Repsol- YPF) 또는 브라질국영석유(Petrobras)와 맺은 에너지 개발조건과 공급계약을 현재상황에 맞게 갱신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새로운 조건과 현재의 국제시세대로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중남미 좌파연대 쉽지 않을 듯'**

모랄레스 정부는 아르헨티나를 향해서도 종전가격 대비 대폭적인 공급가격 인상을 인정해야 가스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일일 1억3000만 입방미터의 가스사용량 가운데 볼리비아산 가스의 의존도가 낮아 국내소비자가격 등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르헨티나로 유입된 볼리비아산 가스는 칠레와 우루과이 등지로 재판매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모랄레스의 집권으로 엉뚱하게 칠레와 우루과이 등 남미국가들에게로 에너지'불똥'이 튈 소지가 없지 않은 상황이다.

모랄레스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 참여에 관해서도 일단은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천연자원 외에는 내세울만한 산업이 없는 볼리비아가 상대적으로 각종 산업에서 우위를 점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과의 자유무역이 득 될게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한 새롭게 출범할 칠레의 좌파 정부와도 '줄 것(가스에너지)은 주고 받을 것(태평양으로 항구 확보)은 받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 바첼렛 정부와도 칠레가 먼저 국경양보를 하지 않는 한 정치적인 연대는 어려울 전망이다.

따라서 중남미 전역을 휩쓸고 있는 좌파정권의 바람은 서로가 지지층과 뿌리가 달라 상호 긴밀한 연대나 정치.경제.외교의 협력은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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