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을 담보로 소수 농민의 생존권을 빼앗는 쌀시장 개방에 대한 침묵이나 한낱 생명조작 기술자를 국가적 영웅으로 만든 집단 광기나 결국 동전의 앞 뒷면 아닌가?"
***농민현실 외면하는 왕년의 '민주투사'**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열광이나 농업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끊임없이 경종을 울려 온 〈녹색평론〉이 이번에 나온 통권 86호(2006년 1~2월호)에서 "황우석 사태는 표면적으로 일단락됐지만 그 사태의 근원에 가로놓인 심층적인 요인들은 계속해서 문제로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김지하의 유목-농경문화 통합론은 사실상 도시의 농촌 흡수통합을 기정사실화하는 또 다른 서울 중심주의, 시장 제국주의"라고 비판한 바 있는 천규석 대구한살림ㆍ공생농두레 이사는 이번 호에 실린 '집단 광기에서 깨어나야 한다'라는 글에서 "현재 왕년의 민주 투사들마저 농민의 현실을 외면하며 전체주의적인 농민 매도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70년대 격렬한 반 유신 운동의 중심에 섰다가 지금은 '생명 사상가'로 전향한 김지하는 지난해 12월 15일자 〈매일신문〉 '사상기행' 연재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한다고 쇠파이프를 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농민들은 농업노동에 기반을 두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행동입니다. 농업이란 생명을 존중하고 따라가며 거름, 물 등을 주면서 존중하는 것입니다. 가치관 자체를 노동의 대상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또한 농업은 하늘로부터 배우는 것이고 우주 전체의 돌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천 이사는 "농민의 폭력시위를 지지하는 건 아니자만 농민들보고 어떠한 국가 폭력이 와도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도나 닦다가 굶어죽으라는 말과 같다"며 "왕년의 민주 투사마저 전체 국익을 담보로 소수 농민 생존권을 빼앗은 쌀시장 개방이라는 국가 폭력과 민중에 대한 국가와 시장의 원천폭력은 선험적 가치인 양 그대로 두고 소수 농민들의 절박한 외침만 폭력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이를 폭력으로 매도하는 시민이나 법치 평화주의자들이야말로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 개구리가 아니면 박정희 근대화 독재 이후 이 땅을 휩쓸고 있는 전체주의적 집단 광기에 깊이 중독된 거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 '스페인의 인디오 논쟁'이 말하는 것**
김종철 편집인도 같은 호의 서문에서 "이번 황우석 사태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상황에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며 콜럼버스로 상징되는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에서 있었던 '인디오 논쟁' 한 토막을 소개했다.
김 편집인이 '국익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만행에 직결될 수 있는 개념'인지 말하며 거론한 인디오 논쟁이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오를 서구 백인과 똑같이 하느님의 아들, 딸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볼 것인가를 두고 1510년경 스페인에서 일어난 논쟁이다.
당시는 수많은 노예와 황금을 가져다줄 잠재력을 지닌 신세계에 대한 착취가 세계적 규모로 체계화되기 시작하던 때였고, 이 논쟁에서 인디오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게 대세였다.
이때 인디오의 인권을 옹호하며 예외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라스-카사스라는 가톨릭 사제였다. 그러나 "인디오는 신앙을 배척하지도 타인의 물건을 빼앗지도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존재도 아니다"라며 인디오도 인간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했던 그는 당시 수많은 동료와 스페인인들로부터 '정신이상자' '국익을 해치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김 편집인은 "세계 재패를 통해서 무한한 부와 권력을 꿈꾸고 있던 당대 스페인 국민들에게 라스-카사스는 진실 때문에 국익을 우습게 여기는 '공공의 적'이었다"며 "당시 이 논쟁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유의미하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타자의 불행이 전제되어야 하고,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자의 인간성 자체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는 논리가 얼마나 쉽게 국가의 생존 논리, 즉 국익과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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